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책읽는엄마 May 05. 2020

다정한 일기라고 부르고 싶어요

다정한 일기 by 혜진


은결님, 안녕하세요.



첫 인사를 멋지게 하고 싶어 계속 고민하다가 결국 안녕하세요, 라고 적어요.


제가 은결님에 대해 아는 건 이정도예요.

1) 두 아들의 엄마다

2) 두 아들의 엄마인데 별로 화가 느껴지지 않는다?!

3) 공무원 같다.

4) 휴직중 같다.

5) 3)과4)의 이유인지 안정감이 느껴진다.

6) 책을 엄청 좋아한다.

7) 책만큼이나 글쓰기도 관심이 많다.


맞나요? 근데 이게 전부에요.

짐작만 할 뿐 정확한 나이도 모르고,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지, 어디서 사는지, 요즘 가장 고민되는 일이 무엇인지, 가장 행복한 일이 무엇인지, 두 아들에겐 정말 화가 없는 인자한 엄마인지(?!) 잘 모릅니다.


그래서 잠깐 고민이 되는 거예요.

서로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어도 교환일기로 글을 쓸 수 있을지요.

고2때 단짝 친구와 교환일기를 써 본적이 있어요. 그 땐 ‘야자’가 있던 시절이라 저녁 도시락을 먹고 교환일기부터 펴는 것이 하루의 큰 행복이었어요.‘아’만 해도 ‘아, 그거!’할 정도로 모든 이슈가 학교 생활로 응축된 고등학생의 일과. 주로 담임 흉 보기부터, 반 친구들 이야기, 진학에 대한 불안감 같은 이야기들로 채워 넣었죠.

이 글을 쓰다가 갑자기 떠올라서 웃음이 나요. 고2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가 약간 오빠같은 느낌이었거든요. 예쁘장한데 중성적인 느낌이 있어서 팬덤을 몰고 다니는 친구나 선배, 여고에 꼭 한 명씩 있잖아요.

제가 그 친구를 너무 좋아해서 교환일기에 'J야, 나 혹시 동성애 아닐까?' 고민하면서 적었던 기억이요.


그런 사생활의 공유가 없어도 교환일기가 가능할까? 라는 고민도 했는데, 오히려 서로를 잘 몰라서 솔직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 거죠. 손톱만큼 알게 된 정보로도 상대방에 대한 프레임을 씌워 버리기 일쑤인데, 우린 그럴 만한 정보가 없으니까요.  생각해보면 공유점은 적을지 모르지만, 우리는 엄청난 연대감도 있죠. 엄마라는 사실. 이 단어 하나로도 우린 할 말이 아주 많긴해요.


그러니 길게 자기 소개를 하는 대신, 하나씩 글로 풀어봐요 우리.







나라는 사람을 설명하는데 가장 확실한 방법이 ‘뭘 할 때 가장 행복한지?’‘어떤 상황에서 화가 나는지?’를 알아보는 거라고 생각해요.


‘뭘 할 때 가장 행복한가요?’



저는 혼자서 사부작 사부작 거리는 시간이 제일 행복해요. 그래서 책 읽는 시간이 자기계발이 아니라 충전의 시간이예요. 사람들에게서 좋은 기운도 받지만, 함께 한 만큼 제 시간으로 채워줘야 방전되지 않는 내향성 인간이거든요. 반대로 내 시간과 공간을 방해 받을 때가 제일 힘들어요. 예고 없이 불쑥 만나자는 전화, 다짜고짜 긴 이야기를 이어가는 사람들에게 ‘선 넘지 말라’고 경고하고 싶어집니다.


이런 성향이 가장 곤란할 때가 육아할 때죠. 아이는 너무 예쁜데, 신경이 곤두서니 밀어내고 싶은 거예요. 말도 안 통하는 아이 붙들고 ‘내 시간이 필요해’할 수도 없고요. 안아 달라고 미친듯이 울어 대는 아이를 앞에 두고 ‘어디 누가 이기는지 한번 보자’며 끝까지 안아주지 않고 아이랑 기싸움을 한 적도 있어요. 결국은 이웃집의 항의 전화로 싸움을 접어야 했지만요. 그렇게 예민하고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15년 넘게 직장 생활을 이어가고 있고, 아이를 키우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기도 합니다. 먹고사니즘 앞에 장사는 없습니다만.






은결님의 이야기가 듣고 싶어요. 은결님은 뭘 좋아하는지, 어떤 걸 못견뎌 하는지요.

그리고 왜 같이 글이 쓰고 싶으셨는지도 궁금해요. 그 이야기에서 또 다른 수다 거리를 찾아내고 싶고요.

서로 책 읽는 거 좋아하니, 책 수다도 재밌을 거 같아요. 이상하게 마음이 가는 사건을 잘 기억해 두었다가, 여기에 같이 풀어봐요.

이 교환일기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지금으로선 전혀 갈피도 못잡겠어요.

일단 우리 딱 다섯 번씩만 끊기지 않게 같이 써봐요. 그 다음엔 뭐가 되도 되지 않을까요?  


전 카카오 캐릭터 중에 라이언이 제일 좋아요.


작가의 이전글 육아일기로 시작하는 엄마의 글쓰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