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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엄마 Jul 28. 2020

비가 오면 생각나는, 우리 아빠

다정한 일기 by 혜진


2주 넘게 지속되는 장마 덕에 몸도 마음도 축 처지는 기분이 드는 요즘입니다. 비 오는 날 집에서 빗소리를 들으며 사부작 대는 건 너무나 좋아하지만, 우산을 받쳐 들고 출근하는 건 영 별로예요. 다리에 검은 흙탕물이 튀기라도 하면 어우- 아침부터 인상이 써지지요. 다음 주부턴 장마가 개고 본격적인 불볕더위 시작이라고 하는데, 은결님은 따로 휴가 계획이 있으신가요?


은결님의 지난 번 일기를 읽으며 은결님의 새로운 부분을 알았다 싶었어요. 비가 올 때마다 남편분 생각나겠구나-싶은 생각도요. 저는 비와 눈이 올 때마다 아빠 생각을 하거든요. 아빠는 운전하는 일을 오랫동안 하셨어요.






부모님 모두 전라도의 저~ 시골에서 상경하신 분들이에요. (아마 지명을 대도 잘 모르실 듯합니다)

아빠는 엄마에게 '결혼하면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힐게'의 아주 뻔한 거짓말을 하고 들이대기 프러포즈에 성공했고, 엄마는 그렇게 될 리 없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못 이기는 척 결혼'해줬'죠.

젊은 남녀열심히 살면 하늘 아래 두 몸 누을 곳 없을까 넘치는 열정으로  상경했겠지만, 현실은 팍팍했던 모양이에요. 아무 기술 없이 상경한 아빠가 여러 직장을 전전하면서 생계를 유지했던 무용담을 지금도 가끔 하시는데, 듣고 있자면 제 마음이 조금 아리거든요. 결국 여러 직장을 옮겨 다니다 운전하는 일을 업으로 삼아 사십 년 넘게 하고 계시네요.



지금이야 운전의 달인이 되셨지만, 초반엔 어찌나 사고도 많이 냈게요. 엄마 말로는 '버는 족족 사고 땜질하느라' 월급은 항상 모자랐다고요. 그도 그럴 것이 운전을 거의 처음 배우던 사람이 덩치 큰 시내버스를 몰고 다녔으니 사고가 안 났겠어요? 시내버스를 몰며 '버는 족족  까먹는'시간을 지나 몸으로 이력을 쌓고 고속버스 회사로 옮기셨어요. 그때만 해도 KTX도 없었고, 비행기는 보통 사람이 타기도 힘들었던 것이라 장거리 운송 수단은 고속버스 정도였거든요. 고속버스기사로 열심히 근무해서 두 딸 대학, 대학원까지 보내 놓고 집도 한 채 마련하고 - 참 열심히 사셨다 싶어요.

몇 년 전엔 고속버스 회사에서 은퇴하시고 택시 기사 면허를 따셔서 아직도 운전대를 못 놓으셨어요. 이제 나이도 있으시고, 힘드시니 그만 쉬시라고 말씀드려도 몸 건강할 때 몇 년은 더 하마고,  놀면 뭐하냐며 새벽같이 나가시는 아빠를 보면 마음이 지금도 그래요.


특히나 이렇게 비가 잦은 여름, 눈이 쏟아지는 겨울엔 아빠 운전하시는데 괜찮나 걱정부터 앞서요.

길이 미끄럽진 않을지, 이렇게 비가 쏟아지면 앞이 잘 안보일 텐데 괜찮을지, 이런 날은 손님도 없을 텐데... 이렇게 걱정이 많으면서도 살가운 딸이 못되어서 마음으로만 자꾸 안부를 묻네요.




아빠도 속 이야기를 세세하게 꺼내놓는 분이 아니라 자세한 속사정은 모르지만 얼마나 속상한 일이 많을지 잠꼬대만 들어도 알 것 같아요. 몇 년 전부터 잠꼬대를 그렇게 심하게 하세요. 그 좁은 택시 안에서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온갖 이야기를 다 듣겠어요. 밖으로 화를 표출하지 못하고 삭이다가 저렇게 잘 때 한 번씩 터뜨리시나 보다 싶어서  울컥한 마음이 들기도 해요. 꾸준히 약을 드신다고는 하는데, 하루 이틀에 걸쳐 쌓인 감정이 아닐 테니 금방 낫지는 않는 것 같고요.


저도 감히 아빠에게 훈수를 둘 수는 없어요.  (싹수없는 인간은 되받아 치세요! 그런 인간은 신고해버려요!! 한 번씩 이런 이야길 해도 아빠는 반응도 없으세요 ㅎㅎ) 다른 사람이 보기에 하찮아 보여도 아빠의 '직장이고 '이기에 제가 함부로 판단할 수도 없고 그저 아빠는 아빠의 삶의 무게만큼 살아갈 뿐.

'맛있는 거 먹으러 가시자'고 한 번씩 외출을 하거나, 손주 커가는 모습을 자주 보여 드리는 정도의 위로만 저는 드릴 수 있고요.


오랫동안 직장생활을 하시면서 그리고 자영업자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힘들다' '못해먹겠다'는 소리 한번 없이 묵묵하게 살아온 그 뒷 모습을 아빠의 두 딸도 보고 배운 것 같아요. (아들 둘 낳고 해외 출장 다니며 씩씩하게 사는 동생, 제 삶만큼은 주도권을 갖고 살고 싶은 저 - 만날 때마다 우리는 일개미의 저주에 갇힌 거 같다면 웃지만요)



먹고사니즘 누구에게나 고행이고 커다란 무게이지만 각자 주어진 짐을 지고 열심히 살아갈 뿐이고요.




이렇게 계속해서 비가 내리면 택시 타려는 손님조차 없어지는데, 이제 그만 내렸으면 좋겠단 생각이 드네요.

은결님, 주변에 비 피해 입으신 분은 없나요? 부디 더 큰 피해 없이 무사히 본인들의 자리로 돌아가실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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