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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엄마 Aug 18. 2020

아픈 기억을 아프게만 복기하지 않아서

다정한 일기 by 혜진


이번 주 주제는 뭘로 할까 고민하며 은결님께 카톡 할 때, 마침 저희 아이 학교 앞을 지나고 있었어요.

학교란 곳에 겨우 4번 가보고 바로 방학을 맞은 아이.

몇 번 안 가봐서 그런가, 아직까진 재밌고 신기한 곳인 모양입니다. (곧 깨질 거 같아서 불안한 마음;;;)


솔직히 전 학교, 하면 힘든 기억부터 나요.

초등학교 1학년 때 기억은 거의 없고요,

2학년 때 갑자기 전학을 가게 되어 혼자 처음으로 버스를 타고 마음 졸였던 기억,

3학년 때 담임 선생님께 미움을 받고는 학교가 지옥처럼 힘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특히 3학년 때 그 담임 선생님은 30년이 지나도록 지금에도 아픈 상처를 떠올리게 는 분이에요.


어렸을 때부터 융통성도 없고 약지도 못했던 것 같아요. ‘숙제는 혼자 하는 거다, 전과도 보면 안 되다’라고 선생님이 말씀하셔서 혼자 머리를 쥐어뜯으며 겨우 세 문장으로 된 숙제를 제출한 적이 있어요. 그랬더니 성적표에 ‘양’을 주시더라고요. ㅋㅋ

엄마가 그런 건 ‘도와달라’고 말해야 하는 거라며, 혼내셨던 기억도 슬그머니  나네요.


또 하루는 먹이사슬을 배웠던 날이었는데, 선생님이 저를 나오라고 지목한 거예요.

바지에 오줌을 지릴 만큼 긴장했는데, 뱀, 개구리, 메뚜기를 삼각형 꼭짓점 위에 하나씩 쓰시고는, 먹이사슬에 따라 화살표로 표시하라고 하셨어요.


제 이름 석자가 불릴 부터 이미 머릿속은 하얀 백지장.

개구리가 뱀을 먹고 메뚜기가 개구리를 먹는다고 표시했던가.

선생님이 깔깔대며 출석부로 머리를 쾅 때렸는데, 말 한마디도 못하고 눈물만 뚝뚝 흘렸던 기억.

그 사건 이후로 제 실내화에 구멍이 뚫리고, 준비물이 사라져서 가슴앓이했던 기억.

생각해보니 그게 ‘집단 따돌림’였구나 싶네요.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일 년 내내 눈에 안 띄려고 부단히 애썼던 것 같아요.

힘들면 힘들다고, 선생님이 나를 미워하는 거 같다고, 엄마 한 테마저 왜 솔직하게 털어놓질 못했을까. 열 살의 저를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좀 그래요.


권영애 작가님의 ‘그 아이만의 단 한 사람’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정말 많이 울었어요.

어렸고 여렸고, 상처도 잘 받던 겨우 열 살이었던 꼬마였는데.

부탁하지 않았아도 알아서 내 울타리가 되었어야지 엄마에게 원망도 했던 것 같고요.


만히 생각해보니 치맛바람을 날리지 않았던 외에는

엄마는 나름의 최선으로 내 울타리였구나 라는 생각을 , 지금 들어서야 자주 하네요.

엄마가 학교에 자주 가보진 못했지만 항상 좋은 음식을 해주려 노력했던 기억이, 저랑 동생 손을 잡고 자주 깔깔 웃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 있거든요.


그래서 열 살 때의 학창 시절은 힘들었지만, 어린 시절 내 감정의 총합은 어둡게 느껴지지 않는가 보다, 해요.




이 이야기를 제 책 ‘일상이 독서다’에 적었어요.

학교 선생님이었던 어떤 독자분이 불쾌하다는 서평을 올리셨는데, ‘너의 개인 경험을 전부인 것처럼 적지 말고 (선생님이셔서 더 불쾌하셨던 모양이에요. 사실 글에 ‘봉투를 바라셨나’ 이런 이야기도 있었거든요), 독자를 소중하게 여길 줄 알라’ 고도하셨어요. 


이 리뷰를 읽을  굉장히 속상했는데, ‘나에게 트라우마 같았던  슬픔’이 어떤 사람에겐 ‘읽을 가치가 떨어지는 너무 개인적인 사건’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가장 개인적이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라는 봉준호 감독의 말이 수없이 회자되었지만,

가장 개인적인 이야기가 자칫하다가 배설물 같은 일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닐 수 있다는 생각도  합니다.

뱉고픈 이야기는 하고 싶은 만큼 했으니, 이제는 누군가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귀 담아 들었다가 해보고 싶고요. 



학교를 생각하면 초등학교 3학년 담임 선생님이 아픈 기억으로 떠오르고, 권영애 작가님의 책이 떠오르고, 다시 독자를 소중히 여기라는 악평의 리뷰 ㅡ  이 순서가 몇 년간은 더 반복될 것 같지만.

상처를 상처로만 복기하지 않고, 내 아이에게 더 나은 ‘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혹은 개인적이지만 일기장 만은 아닌 읽힐 글이 되기  위해 좀 더 노력할 거란 사실에 조금은 위안을 얻습니다.



은결님에겐 그 단 한 사람이 있으신가요?

참, 브런치 작가 등록되신 것도 축하드려요.

우리의 교환일기.. 앞으로 어찌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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