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비 소식이더니, 지금은 비가 안 와요. 일기예보를 보니 오후엔 다시 온다고 되어 있는데, 오늘은 오지 않으면 좋겠네요. 오늘부터 우리 주제를 잡아 서로의 얘기를 풀어보기로 했죠? '장마'라는 주제를 던져 놓고도 무슨 얘길 할까 고민하는데 '비가 오면 생각나는 그 사람, 언제나 말이 없던 그 사람,~'으로 시작하는 심수봉님의 <그때 그 사람> 노래가 떠오르는 거예요.
그래, 비가 오면 생각나는 사람이 최근에 있었던가? 하고 생각해보니 신랑이 지금 일을 시작하고부터는 비가 오면 가장 먼저 신랑을 떠올렸더라고요. 비 오면 밖에서 일하기 힘들 텐데, 라는 생각. 오토바이가 위험하진 않을까 하는 걱정. 비가 오면 자동으로 따라오는 심란 세트지요. 신랑이 집배원 아저씨거든요. 집배원 아저씨 하면 커다란 우편 가방을 들고 인자하게 웃으며 집집마다 방문해서 좋은 소식을 전해주는 그런 모습이 연상되지 않는가요?
하지만 현실은 정말 고된 직업이랍니다. 이 직업을 갖기 전까지 여기 다 쓸 수 없는 구구절절한 사연이 있지요. 요즘의 집배원은 <일 포스티노>라는 영화에 나오는 우편배달부처럼 낭만적인 직업도 아니고 옛날처럼 사람들에게 마음이 담긴 편지를 전해주는 일도 드물죠. 심심치 않게 '과로사' 뉴스를 내는 기피직업. 공무원이라는 장점만 빼면 하기 힘든 직업일 듯해요. 어떤 마음으로 그 힘듦을 이겨내는지 저는 잘 모르지만, 비가 오면 그동안에 쌓였던 불만들도 잠시 옆으로 제쳐두고 신랑의 안위를 걱정하게 되니. 비는 순수하게 신랑을 걱정하게 만드는 시간을 제공해주는, 어쩌면 쬐금 고마운 존재인가요?
저는 사실 비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답니다. 따뜻하고 밝은 곳에서 커피 한잔 들고 창 밖으로 내리는 비를 감상할 때의 비만, 좋아요. 비가 내릴 때 흙에서 피어오르는 비 냄새도요. 그 둘을 제외하고는 딱히 좋은 점이 생각나지 않네요.
지금은 비 오는 날 밖에 나가기 싫으면 안 나갈 수 있는 자유가 있지만, 작년까지만 해도 꼬박꼬박 일터로 향해야 했으니 지금보다 비 오는 날을 더 싫어했어요. 비 오는 날은 민원이 적어 일단 사무실에 도착하면 비 오는 게 좋은 점으로 둔갑했지만, 사무실로 오가는 출퇴근 시간 동안은 너무 힘들었어요. 운동화도 매쉬 소재라 비 오는 날엔 조금만 물이 튀어도 양말이 젖기 일쑤고, 그래서 장화를 하나 마련해야지 매번 생각하는데도 그게 그렇게 안사지더라구요.(지금도 없답니다;;)
장마 때는 매번 긴장도 늦출 수 없었지요. 비상근무 때문에요. 호우주의보는 1/4 근무. 경보는 1/2 비상근무를 해야 해서 제 순서가 임박해 있을 땐 애들은 또 어떻게 해야하나의 걱정까지 겹치거든요. 아, 비상근무 설 때 저녁 먹고 들어가는 길에 물이 차올라 사무실까지 들어가는데 옷이 홀딱 젖은 기억도 있어요. 그때 도로에 물이 내 무릎까지 올라온 거예요. 약간 경사가 있던 곳이라 물을 거슬러 올라가려니 어찌나 무섭던지요. 그때의 기억은 잊히지 않을 것 같아요.
그때를 떠올리니 뭐 그런 점들은 힘들었지만, 비가 올 때 나를 보호해줄 공간 속에 있다는 사실은 안도감이 들게 했던 것도 같아요. 밖에는 비가 세차게 내리지만, 나는 그걸 피할 수 있는 곳에 있고, 밖에만 나가지 않는다면 오히려 아늑한 느낌까지 들었으니까요. 그러고 보니 그 당시 같이 근무하던 분들도 떠오르네요. 일은 힘들었지만 나한테 잘해주는 좋은 사람들과 함께였는데... 오늘 연락이라도 한번 해봐야겠어요. ^--^
<아무튼 식물>에서 읽었던 내용인데 비에는 질소가 포함되어 있어서 식물들이 비를 맞으면 좋데요. 그래서 지금 우리 집 베란다 문은 활짝 열려있고 창쪽으로 바짝 붙여서 식물들이 줄지어 있답니다. 흩날리는 비라도 좀 맞으라고. 그렇다면 우리 집 식물들도 비 오는 날을 좋아하려나요?
제목은 사랑 얘기 각인데, 내용은 비에 대한 투덜이 등장이네요. ㅋㅋ
저는 비 오는 날에 대한 좋은 기억이 별로 없지만 누군가는 비에 대한 애틋한 사연들을 품고 있겠죠?(저도 그랬으면 좋았으련만 ㅡㅡ;;) 혜진님은 비 오는 날 떠오르는 사람이 있나요?
캠핑때도 대부분 비가 왔어요 이때는 비를 즐긴듯도 한데, 의무가 아니라 선택이 커지면 힘든 일도 기쁜일로 바뀌는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