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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엄마 Jul 31. 2020

과일에 얽힌 기억들

다정한 일기 by 은결

지금 엄마 집에는 우리가 심은 포도나무에 포도가 주렁주렁 열러 있다고 합니다. 신나게 새들의 먹이가 되어주고 있다고. 엄마 집으로 애들을 데리고 얼른 와서 따 먹으라는 엄마의 유혹이지요. 심어놓고 한 번도 따먹은 적은 없지만, 엄마가 어떤 나무를 심을래? 물었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난 건 포도나무였습니다.


엄마집 앞마당에 열린 포도^-^


어린 시절 우리 동네엔 포도밭이 있었어요. 두 시어머니(저에겐 할머니가 두 분이셨답니다. 자세한 얘기는 담에 또 할 기회가 있겠지요.)를 모시느라, 직장에 다니느라 사는 게 너무 힘들었다는 엄마, 그런 엄마와 저는 어릴 적 함께 놀았던 기억이 별로 없어요. 같이 놀러도 다니곤 한 거 같은데 집에서 엄마와 무슨 놀이를 같이 한 기억은 거의 없는 듯해요. 그때 엄마의 처지를 생각하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것도 이제는 알겠고요.


그런데 그 포도밭에 엄마. 아빠와 동생이랑 같이 가서 포도를 따와 원두막에서 먹었던 기억이 어렴풋하게 있어요. 모기가 많았다, 어둑했다, 행복했다, 이 정도의 정말 어렴풋한 기억이지만 과일에 얽힌 유일한 기억이기도 하지요. 아빠가 포도를 좋아하시거든요. 아마 그래서 포도를 사 오겠다는 핑계로 시어머니들을 피해 저녁의 시간에 약간 숨통의 틔우신 거 같은데, 그래서 그럴까요? 그때의 희미한 기억은 한마디로 표현하면 즐거움이었어요.




저는 사실 그렇게 특별하게 맛있다, 하는 과일이 없어요.(엇, 이거 어디선가 또 썼던 거 같은데? 음식?ㅋㅋ)

어렸을 때 이것저것 과일을 맛볼 만큼 부유하지 못해서 여러 과일을 접하지 못하고 커온 탓이 가장 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사실 먹는데 그렇게 큰 의미를 두지 않는 성격 탓이 제일 크지 싶어요. 그래서 그런지 우리 아이들도 과일을 사달라 졸라댈 만큼 과일을 좋아하지는 않는답니다. 있으면 먹고 없으면 찾지않는 정도?


그중에서도 좀 잘 먹는 과일을 꼽으라면 오렌지? 우리나라 과일이 아니라 좀 아쉽네요.

옛날에 공무원 준비할 때 밤 낮이 바뀌어서 생활한 적이 있는데, 동영상 강의를 들으면서 주로 오렌지를 먹었어요. 믹스커피와 함께. 지금도 오렌지가 나오는 철이 되면, 오렌지 하나를 깎고, 믹스 커피를 타 책상 앞에 앉아 오물오물 먹으며 동영상 강의를 보던 내가 떠올라요.


쓰다 보니, 오렌지는 제가 좀 좋아하는 과일에 속하겠군요 ^^;;;;;

지금 생각났는데, 겨울철엔 집에 오렌지가 거의 있는 거 같아요.(아, 이렇게 자꾸 생각나는 걸 어쩔까요;) 그래서 우리 신랑은 오렌지 깎는 스킬도 늘었죠. 저는 껍질 벗기기가 힘들어 항상 칼을 이용하는데 우리 신랑은 손으로 사과 껍질 깎듯 깎아요. 신기하죠? 그 동영상을 찾으면 한번 보여드릴게요.




요즘은 복숭아 철이죠?

얼마 전 마트에서 조금 사와 깎아놓으니 애들이 잘 먹어서 며칠 내리 먹었었어요. 어쩜, 그렇게 색이 이쁠까요? 속에 있는 분홍이 점점 옅어지는 색감이, 정말 이뻤어요. 맛도 좋았지만요.

복숭아는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이 많잖아요. 예전에 제가 첫 발령받고 간 곳에서 만난 언니가, 복숭아를 엄청 좋아했어요. 알레르기 있어 복숭아 못 먹는 사람이 제일 불쌍하다고. 그렇게 맛있는 걸 못 먹으면 무슨 낙으로 사냐고 했던 기억. 복숭아를 보면 그 언니가 생각나요.


정말 좋은 언니였는데. 아픈 아버지를 돌본다고 어느 날 일을 그만두었어요. 20년 넘게 일한 곳을, 그런 결정 내리는 사림이 정말 흔하지 않은데 특별한 사람이었죠. 일도 꼼꼼히 참 잘했는데, 우리 시는 인재를 한 명 잃었고 저는 몇 없는 마음의 친구가 없어진 셈이죠. 가끔 연락은 하지만 같은 공동체 내애 속해 있을 때 나눌 수 있는 것들과는 양적으로 차이가 많이 나니까요.


특정한 무엇을 좋아하는 건 좋은 일인 것 같아요. 그걸 보면 함께 그 사람도 떠오르니까요. 동생 아이도 그런 사람 중에 한 명인데, 편식이 심한 아이예요. 안 먹는 게 많죠. 그런데 자신의 입맛에 맞는 건 또 엄청 잘 먹는 거예요. 수박은 그 아이가 좋아하는 것 중 하나인데, 수박과 망고만 보면 우리 **이 사줘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혜진 님도 그런 사람이 있지요? ^-^


그러고 보니 작년 세부에 갔을 때 망고가 생각이 나는군요. 거기서 엄청 먹었는데, 여기오니 비싸서 손이 잘 안 가더라고요. 언제쯤 자유롭게 여행을 갈 수 있을지. 코로나로 인해 바뀐 세상은 그걸 허용하지 않을까요?



다음 주부터 시작되는 이번 여름방학엔 동생네 아이들과 함께 엄마 집에 있을 예정이에요. 동생의 아이로 인해  아마 수박을 양껏 먹을 듯싶어요. 혜진님은 어떤 과일을 좋아하실지 궁금해지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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