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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엄마 Aug 07. 2020

시골에서의 여름방학

다정한 일기 by 은결

혜진님:)

지금 여긴 엄마 집이고, 매미 소리가 한창이에요. 매일 비가 오는 날들이지만, 창밖으로 초록이 보이고 빗방울 떨어지는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이런 게 행복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비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에겐 정말 죄송한 마음이지만요 ㅠㅠ)


아이들은 비가 그치면 밖에서 뛰어놀고, 저녁엔 할머니 할아버지 따라 수영장 가는 맛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어요. 3대가 같이 한집에서 생활하는 게 쉽진 않은 일이지만 일주일밖에 안됐으니 아직은 그럭저럭 잘 생활하고 있답니다. 


저도 제법 평온한 하루를 보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며칠 전부터 입술 주변으로 물집이 잡히더니 하나가 더 번졌어요. 피곤했나 봐요. 각자의 역할을 정해놓고 간섭은 최소한으로 하고 잔소리는 그냥 들어주자고 다짐을 했건만, 나도 모르는 새에 신경을 건드리는 자잘한 것들이 쌓이고 있나 봐요. 스스로 억눌러서 인식하지는 못했지만 몸이 반응하는 게 참 신기해요. 오늘은 일 때문에 나 혼자 마산으로 가는데, 하루 푹 쉬고 충전해서 다시 돌아와야겠어요.





이번 아이들 방학을 엄마 집에서 보내기로 결정한 게 된 동기는 '아쉬움'이었어요. 휴직을 하면 애들 데리고 **에서 한 달 살기, 이런 거 해보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코로나로 인해 발이 묶이니, 그럼 엄마 집이라도?라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엄마, 아빠도 애들 계속 보고 싶어 하시니까, 이번 기회에 엄마 아빠랑 시간을 더 만들어볼까? 하는 생각도 있었고요. 휴직기간 동안 경제적 자립을 못하면 나는 또 시간에 매이는 사람이 될 테니. 엄마 아빠와 이렇게 하루를 온전히 같이 보내는 시간들도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니까요.


그러고 보니 혜진님의 아이도 첫 방학을 맞이했겠군요. 매일 등교해서 학교 생활을 한 뒤에 맞는 방학과, 가는 둥 마는 둥 하는 학교 생활을 체험하고 맞는 방학은 느낌이 다르겠지요? 우리 둘째도 '어? 벌써 방학이야?' 하는 마음이었을 것 같아요. 학교도 몇 번 못 갔는데 방학이라니. 그래도 매일 해야 하는 온라인 과제를 하지 않아서 좋대요. 방학이 끝나고 2학기가 되면 정상 등교가 되려나요. 그랬으면 좋으련만.


혜진님의 초등학교 방학은 어땠나요?

방학을 주제로 써보자 생각하고 저의 어릴 적을 떠올려 봤어요.

저는 초등학교 때 외갓집에 며칠 가있곤 했었어요. 엄마라는 마음의 기둥 없이 외갓집에서 눈치를 보면서 생활하는 것이었어도, 새로운 생활에 설레었던 거 같아요. 한 살 위 언니도 있어서 더 그랬고요. 언니네 동네의 많은 것들이 신기했던 기억이 나요. 그때의 기억이 또렷하진 않지만 언니랑 뭔가를 같이 하면서 놀았던 것만 기억나니, 아이들의 세계에서는 기본적인 의식주는 별로 중요하지 않는가 봐요.


엄마는 그때 우리를 보낼 때 아무것도 챙겨 보내지 않고 우리만 달랑 보낸 것에 대해 지금에서야 많이 미안한 마음이 들곤 한데요. 살림을 해보면 애 한 명 더 보는 게 밥상에 숟가락 하나 더 얹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잖아요. 그땐 아무 생각 없이 보냈었는데 우리가 외가에 가 있는 동안 외숙모의 노고를 이제야 헤아리게 된 거죠. (지금 엄마가 힘들다는 말일까요?^^;;) 그렇다고 그때의 보상을 지금 엄마가 숙모에게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고요. ;;





지금이야 애들과 내가 같이 있을 수 있으니 애들 방학 때 어떻게 해 줄까에 대해 고민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방학이 되면 마음이 더 무거워졌었죠. 애들을 또 어디에 맡겨야 하나, 엄마가 없이 어딘가에 얹혀 있어야 하는 애들 마음이 안 좋진 않을까 하는 이런저런 걱정 때문에요.


내 몸이 회사에 묶여 있을 땐 애들과 같이 있는 시간만 주어진다면 애들과 하고 싶은 일들이 정말 많았는데, 애들과 함께 있는 시간 동안 내 생각이 나태해질 때면 그때의 나를 떠올려요. 그때 나는 얼마나 지금을 갈망했던가 하면서요. 그러면 조금 마음이 숙연해지면서 아이들을 한 번이라도 더 안게 된답니다.


지금 저는 이층 다락방에 앉아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이 글을 쓰고 있어요. 애들은 자유시간을 누리고 있고요. 여기 오기 전에 몇 가지만 정해서 왔거든요.


 - 아침 9시에는 일어나기

 - 일어나자마자 문제집 풀기

 - 게임은 하루에 1시간만.(평일만)

 - 텔레비전은 최대 2시간만.

 - 자기 전 일기와 독서록 쓰기


이것만 지켜도 하루가 정말 금방 가요. 우리 둘째가 오기 전에 쿠키런, 이라는 학습만화를 도서관에서 접하고 재밌다고 해서 몇 권 사 왔는데 애들이 다 쿠키런에 빠져서 책 읽는 시간도 꽤 되고요. 그 외의 시간엔 또랑에 다슬기도 잡으러 가고 마당에서 뛰어놀기도 하고. 표면적으로는 정말 평온한 시간이 흐르고 있답니다.


혜진님은 어떤 방학을 보내고 계신가요? 엄마인 우리들도 우리만의 여름방학이 있다면 정말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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