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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음 Apr 20. 2021

공감의 실패에도 공감해 주세요

(feat. 브레네브라운 <수치심 권하는 사회>)

"수치심은 자신에게 문제가 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거부당하고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몹시 고통스러운 경험 또는 그 느낌이다. 우리들은 모순되고 경쟁적인 사회공동체의 기대 속에서 수치심을 느낄 때가 많다 <수치심 권하는 사회>"


우리는 수치심을 느낄 때마다 우리 자신이나 타인을 공격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우리 뇌가 '투쟁-도피 혹은 경직 반응(fight-flight or freeze reaction)'을 명령하기 때문이다. 뇌의 명령으로 일어나는 이 생리적인 과정을 우리가 극복할 수 있을까? 작가는 우리가 수치심에서 완전히 벗어날 가능성은 없지만, 수치심 회복탄력성을 기를 수 있다고 말한다.




수치심 회복탄력성의 기본조건: 공감


수치심 회복탄력성이랑 우리가 수치심을 느낄 때 그 감정을 인식하고, 수치심을 일으킨 경험을 통해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한다. 작가는 수치심 회복탄력성의 4대 요소가 공감, 용기-연민, 유대감이라 말한다. 우리가 이를 함께 실천한다면 개인의 수치심 회복탄력성을 키우고, 나아가 사회 역시도 유대감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더 건강해진다고 작가는 믿는다. 나 역시 전적으로 동감하는 바이다.


작가는 수천명의 여성을 인터뷰한 결과 수치심 회복탄력성에 있어서 "공감"이 수치심의 가장 강력한 치유방법임을 알아낸다. 무수히 많이 들어온 말, "공감". 상담자와 좋은 부모의 기본 중의 기본이요, 요즘은 기업의 리더들에게 조차 공감이 요구되고 있는 실정이다. 공감의 필요에 대해서는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공감을 제대로 알고 있는 걸까? 그리고 정말 공감하고 있는 걸까? 나는 어렸을 때부터 자타공인 공감을 잘하는 사람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고, 심리학을 배우고 상담을 하면서 내가 공감을 얼마나 못하는 사람인지 뼈저리게 깨달았다.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에게 관심을 집중할 수 있는 능력은 매우 드물고 어려운 것이다. 그것인 거의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사실 기적이다. 스스로 그런 능력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다.
-프랑스 작가, 시몬 베유/ 로젠버그 <비폭력대화> 중 인용"




공감이란?


중국의 장자(莊子)는 진정한 공감이란 "자신의 존재 전체로 듣는 것"이라 말했다.


"듣는 것에는 귀로만 듣는 것이 있고, 마음으로 이해하며 듣는 것이 있다. 그러나 영혼으로 들을 때에는 이런 모든 기능들이 비워지는 것이 필수적이다."

-장자/ 로젠버그 <비폭력대화> 중 인용-


어마어마한 정의다. 본질적인 의미에서는 장자의 이야기가 맞겠다. 하지만 너무 추상적이다. 공감에 대한 정의도 학자마다 천차만별이다. 작가 브레네 브라운은 공감을 "상대의 경험을 이해하기 위해 자신의 경험을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이나 능력"이라고 정의한다. 공감은 기적 같은 '기술'이나 '능력'이다. 그러니 공감은 어려운 게 당연하다. 하지만 우리는 공감이 무엇인지 잘 모르기 때문에 공감을 쉽게 생각하고, 때로 공감한다 착각하며 타인에게 상처를 줄 때가 얼마나 많은지. 공감은 누군가에게 타고난 자질이 있겠으나 대부분의 사람에게 공감은 훈련과 연습의 대상이다. 공감은 기술이나 능력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진정한 공감의 속성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1. 타인의 관점으로 세상을 본다(조망수용).

2. 비판하지 않는 태도를 갖는다.

3. 타인의 감정을 이해한다.

4. 타인의 감정을 이해한다는 사실을 표현한다.


공감의 속성을 수학 공식처럼 건조하게 표현했지만 주목해야 하는 부분은 타인의 "감정"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들 대부분 1.과 2.의 공감이 타인의 관점에서 생각하고, 비판이나 평가를 배제해야 함을 알고 있다. 그러나 3.과 4.의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고, 이해한다는 사실을 표현하는 공감은 무슨 의미인지 잘 알지도 못하고, 머리로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실천하기가 어렵다.


