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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엄마 Dec 03. 2019

육아일기로 시작하는 엄마의 글쓰기

왼손잡이로 살아가기



나는 얼마 전에 완전히 마음을 접었다. 왼손잡이인 아이를 오른손잡이로 교정해주려던 마음을.  


첫 번째 어린이집에서 담임 선생님이 그러셨다.


"왼손잡이 꼭 고쳐주세요. 저희 막내가 왼손 잡인데, 연산도 느리고 글씨도 엉망이에요. 못 고쳐준 게 영 마음에 걸리네요"


그 이야기를 마음에 담고 틈나는 대로 왼손에 잡혀 있던 아이의 숟가락을, 포크를, 색연필을 오른손으로 옮겨 주었다. 그러면 어느샌가 다시 왼손으로 가져와서 쥐고 있다. 저도 왼손이 더 편한데, 엄마가 자꾸 오른손으로 물건을 쥐어주니 짜증을 내는 일도 다반사.



사실, 나도 어렸을 때 왼손잡이였더랬다. (그런 것도 유전이 되는 걸까?) 왼손에 있던 물건을 엄마가 포기하지 않고 오른손으로 계속 쥐어주기를 여러 번, 결과적으로 나는 어설픈 양손잡이가 되었다. 지금도 밥 먹고 글씨를 쓰는 건 오른손이지만, 청소하거나 짐을 들 땐 무의식적으로 왼손이 먼저 나온다.


자연스럽게 아기를 안는 손도 왼손이었다. 항상 왼손으로 아기를 안으면, 아기는 포근한 미소를 띠고 엄마의 왼쪽 가슴에 기댄 채 왼쪽 심장 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곤 했다. 가끔 '내가 너무 왼쪽으로만 안아서 아이가 왼손잡이가 된 걸까?'라는 엉뚱한 죄책감이 들 때도 있었다.



전업 주부였던 엄마 덕에 나는 오른손잡이로 교정이 되었다. 워킹맘으로 어쩔 수 없이 아이와 같이 보내는 절대 시간이 부족한 나로선,  왼손잡이가 된 아이를 바라보는 마음이 조금 복잡하다.



아이가 왼손을 더 편해하는 건, 사실 아주 아기였을 때부터 그랬다. 장난감을 쥐는 손도, 이유식을 시작하고 스푼을 들기 시작할 때도 항상 왼손이 먼저 나갔으니까. 그때마다 두 가지 마음이 갈등을 했더랬다.


'아이가 천성적으로 편안해하는 쪽으로 그냥 두자'


'오른손잡이의 세상에서 불편함을 느끼게 하느니 지금이라도 교정해주자'


그리고 결국 아이가 가진 특성을 살려주기로 하고 오른손잡이로 교정을 해주지 않았다.


그렇게 마음을 정하고도 불안함이 한 구석에 남아서 왼손잡이에 대한 책들을 찾아보기도 했다. 하지만 왼손잡이에 대한 과학적 근거를 댄 책보다는, 저자 자신의 개인적인 내용이 많이 들어간 편협적인 내용이 대다수 일 뿐더러 왼손잡이에 대한 책 자체가 많지 않았다.


하루에 몇 명 오지 않는 나의 블로그에, 꾸준히 유입되는 검색어가 있는데, 바로 왼손잡이다. 몇 년 전 아이를 왼손잡이로 키우는 것에 대한 고민을 짧게 적은 글이 아직도 검색되어 읽히고 있었다. 그만큼 아이의 왼손잡이로 고민하는 엄마들이 많기 때문이리라.


그 글에 적혀 있던 어떤 분의 댓글이 기억에 남는다.


"초등학교 1학년인데, 담임 선생님이 계속 오른손으로 쓰라고 스트레스를 주시네요"


이미 초등학생이면 왼손으로 정착된 지 수년이 지났을 텐데, 굳이 오른손으로 바꾸길 강요하는 선생님이 계시다니. 솔직히 그때 다시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나이가 많은 선생님들 중에는 분명 낡은 사고방식을 하는 분들도 계실 텐데, 괜히 우리 아이도 편견의 대상이 되는 건 아닐까 라는.




왼손잡이 아이를 둔 엄마들이 어디서 찾아볼 자료가 별로 없구나 라는 깨달음은, 그럼 내가 부지런히 기록을 남겨야겠다로 바뀌었다. 엄마들의 걱정이 무색하게, 왼손잡이로도 잘 크고 있어요. 별로 큰 문제도 아니랍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왼손잡이, 느린 아이여도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고 자주 육아일기로 남겨야겠다.



며칠 전 모지역에서 일어난 어린이집 성폭력 사건을 보며 몸서리가 쳐진다. 정말 중요한 건, 눈에 보이는 '왼손잡이'오른손잡이' 혹은 몸의 어디가 조금 불편한 문제가 아닐 거다. 내 아이가 나도 모르는 마음의 장애를 앓고 있는 건 아닌지, 마음속 괴물을 키우고 있는 건 아닌지, 눈에 보이지 않는 아이의 상태에 더 민감한 엄마가 되자고 다짐한다.




<엄마의 글쓰기>


최근 아이의 문제로 고민한 적이 있나요? 어떤 문제로 가슴앓이를 하셨나요? 남들에게 말하지 못했던 고민까지 솔직하게 적어보기로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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