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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엄마 Jun 26. 2020

책을 좋아한 공학도. 그리고 그 후

다정한 일기 by 은결

안녕하세요 혜진님 :)

계속 끄물끄물한 날씨여서 몸도 마음도 처지더니, 드디어 해님이 반짝! 제 마음도 활짝 ^--^


금방 혜진님의 온라인 세미나를 신청하고 오는 길이에요. 다른 분 웨비나(온라인 세미나 줄임말이라더군요.)를 들으면서 혜진님도 이런 거 해도 충분하겠는데?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똭 준비해서 오픈하시다니, 멋지다는 말이 절로 나와요.


 오늘 일기는 저의 진로와 직업에 대해서 여기다 털어놓고 혼돈의 마음 상태에서 탈출하자! 생각했는데. 날씨도 좋고, 기분도 좋고, 그래서 별로 재밌지만은 않은 이야기가 그리 나쁘지만은 않을 듯한데요?




저는 어릴 때부터 수학을 좋아했어요. 명쾌한 답이 있고, 그 답을 찾으면 되니까 불안하지 않은 과목이었거든요. 다행히 수학 머리가 있었는지 조금만 하면 금방 알아채는 과목이기도 했고요. 그런데 고등학교 1학년 때 적성검사를 했는데 문과가 나온 거예요. 이건 분명히 검사가 잘못된 거다, 그럴 리가 없다, 아주 가볍게 무시하고 저는 이과를 선택했지요.


지금 생각하면 고등학교 때 방황이 이과 진학부터였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공부를 그렇게 열심히 한 것은 아니었지만, 열심히 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공부가 잘 안된 건 나와 맞지 않아서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하고 싶은데, 하기 싫은? 이런 느낌 아실까요?) 어려웠지만 좋아한다고 생각해서 어찌어찌 버텨낸 느낌?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았더라면(사실 지금도 잘 모르겠....), 지금 나는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 생각해봐요. 책과 글쓰기 언저리를 돌고 있었을 가능성에 대해서도요.


저는 대학교 때 기계공학을 전공했어요. 메카트로닉스. 로봇의 머리를 만든다고 생각하면 쉬운데 기계와 전기 전자의 복합 학문? 정도예요. 제가 대학교에 들어갈 당시 학부가 유행하고 있었고, 내가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것과 성적과 이러저러한 조합으로 선택된 게 기계공학부였죠. 로봇을 만든다는 게 매력적이었어요. 저는 공학이 매력적으로 보이게 커온 거 같아요. 물론 누가 주입시킨 건 아니지만, 스스로 너는 그런 사람이야,라고 규정짓고 다른 길은 전혀 고려해보지 않은. 어쩌면 이런 면에서는 완전 고집쟁이였죠. (생각해보니 사실 주변에 나의 진로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을 해주는 사람이 없었기도 했어요.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판단했죠.)


대학교 생활은 그럭저럭 괜찮았어요. 성적도 괜찮았고, 컴퓨터 관련, 인공지능 이런 과목들 재밌었거든요. 대학원에 들어가서 더 공부해야지 생각했었는데, 어느 날 엄마가 직업을 가지고 공부를 더 하면 안 되겠냐는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아빠가 나 대학교 1학년 때 일으킨 뇌출혈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셨거든요. 그동안 엄마 혼자 외벌이로 힘드셨을 텐데, 내색 안 하고 뒷바라지해주시다가, 제가 철없이 계속 공부한다고 하니 그렇게 말씀을 하신 거죠. 그래서 선택한 직업이 공무원이에요. 첫 시작부터가 딱 감이 오지요? 본업에 충실하겠다는 게 아니라, 건너가는 다리 역할로 선택된 직업. 그러다가 눌러앉은 직업. 저는 거기서 아무것도 찾지 못했죠.


벌써 그 직업으로 일한 지 15년이네요. 어제 승진 발표가 있었는데(휴직 중이라 소식을 잘 모르지만_또는 모른 체하지만, 어제는 친하게 지내는 언니가 파일을 보내줬더라고요) 제가 아는 애가 승진을 했어요. 갓 들어왔을 때 제가 가르친 아이였거든요. 저는 10년이 넘게 걸린 일을 그 아이는 5년 정도의 경력에 7급까지 승진한 거였죠. 관운이 있는 거예요. 보통 그렇게 얘기하거든요. 최소 근속연수 기한에 딱딱 맞춰 승진하는 사람들.


정말 축하한다고 메시지를 보내고 나서도 영 개운하지 않은 마음. 이런 상태로 나 다시 복직하고 이런 마음 가짐 그대로 일한다면 나 나중에 저 애한테도 추월당해 그 애 밑에서 일하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슬, 머리를 디밀더라고요. 승진을 포기했다고 생각하면서도 인사철만 되면 마음이 붕 뜨고 어지러워지는 건 이런 승진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정립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누구는 운이 좋아서, 누구는 비위를 잘 맞춰서 승진을 한다고 생각했죠. 관운은 정말 존재하는 것 같지만(예를 들면 들어온 해에 윗 급수 사람이 얼마 없어서 근속 연수만 채우면 딱딱 승진이 되는 케이스) 그 외의 것들은 자신이 만드는 거라는 생각을 이제야 해요. 사회생활에는 '일'만 존재하는 게 아니니까요. 똑 부러지게 자기가 맡은 일을 잘하는 건 기본이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잘 어우르는 것도 사회생활에서 꼭 필요한 일이죠. 대부분 '일'잘하는 사람은 관계에 서툰 경우가 많더라고요. 제가 몸담고 있는 사회에서도 일 잘하는 사람이 승진에 밀리는 경우도 허다하고요.



이번 휴직을 하면서, 저는 제 자신을 찾고 싶었다고 전에 한번 말씀드린 적 있지요? 제가 좋아하는 무언가를 찾아서 그 길로 나아가는 것도 좋고, 원래의 직업으로 돌아간다면 저는 그 직업에서 나의 사명을 찾고 돌아가고 싶어요. 그래서 일 뿐만 아니라 관계에 대해서도 노력하는 거죠. 일과 관계의 균형?



<기록의 쓸모>라는 책을 읽고 있는데 이 저자 분도 치기공을 전공하고 치과에서 일하다가 마케터로 직업을 바꿨더라고요. 정말 달라 보이는 두 직업의 간극에는 '일을 잘하고 싶다는 열망'으로 열심히 메모하고 공부한 이분의 '노력'이 있더라고요. 이 책을 읽으면서 어? 나는 지금의 직업을 가지고 한 번도 '잘하고 싶다'라는 생각으로 노력한 적이 없다는 깨달음이 머리를 띵하게 했어요. 열심히 한 게 있었다면 '나 이런 사람이야'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서였지요. 이제 깨달았으니 나도 아직 늦지 않았다! 나에게 생각하고 행동할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느냐, 우울해하지 말고 열심히 열심히 노력해보자!! 하는 생각을 했어요.



뭘 해도 다르게 하는 사람,
자기 확신이 있는 사람,
자기의 신념으로 주변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 사람
 <기록의 쓸모> p.55


공무원으로 다시 돌아간다 하더라도 다른 일을 시작한다고 해도, 저는 저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자기 확신이 있는 사람, 자기의 신념으로 주변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 사람.


저 잘할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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