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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엄마 May 22. 2020

할머니가 보고 싶어요

다정한 일기   by 은결

오늘이 목요일 밤이란 걸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집에 아이들을 데리고 있는 동안 자꾸 늦어지는 아이들의 잠자리 시간을 어떻게든 당겨보려고 애쓰고 있거든요. 9시가 넘어서야 글을 써야 하는 목요일 밤이란 걸 알게 되었고, 시간이 너무 늦어 어쩔 수 없으니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써야지, 하고 애들과 함께 누웠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11시 반쯤 눈이 떠졌고, 지금 제 방에 앉아 이 글을 씁니다. (글을 쓰기 전, 사부작사부작 정리를 하고 있는데 뭔가 쓰윽하는 느낌과 함께 누군가가 본다는 느낌이 들어 문쪽을 보니 정말 누군가가 쳐다보고 있더라고요. 첫째가 자다 깨서 내가 없으니 찾으러 온 거예요. 심장이 내려앉을 뻔했습니다. 귀신인 줄 알고. 제가 귀신을 무서워하거든요 :)


'엄마 글 쓰고 준이 옆에서 잘게'하니 알았다며 다시 자러 들어가는 아들입니다. 그래서 지금 제 마음은 아들의 이쁨으로 가득 찹니다. 엄마의 시간을 존중해주는 아들이라니!)


그나저나, 혜진님. 혜진님의 글을 몇 번이고 다시 읽으면서, 자녀의 서열(?)이 가져다주는 공통적인 특성에 꼬물꼬물 한 마음이 되었습니다. 엄마가 퇴직 전 1년 정도를 우리 집에 잠시 계신 적이 있는데 저는 그때 엄마와 딸에 대한 책도 찾아서 읽었더랬습니다. <나는 왜 엄마에게 화가 날까>, 상처를 주고받는 엄마와 딸을 위한 치유 프로젝트란 부제를 달고 있는 책인데 내용은 잘 기억이 안 나지만, 그 이후 엄마를 대하는 나의 태도가 조금 개선되었고, <나는 심리치료사입니다>라는 책에서 읽은 가족에 대한 저자의 생각에 매우 공감하면서 지금은 나의 마음이 많이 좋아졌답니다.


"우리는 가족들을 분석하기보다 지지해주어야 합니다...(중략).. 모든 가족들은 조금씩 정상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것은 모든 인간이 약간씩 정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중략).. 가족은 온갖 결함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얼마 안 남은 진정한 피신처 중 하나입니다.(메리 파이퍼, 나는 심리치료사입니다, 위고, 2019,  p.62~63)




엄마는 퇴직 후 더 이상 염색을 하지 않으셔서 반백의 머리카락을 가지고 계십니다. 얼마 전 엄마 집에 갔을 때 엄마방에 문을 등지고 낮잠을 주무시는 엄마를 봤습니다. 사람의 외양이 그 사람 모두를 규정짓진 못한다 하더라도 외적으로 보이는 엄마의 모습이 마음이 아팠습니다. 우리 엄마도 정말 할머니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에요. 지지받고 도움받는, 언제나 내 뒤에서 나를 받치고 있어 줄 것 같은 엄마가 이제는 제가 보살펴야 할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 엄마에 대한 내적 갈등은 이 마음 하나로도 거의 대부분이 없어진 듯합니다.


이렇게 내 생각이 빨리 변화된 건, 아마 할머니 영향이 크지 싶어요. 엄마가 계속 일을 해오셨기 때문에 저는 할머니 손에서 컸거든요. 게다가 첫 손녀인 저를 무조건 믿어주고 사랑해주셔서 할머니는 저에게 각별했어요. 그런 할머니가 2018년 3월에 돌아가셨어요. 갑자기. 심정지로요.


할머니 생각하면 눈물부터 나요. 보고 싶어서요. 그리고 내가 같이 못 있어준 시간 때문에 미안한 마음에서요.


할머니는 돌아가시기 전 5년 정도 엄마와 사이가 별로 좋지 못했어요. 엄마가 퇴직하면 귀농할 거라고 시골에 터를 닦아 집을 짓기 시작할 무렵부터요. 할머니가 당신을 안 데려가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나 봐요. 자꾸 엄마를 구박하고 아픈 소리를 하고 안 챙겨준다고 서러워하고. 그랬었죠. 결혼하고 시어머니 모시고 아빠 형제들 공부 뒷바라지까지 해준 엄마로서는 모든 서러움이 집약된 시간들이었을 거예요. 할머니만큼이나 힘든 시간을 보냈죠. 할머니는 양로원에도 요양병원에도 잠시 왔다갔다하시다가 마지막 1년을 엄마가 새로 지은 집에서 아빠와 단둘이 지내셨어요. 엄마가 나와 지내던 그 해요.


산자락에 터를 닦아 지어서 동네랑도 한참 떨어져 있고, 같이 지은 두 집도 주말에야 오기 때문에 할머니는 그 1년을 큰아들과 단둘이 지내셨는데, 그때 많이 힘드셨을 거예요. 아빠도 몸이 안 좋으신 데다 살갑게 챙기는 아들은 아니었기 때문에요. 가끔 아빠가 우리 집에 오셔서 하룻밤 자고 가시는 날에는 혼자 그 외진 곳에서 밤을 지새우셔야 했죠. 할머니한테 가서 같이 자던 어느 날, 할머니가 자꾸 창밖에 누가 지켜보는 것 같다는 말을 하시면서 무섭다는 말씀을 했었죠. 내가 이래 겁보다, 하시며. 그 말이 아직도 잊히지가 않아요. 그런 겁 많은 할머니를 그냥 혼자 둔 시간도요.


그런데 내 몸이 피곤하다는 핑계로 많이 찾아뵙지 못했어요. 할머니 얘기도 더 많이 들어주고, 자주 찾아뵙고 했어야 했는데. 더 오래 제 곁에 있을 줄 알았죠. 그렇게 아무 말 없이 떠나실 줄 알았나요. 아마, 할머니에 대한 그 마음이 엄마에게 그대로 투영된 듯합니다. 엄마와의 시간이, 아직 많이 남았겠지만, 같이 할 시간이 나날이 줄어들고 있는 건 사실이니까요.


이 글을 쓰다가 또 할머니 생각이 나서 훌쩍이고 있습니다. 우리 할머니 지금 천국에서 편안하게 계시겠지요? 아마 내가 가진 따뜻함이 있다면 거진 8할은 우리 할머니 덕택일 거예요. 우리 할머니, 너무 보고 싶네요.



혜진님께도, 심리적인 지지대가 되어주는 누군가가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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