성폭행을 당한 여성을 만난 경우, 우리가 성폭행 경험이 없다면 그녀의 수치심과 분노에 공감할 수 있을까? 우리가 불의의 사고를 당해 먼저 떠나 보낸 부모를 만났다면, 아직 자녀가 없는 사람도 그들의 비통함에 공감할 수 있을까? 우리는 보통 다른 사람이 말하는 상황과 사건 자체에 압도된 나머지, 공감할 기회를 놓친다. 하지만, 그들이 그 속에서 경험한 느낌과 감정에 초점을 맞춘다면 동일하거나 유사한 경험을 하지 않더라도 공감할 수 있다.


작가는 "수치심에서 벗어나 공감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유대감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싶다면, 자신과 똑같은 경험을 한 소수의 사람에게만 공감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전업주부가 경력이 단절되어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을까봐 불안함을 호소한다고 하자. 이 이야기를 들은 워킹맘은 현재 자신은 일을 하고 있는 상황은 다르지만, 다시 일을 할 수 없을까 느껴지는 불안한 "감정"에는 공감할 수 있다. 싱글인 친구가 외로움을 호소할 때 남편과 두 아이를 둔 나는 상황은 다르지만, 결혼 생활 속에서도 느낄 수 밖에 없는 외로움이라는 "감정"으로 공감할 수 있다. 주의할 것은 나의 상황과 사건을 굳이 설명하려 들지 말고, 그 "감정"에 함께 머물러주는 것이다. 불안하고 외로운 감정을 느끼는 존재로서, 함께.




공감의 장애물


그러나 공감의 속성을 아무리 머리로 이해한다고 해도 공감은 여전히 어렵다. 작가는 공감의 장애요소를 다음과 같이 나누어 설명한다.


(1) 동정하는 태도

(2) 동정을 바라는 마음

(3) 더 강력한 패 내밀기

(4) 완벽한 공감에 대한 부담감


이 개념들은 책에 나와 있는 구체적 예시들을 봐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궁금한 분들은 꼭 책을 보시길 ^^). (4)번의 완벽한 공감에 대한 부담감은 위에서 말한 타인의 "감정"에 초점을 맞추라는 부분과 연결된다. 작가는 한 예시로 한 아프리카계 미국인 의대생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 놓는다.


"학교에 가면 흑인 취급을 받는데 가족이나 친구에게는 백인 취급을 받는 것이 수치심의 원인이예요. 학교에서는 다들 나를 이방인처럼 봐요. 모두 내가 소수집단 우대정책으로 특혜입학을 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게다가 나는 집이 꽤 가난한 편이라 대학교도 장학금을 받고 다녔어요. 동네 친구들은 대부분 고등학교도 제대로 졸업 못 했고요. 그러니까 학교에 가면 나는 대부분의 학생과 상황이 완전히 달라요. 그런데 집에 와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예요. 예전이나 지금이나 나는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는데 식구들은 내가 잘난 척한다고 생각해요. 난 그렇지 않거든요. 어디든 내가 어울릴 수 있는 곳에 있고 싶어요."


작가는 자신의 경험을 깊이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우리 대부분은 한 발은 이쪽 세상에 나머지 발은 다른 세상에 디디며 버틴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의대생 생활과 가족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려고 애쓰는 이야기에 귀를 열고 마음을 열었더니, 한쪽 발은 엄마의 세계에 그리고 다른 한쪽 발은 남자들이 지배하는 학자들의 세계에 딛고 있는 나의 상황이 떠올랐다. 그리고 균형을 잡지 못할 때 외롭고, 뭔가 잘못되고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처럼 느껴진 "감정"으로 그녀에게 공감했다. "감정"에 초점을 맞추면 완전히 다른 세계의 경험이어도 공감이 가능함을 보여준 예다.


