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혜진
은결님, 가을의 짝꿍 - 책이라는 주제를 골라주셔서 어쩐지 반가운 느낌이 들었어요.
초등학교 3,4학년 때 셜록 홈즈 시리즈를 쌓아두고 읽었다니, 솔직히 놀랐어요. 저는 어렸을 때 책을 읽었던 기억이 거의 없거든요. 그래서인지 누군가 어려서부터 책을 무척 좋아했다거나, 책에 파묻혀 살았다는 이야길 들으면 굉장히 생경한 느낌이 들어요.
초등학교 2학년 때였던가, 엄마가 위인전 세트랑 창작 세트를 정말 큰 맘먹고 사주셨던 기억이 나요.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전집은 비싼 물건이었잖아요. 전집 두 질이 아빠 한 달 봉급의 반 정도 금액이었지 싶어요. 지난번 글에서도 쓴 적이 있지만, 아빠가 시내버스 기사로 일하며 받은 쥐꼬리만 한 월급을, 일부는 사고 뒷처리 비용으로, 일부는 아끼고 아껴 생활비로 썼는데, 그 와중에 반토박을 뚝 잘라 전집을 샀으니 엄마로서도 큰 기대를 갖고 사주시지 않았겠어요?
아무튼 그 기대에 저도 부응하고자 저도 열심히 읽으려고 시도는 했어요. 새책 냄새도 좋고, 표지도 예뻐서 자주 만져주긴 했는데, 글밥이 너무 많아서 혼자 읽어 내기가 힘들더라고요. 지금 여덟 살인 제 아이를 지켜보고서야 느껴요. 그림책으로 충분히 쌓은 시간이 있으면 단어와 문장, 이야기의 배경이 자연스럽게 이해가 되는 시점이 오더라고요. 그때 글밥이 많은 책으로 옮겨가잖아요. 저는 그림책으로 탄탄하게 배경을 쌓을 시간이 부족했었던 것 같아요. 사실 그림책을 쌓아두고 볼 형편도 안되었고요.
마음은 가는데 읽진 못하고 꽂아만 두었던 그 전집들은 한참 뒤에 A급 중고로 팔렸고요.
가만 보니까 어렸을 때부터 다독가였던 사람들과 저처럼 성인이 된 후에야 책을 읽기 시작한 사람들은 차이가 있더라고요. 꼭 그렇단 건 아니니깐, 그냥 재미로만 읽어주세요.
1. 문학서 VS 실용서
어렸을 때부터 다독했던 사람들은 문학, 에세이를 더 즐겨 읽는 것 같아요. 그리고 자기 계발서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몇 세기를 훌쩍 넘어 읽히는 위대한 작가들도 감히 이래라저래라 훈계하지 않는데, 자기 계발서 한 권 낸 작가, 당신의 잔소리라니? - 이런 거부감도 있다고 들었어요.
반면 늦깎이 독서가의 경우, 실용서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특히 자기 계발서를 무척 좋아하는 편이고요. 늦깎이 독서가들은 기본적으로 결핍이 있어요. 너무 늦게 시작했다는 조바심 같은 거요. 그래서 닥치는 대로 읽는 경향이 있고, 자극을 줘서 움직이게 하는 책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2. 삶의 일부 VS 도구
늦깎이 독서가들의 경우 책을 도구처럼 잘 활용해요. 철저하게 필요에 의해 읽는 경우도 많고요. 물론 읽다 보니 얻는 즐거움도 자연스레 생겼겠지만, 기본적으로 목적을 두고 읽는 것 같아요. 요즘 전 콘텐츠랑 마케팅이 너무 궁금해서 관련 책들을 쌓아두고 부지런히 읽고 있거든요.
책 읽는 게 어렸을 때부터 일상인 사람들은 목적으로서가 아니라, 그냥 삶의 일부이기에 읽는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왜 책을 읽냐'라고 물으면 제대로 답을 못해요. 왜 읽는지 답할 필요를 못 느끼는 거죠. 그냥 오랫동안 늘 해온 일이라. (장금이의 대사를 붙여 보자면, 홍시맛이 나서 홍시맛이 난다 하였는데 왜 홍시맛이 난다 하느냐 여쭈시니 홍시맛이 난다 할 수밖에...)
굳이 의미를 붙인다면, 삶을 돌아보기 위해...라고도 할 수 있지만, 그냥 날숨과 들숨처럼 자연스러운거죠.
어느 쪽이 더 우월하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닙니다. 사람마다 자라 온 환경이 다르니 단정 지어 말할 수도 없을 거라 생각해요. 여전히 결핍을 느끼는 저는 부지런히 계속 읽어갈 것 같고요. 쫓기는 기분으로 읽지 않도록 한 번씩 호흡 조절은 하려고요. 은결님은 어릴 적부터 꾸준히 읽어온 사람이잖아요. 제 의견에 공감이 되셨나요? 아니면, 다른 생각이신지도 궁금합니다.
힘겨웠던 임신 과정, 아이를 낳고 정신적으로 제일 힘들었을 때 문자 그대로 책이 살 힘을 주었던 지라, 앞으로도 책을 쉬 놓진 않을 것 같아요.
다만, 책에 갇혀서 시야가 좁혀지지 않도록 주의해야죠. 책이 모든 것을 다 해결해주는 것처럼 말하는 사람도 걸러야죠. (책 사기꾼!)
얼마 전에 '유튜브는 책을 집어삼킬 것인가'라는 책을 읽었어요. 책에선 텍스트가 우월하냐 영상이 우월하냐를 두고 싸울 필요도 없고, 시대적 흐름을 억지로 거스를 것도 없다는 이야기를 해요. 또 문해력을 들먹이면서 읽 기를 권력처럼 쓰는 자들에게, 문해력을 혼자만의 바벨탑처럼 쌓지 말고, 다리가 되어 다른 사람들과 나누자는 말로 결말을 맺고요. 읽고 쓰고 이해하는 삶이란 결국은 '좋은 삶'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이야기도요.
책은 결국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해 준다는 것, 어쩐지 상투적이지만 결론은 그렇게 나네요.
전 요즘 회사일로 머리가 터질 것 같아서 기분 전환 삼아 가벼운 에세이를 읽고 있어요. 제목은 '돈지랄의 기쁨과 슬픔' ㅎㅎㅎ
은결님은 무슨 책 읽으세요? 은결님이 전에 좋다고 하신 '루틴의 힘'도 제 옆에 쟁여놨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