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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엄마 May 19. 2020

엄마와 나는 손발이 딱딱 맞는 짝꿍은 아닙니다

다정한 일기 by 혜진



은결님, 지난주에 적어주신 ‘매일 하며 노력하는 것’에 관한 글을 흐뭇하게 읽다가 눈길이 딱 멎는 곳이 있었어요. ‘엄마, 더 잘하지 못해서 죄송해요’라는 편지.


은결님, 맏이지요? 맏이로서 부모님께 더 잘해야 한다는 마음의 짐은 항상 지고 있지만, 행동은 그렇게 살갑게 나오진 않지요? 제 얘기예요. 저는 엄마한테도 속 마음을 온전히 이야기한 적이 없어요. 늘 거리감을 두는 큰 딸이 엄마는 불만이지요. 다행히 밑의 여동생이 제가 채워주지 못하는 ‘다정함의 역할’을 해주고 있어요.






어릴 때 저는 참 자신감이 없는 아이였어요. 초등학교 3학년 때 소위 ‘왕따’를 당했던 적이 있어서 친구들 사이에서 항상 눈치를 보며 살았어요. 집에서라도 엄마에게 솔직히 털어놓고 기 좀 펴고 살았으면 좋았을 텐데, 집에서도 눈치를 보며 살았던 것 같아요. 아빠가 막 옮긴 직장에서 한창 적응 중이라 이런저런 사고를 뒷돈으로 퉁치던? 때였고, 엄마는 항상 부족한 살림을 메워가느라 예민한 상태였지요. 집이 넉넉하지 않다는 건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아도 몸으로 아는 법이라 갖고 싶은 것이 있어도 마음 놓고 ‘갖고 싶다’고 해본 적이 없었어요. 그때부터 자연스럽게 내 욕구를 숨기고 사는 법을 배웠던 것 같고요.



엄마는 다혈질 기질의 사람이에요. 한 없이 다정하고, 한 없이 쿨하다가도, 비위가 틀리면 다짜고짜 목소리부터 커지는 사람. 무슨 이야기를 꺼내려고 하면 일단 엄마의 목소리가 커지니까 말 붙이기가 무서웠지요. (엄마는 처녀 적엔 한 없이 순했는데, 모진 삶이 내 성격을 이렇게 바꿔놓았다고 말하는데요. 사람이 어디 변하나요. 다혈질을 숨기고도 살 수 있었다가  분출해야 살 수 있는 환경으로 바뀐 것일 뿐) 그래서 엄마가 누구에게 지지 않으려고 소리를 꽥꽥 지르며 싸움을 벌이던 몇 장면을 삼십 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해요.





작년에 하와이로 가족 여행을 다녀왔어요. 엄마, 아빠 그리고 우리 세 식구가 다 같이 가는데 천만 원이 넘게 드는, 액수만큼이나 일정 맞추는데도 큰 맘먹은 여행을요. 그렇게 어렵게 다녀온 여행을 모두 즐겼으면 좋았을 텐데, 첫날 렌터카 빌릴 때부터 일이 수월하게 진행되지 않았고, 호텔의 주차장 등록에 어려움을 겪었고 (부족한 영어로 인한 어려움) 시차 때문에 다들 피곤하고 예민했지요. 서로 조심은 하고 있었지만, 너나 할 것 없이 피곤한 몸 상태는 어떤 일이든 싸움으로 충분히 번질 수 있는 도화선 같은 상태였어요.



워터 파크에 가기 위해 아침 6시부터 다 같이 일어나야 했던 일정. 저는 먼저 일어나서 빵을 굽고 커피와 우유를 준비했는데, 굽던 빵이 좀 탔어요. 제가 그런 면에 좀 무심한 편이라, 탄 건 좀 떼고 먹으면 되지 하는데, “아니 이렇게 태운 걸 어떻게 먹으라고!”라고 아침부터 잔소리를 하는 엄마의 목소리가 거슬립니다. 짜증이 난 목소리로 “바쁘니깐 그냥 먹자”해도, 탄 음식은 안 먹는다며 굳이 냉장고에서 다른 음식들을 꺼내오는 엄마.  ‘나도 짜증 났다’를 보여주기 위함인지 빵이 들어있던 접시를 엄마가 개수대에 던지듯이 놓고 가는 순간, 전 폭발했어요.



 “여기에서까지 대장 노릇 좀 하지 마!!!”




그 뒤는 아주 가관이었습니다. 물건 함부로 던지는 그 나쁜 버릇, 우리 앞에서 보이지 마. 엄마 마음대로 하려고 하지 말라고. 온갖 소리를 엄마에게 포효하듯 질러댔어요.



엄마는 눈물이 맺힌 눈으로 한숨을 쉬면서 그렇게 말했던 것 같아요.


“나도 내가 다혈질인 거 알아, 아는데 안 고쳐지는 걸 어쩌겠어? 근데 너도 쉬운 애는 아니야. 알지? 너도 결코 쉬운 애는 아니야.”



여기에서까지 대장 노릇 좀 하지 마, 라니 나는 왜 그런 말이 나왔을까. 어릴 적 ‘엄마에게 찍소리도 못했던’ 그 아이가, 마흔이 돼서까지 엄마가 나를 억압하려 한다는 생각에 완전 고삐가 풀린 거죠.


엄마는 다혈질이지만 정이 많은 사람이에요. 불쌍한 사람들 보면 어떻게든 도움을 주고 싶어 하는 사람. 순수해서 자기감정을 속일 줄 모르는 사람. 좋은 건 좋고 싫은 건 싫은 사람.

지금 내 나이보다 훨씬 어렸던 우리 엄마, 영희 씨가 지고 있던 삶의 장면들을 떠올리면 울컥해집니다. 힘들었을 거란 거, 잘 알지요. 외로웠을 텐데, 위로받을 곳도 없었다는 거 잘 알지요. 속에 있는 울분을 터뜨려야 버틸 수 있었던 그 삶의 그 무게를 생각하면 저도 복잡한 감정이 되어 버립니다.






엄마와 저는 손발이 딱딱 맞는 짝꿍은 아닙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점이 너무 명확해서 슬퍼지기까지 합니다. 다른 딸들처럼 허물없이 엄마 품으로 파고드는 딸이 아니라서 죄송하기도 합니다. 엄마께는 한 없이 감사한 마음과 불편한 마음이 공존합니다. 다정한 짝꿍 같은 딸은 못되지만, 엄마의 삶을 조금씩 이해하겠다고 다짐해봅니다. 엄마도 그런 마음일 테지요.



가끔 글을 쓴다는 건, 어디까지 솔직해질 수 있는지 나를 시험하는 도구 같단 생각을 합니다.

이 글을 쓰다가 몇 번을 머뭇거리고, 멈추다 아직 저 깊은 이야기의 반의 반의 반도 꺼내 놓질 못했네요.

하긴 뼛속까지 핏속까지 닮는다는 엄마와 딸의 이야기를 어떻게 이 짧은 글 안에 다 담겠어요. 저랑은 다르게 애교로 똘똘 뭉친 딸아이를 볼 때마다, 엄마에 대한 마음이 더 복잡 미묘해집니다. 나도 엄마한테 저런 딸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죄책감, 혹은 엄마도 나 같은 엄마는 아니었잖아 하는 묘한 우월감.



그나저나, 하와이 사태 때문에 엄마랑 저는 여행 가기가 좀 껄끄러운 상대가 되었습니다.

어떻게 극복을 할 수 있을지....... 또르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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