오히려 공감을 잘하고 싶은 사람들이 이런 부담감 때문에 공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 부담감을 이기지 못하고 어설픈 자신의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으로 공감을 대체한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 때 온 국민이 함께 아픔에 공감할 수 있었던 이유는 우리 국민 모두가 자녀를 잃어본 경험이 있어서가 아니라, 한 부모로서, 한 자녀로서, 한 인간으로서 "상실감"이 무엇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상담에서도 마찬가지다. 부와 명예가 있지만 방황하는 자녀로 괴로운 아빠, 불의의 사고로 남편을 일찍 사별한 30대 여성, 남편의 외도로 이혼 여부를 고심하고 있는 40대 여성, 아이의 장애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신에게 죄책감을 느끼는 엄마...상담자가 이 모든 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공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이미 다양한 사람들의 심리적 증상과 치료방법이 연구되어 있는 심리학 이론을 열심히 배우고, 자신의 삶에서 조금이라도 유사한 경험을 살짝 떠올린 후 "감정"에 초점을 맞춰 공감하는 법을 훈련한다.


그러니 공감을 잘하고 싶다면 초점을 바꿔 보자. 나와 너의 "감정"으로 말이다.




공감의 실패에도 공감해 주세요


2018년 우울이 심하게 찾아왔을 즈음 나는 아이들과의 관계에서 공감에 번번이 실패했다. 어린 시절부터 엄마에게 언제나 높은 수행 수준과 성공을 요구 받았던 나는 그게 그렇게 싫었음에도 똑같이 아들에게 높은 수행을, 성공을 요구했다. 초등학교 단원평가에서 조차도 말이다. 아래 사진은 아들이 초등학교 때 단원평가에서 기대하던 성적을 받아오지 못했을 때 소리를 지른 후 나와 아들이 쓴 합의문(?)이다. 자세히 보면 알겠지만 2018년 5월 10일에 1차 합의문이 있고, 그로부터 한 달 뒤인 2018년 6월 19일에 2차 합의문이 작성되었다(이제 수치심 회복탄력성이 1만큼 추가되었으려나?^^;).


나는 어제도 공감에 실패했다. 늦게까지 학원에서 공부하고 오느라 한숨을 몇번이나 내쉬는 중학생 아들에게도, 바깥에서 거래처 비위 맞추며 돈 버느라 집에서 많이 웃지 못하는 남편에게도, 엄마랑 조잘대며 놀고 싶지만 블로그 포스팅 하느라 바쁜 엄마에게 실망한 딸에게도.


공감에 대한 글을 쓰고 있지만 나는 오늘도 아마 공감에 실패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공감에 실패하는 나에게 이전처럼 가혹하게 굴고 싶지는 않다. 그 순간에 공감을 해주지 못한 나의 감정도 존중해주고 싶다. 그 때의 공감을 못한 나도 나니까. 공감은 원래 기적 같은 일이고, 공감 진공 상태의 환경에서 자랐지만 지금 이렇게 공감하려 노력하고 있는 나를 알아주고 싶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렇게 공감의 실패에 공감을 해주면 타인에게 공감할 마음의 공간이 슬며시 늘어난다. 아들의 이야기가, 남편의 이야기가, 딸의 이야기가 그제서야 들리기 시작한다.


작가 브레네브라운 역시 공감이 마냥 어렵게 느껴진다면 자신의 감정부터 공감하라고 조언한다.


"공감의 실천은 먼저 가장 중요한 관계, 즉 '자신'과의 관계에서 시작해야 한다. 자신에게 공감하지 않으면 타인에게 공감할 수 없다. 자신에게 가혹하고 자신의 감정을 인정하지 못하거나 그럴 의지가 없는 사람은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힘들다. 실수했을 때 '난 정말 바보야, 제대로 하는 게 하나도 없어' 라며 스스로를 나무라는 사람은 자녀나 배우자가 실수했을 때도 똑같은 감정을 전한다. 진정으로 공감하고 유대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부터 먼저 알고 받아들여야 한다."

브레네브라운 <수치심 권하는 사회>


그러니 나에게 공감하는 것부터 시작해 보자. 그런데 이것 마저도 실패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럼 공감의 실패에 공감해주면 된다.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온 힘을 다해 공감하려는 노력은 나 자신에게도, 상대방에게도 전해지게 마련이니까.




※본 서평은 "수치심 권하는 사회_브레네브라운(1): 나의 수치를 덮은 축하 https://brunch.co.kr/@abigailjoz8/8" 에 연결되는 글입니다. 수치심에 대해 궁금하신 분들은 해당 링크의 글도 함께 읽어보시면 좋습니다 ^^


수치심 권하는 사회 책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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