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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엄마 Aug 11. 2020

여름방학, 살갗이 벗겨지던 뜨거움

다정한 일기 by 혜진


은결님이 여름방학에 대해 쓰자고 하셔서 잠깐 고민했지요. 제 옆엔 코로나 때문에 학교에 달랑 4번 가고 여름방학을 맞은 '닐니리 맘보'로 초딩 1학년 딸이 있고요. 방학이라지만, 밖에서 뛰어 놀 수가 있나, 마음 놓고 어디 견학을 갈 수가 있나... 집에만 콕 박혀있는 아이를 보니 안쓰러운 마음도 듭니다. 게다가 100년 만의 폭우 덕에 집에 꼼짝없이 갇혀있지요. 제가 출근을 하니 짐작만 할 뿐이지만,  8시 기상 -> 아침 먹고 빈둥거리기 -> 11시 ebs 시청 -> 그림 그리며 빈둥거리기 -> 점심 먹고 빈둥거리기 x10번 반복 -> 엄마 퇴근 후에 숙제 검사 & 리틀팍스 보기로 하루가 마무리되는 듯합니다. 여름 방학이라기엔 너무 재미없는 일과지요.


은결님이 아들 둘과 자주 캠핑 가는 모습이 참 좋아 보입니다. 밖에서 자는 거 질색이지만, 우리도 캠핑 한번 가볼까? 했더니, 이미 근교의 캠핑장은 만원이라네요. 캠핑 용품도 불티나게 팔린다고요. 코로나 덕분에 멀리는 못 가고, 근교로 캠핑 가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늘어난 모양이에요.



어렸을 때 방학 때면 항상 할머니 댁에 가곤 했어요. 아빠는 일 때문에 같이 내려가지 못했고요. 엄마가 어린 딸을 양손에 잡고 어깨엔 커다란 가방을 짊어지고 무궁화호를 타고 시골로 내려가곤 했지요. 제가 며느리가 되어보니 엄마가 얼마나 억척스럽게 다녔을지 가늠이 됩니다. 인파로 복작거리는 서울역에서 행여나 두 아이 손 놓칠까 신경이 곤두섰을 테고, 가방 잃어버리지 않으려 얼마나 조심했을까요. 빼놓지도 않고 매 방학마다 시댁에 내려가는 엄마는 대체 무슨 정신이었을지. 저라면 그리 못했을 것 같아요.


전북 정읍시라고 들어보셨으려나요, 정읍시에서 또 한참을 들어가면 태인면이라고 있는데 저희 할머니 댁이 그 시골에 있답니다. 지금은 그래도 아스팔트 도로도 깔리고 정비가 좀 되었지만, 어렸을 땐 말 그대로 깡촌이었어요. 비가 오면 도로가 순식간에 진흙탕으로 변하던 곳. 집집마다 돼지며 소를 키우는 곳이 많아서 가축 분뇨 냄새가 공기처럼 깔린 곳이었죠.


깡촌에 있는 조그만 초가집의 할머니네는 살림도 단출했어요. 나왔다 안 나왔다 하는 작은 텔레비전 하나. 방 한 구석의 오래된 요강 하나. 몇십 년을 그 자리에 있었는지 알길 없는 오래된 장롱. 역시나 오래되어 퀴퀴한 곰팡이 냄새를 풍기는 벽에는 두서없이 사진들이 붙어 있었고요. 돌아가신 증조할머니 사진, 짓궂은 얼굴로 웃고 있는 아빠의 어렸을 적 사진, 아빠와 엄마의 결혼식 사진, 그리고 저와 동생의 아기적 사진 등. 할머니 생에서 가장 빛나던 순간들을 박제해둔 것 같은 그 사진들을 몇 번이나 천천히 훑어보고 훑어보고 했던 것 같아요.


시골에 가는 가장 큰 기쁨이라면, 깨끗한 물이 언제까지나 흐르는 작은 내천. 먹을 것으로 가득한 밭과 과일나무. 작은 시냇가가 할머니네 집 근처에 있어서,  하루 종일 물놀이하던 기억이 나요. 올챙이인지 꼬물거리던 것들도 컵으로 잡고, 예쁜 돌멩이 수집한다며 물속에 코를 박고도 즐거웠던 때 가요. 덕분에 시골집에 한 번씩 다녀오면 피부가 벗겨질 정도로 새까맣게 탔던 기억도 나고요.


할머니네 근처엔 제대로 된 마트도 없었고 구멍가게도 한참을 걸어가야 하나 있었어요. 덕분에 뭘 사 먹을 엄두도 못 냈지만  뒷산 밭에서 나던 작물들로 항상 먹을 게 많았어요.  어른 키를 훌쩍 넘기는 기다린 옥수수나무는 얼마나 멋있었게요. 옥수수를 대야 한 가득 따서 담아오면 할머니가 솥에 슈가도 챙겨 넣고 푹푹 쪄주시던 기억.

쟁반 가득 찐 옥수수랑 복숭아를 쌓아 두고 할머니 몰래 바둑이한테 옥수수 몇 알을 까서 던져주기도 했고요. 깊은 밤, 잠이 안 온다 했더니 엄마가 어디선가 봉숭아 잎을 따와서 절구로 잎을 찧고 백반을 섞어 손톱에 봉숭아 물들여주던 기억도 나네요. 손톱에 막 물이 들었을 땐 색감이 그리 곱지 않은데, 흰 손톱이 조금씩 돋아날수록 손톱 위에 남은 쨍한 빨강이 돋보이던 기억도요. 참, 흰 눈이 내릴 때까지 봉숭아 물이 남아 있어도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더라고요?ㅎㅎ


할머니는 솔직히 음식 솜씨가 좋진 않았어요. 매번 생선 조림을 해주셨는데, 비린내가 너무 심해서 먹기 힘들 정도였거든요. ( 전 참고로 생선 킬러입니다) 겉으론 또 어찌나 무뚝뚝한지 생전 우리 강아지들, 보고 싶었다 ㅡ 이런 말씀 한 번도 안 하셨던 듯요. 그래도 장손이라고 절 애틋하게 생각하셨다고..(정작 장본인은 잘 못 느낌)

 



그 할머니께서 췌장암에 걸리셔서 벌써 몇 해전에 돌아가셨거든요. 그리고 투병생활하실 때 저희 집에서 몇 달간 요양하셨어요. 새벽같이 일어나 밭으로 출근하던 일상 노동자가 가만히 집에 계시려니 얼마나 무기력해 보이던지.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로 저희도 시골 갈 일이 없어졌고요. 냇가에서 종일 놀거나, 강아지풀로 바둑이 코를 간질이며 소일하거나,  옥수수 밭에서 한량처럼 돌아다니던 그 기억을 제 아이에겐 말로만 설명할 수 있다는 게 아쉽습니다. 아이의 두 할머니는 모두 도시에 사니까요.


아직은 어리니까 이런 여유를 부리지만, 조만간 학원 뺑뺑이를 도는 나이가 될까요? 아이의 여름방학은 학기의 보충 학습 기간이 될 것 같은 아쉬움이 듭니다. 저에게 여름 방학은 뜨거운 여름, 살갗이 벗겨지도록 새까맣게 태워 노는 것이었는데. 그 시간들이 아득하기도, 아쉽기도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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