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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음 Apr 25. 2021

시간은 되돌릴 수 있어요

(feat. 로리 고틀립 <마음을 치료하는 법>)

로리 고틀립의 책 <마음을 치료하는 법>에서 내 마음에 가장 울림이 되었던 내담자는 리타 할머니였다. 언뜻 보기에는 아직도 매력적인 외모가 돋보이는 멋쟁이 할머니지만, 깊은 우울증을 호소하며 심리치료사 로리를 찾아왔다. 더 이상 살아갈 희망을 발견하지 못하면 다가오는 70살 생일에 자살을 하겠다며.




가족의 상실: 리타 이야기


진료 기록: 리타
우울증으로 내원한 이혼 여성. '잘못된 선택들'이라고 믿는 것들과 제대로 살지 못한 인생에 대한 회한을 토로. 한 해 동안 삶이 나아지지 않으면 '끝낼' 계획이라고 함.
<마음을 치료하는 법> p.224


리타의 가족력은 그야말로 우울했다. 냉담한 부모의 늦둥이로 태어났고, 3번 결혼 모두 실패했으며, 4명이나 되는 자식들과는 연락을 끊고 지낸다. 친구도 친척도 사교모임도 없다. 그런 리타가 심리치료사에게 묻는다.


"현실적으로 이 나이에 뭘 바꿀 수 있나요?"


첫 번째 결혼은 사랑해서 한 결혼이었다.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그녀가 그토록 원하던 삶을 사는 것 같았다. 하지만 첫 남편은 일과 술에 빠져 살기 시작하더니 그녀와 네 아이들을 때리기 시작했다. 남편의 폭력을 무기력하게 방치했던 그녀는 어느 날 아이들을 데리고 도망쳤다. 아무런 대책도 없었다. 때리는 아빠 밑에서 풍족한 생활을 하던 아이들은 무능력한 엄마를 원망했다. 이혼하고서도 돈을 넉넉하게 주는 폭력적인 아빠를 따랐다. 부모의 폭력과 방치로 약물 중독, 우울증, 무기력증에 시달리던 네 아이는 모두 엄마를 떠났다. 이후 2번의 결혼에서도 리타는 불행했다. 그리고 철저히 혼자가 되었다.


헬로, 패밀리!


외로운 리타에게는 몸서리치도록 부러운 이들이 있다. 그들은 바로 리타의 맞은편에 사는 가족. 남편이 집에서 일을 하며 두 아이를 돌보고, 마당에서 목말도 태우고 공놀이도 하는 평범한 일상을 누리는 집. 매일 오후 5시쯤 퇴근해서 돌아오는 엄마는 문을 활짝 열며 이렇게 외친다. 

"헬로, 패밀리!"


그럴 때마다 리타는 화가 나서 부글부글 끓었다. 리타 자신에게는 '헬로, 패밀리!'가 인생에서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리타의 비밀, 그녀의 남자친구


상담을 진행하며 로리는 리타의 예술적 재능과 아직 건재한 미모를 자원으로 발견한다. 그리고 친구가 없는 줄만 알았던 그녀에게 '마이런'이라고 하는 남사친이 있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리타에겐 아직 살아갈 만한 비밀이 있었던 셈. 그런데 마이런과 아슬아슬 밀당을 하던 중 마이런이 잠시 딴눈을 팔게 된다. 리타가 상담까지 오게 된 직접적인 계기가 된 사건이었다(상담을 하면서 자주 느끼지만 진실을 늦게 말하는 내담자들은 상담자들을 당황스럽게 만들기도).


낯선 행복, 익숙한 불행


단 하나의 희망이었던 마이런이 없는 리타의 삶은 곧 절망으로 바뀌었다. 그러던 어느 날 리타는 그림 재료를 사기 위해 화방에 갔다(리타는 미술에 뛰어난 재능이 있다). 우연인 듯 필연인 듯 그곳에서 '헬로, 패밀리!'의 아이들과 부딪히며 그들과의 만남이 시작된다. 리타 할머니가 넘어졌기 때문에 친절한 '헬로' 아빠는 리타의 집까지 짐을 들어다 주었다. 헬로 아빠는 리타 할머니가 외로운 시간을 채우기 위해 그린 그림들을 보게 되고, 그 작품에 완전히 매료된다. 그리고 이 작품들을 전시하고 판매할 수도 있는 웹사이트 개시를 권유하고 사이트를 만들어 주기에 이른다. 이제 리타는 헬로 아이들에게 미술을 가르쳐 주고, '헬로 패밀리'와 저녁을 종종 함께 먹는 사이가 되었다. 게다가 마이런은 그녀가 절절하게 그리웠다며 뜨거운 마음을 고백했다. 그녀의 삶에 다시 희망이 움트기 시작한 것이다.


그럼에도 리타는 우울에서 나오질 못했다. 오히려 불안은 증가되었다. 삶이 확장되고 있음에도, 그토록 원했던 사람들과의 접촉이 시작되었음에도, 그녀 자신은 정작 삶을 즐기지 못한다. 아니 자신은 불행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세상을 결핍의 공간으로 보는 데 익숙하고, 그 결과 즐거움은 그녀에게 낯설기만 하다. 버림받은 느낌에 익숙하다면, 실망하고 퇴짜 맞는 게 어떤 느낌인지, 이미 알고 있다면, 당연히 기분이 좋을 리는 없겠지만 최소한 놀랍지는 않다. 자기 나라 풍습에는 익숙한 법이니까. 그런데 이방의 땅으로 건너가면 불안과 혼란을 느낄지도 모른다. 갑자기, 익숙한 게 아무것도 없어지기 때문이다." <마음을 치료하는 법> p.410


로리는 리타에게 묻는다.


"또 다른 불행이 닥치길 기다리고 있나요?"


기쁨에 대한 비합리적인 두려움 "케로포비아(cherophobia)"를 겪는 리타에게 내면의 진실과 직면하는 시간이었다. 이런 질문은 이상하게 들리기도 하지만, 사람의 영혼을 흔든다. 리타는 로리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며 불행은 늘 뒤따라온다고 자조했다.


"자신이 지은 죄, 아이들의 인생을 망치고, 두 번째 남편의 슬픔에 공감하지 못하고, 자신의 삶을 건사하지 못한 죄에 대한 자업자득. 근래의 행복의 기미들은 그녀에겐 오히려 끔찍하게 느껴진다. 훔친 복권이 당첨된 사람처럼 사기를 치는 기분이다. 최근 그녀의 삶에 들어온 사람들이 그녀의 실체를 알게 된다면 다들 역겨워할 것이다. 그들은 줄행랑을 칠 것이다. 한동안은 속일 수 있더라도. 몇 달, 1년쯤은 그럴 수 있더라도, 내 아이들이 나 때문에 그렇게 슬픈데 어떻게 내가 행복할 수 있겠는가. 그건 공평하지 않잖아? 그렇게 끔찍한 일을 저질러놓고 어떻게 사랑을 바랄 수 있어?" <마음을 치료하는 법> p.412


그리고 상담을 통해 리타는 또 하나의 새로운 진실에 눈을 뜬다. 그녀가 자신의 네 아이들을 남편의 폭력으로부터 적극적으로 보호하지 않았던 이유 중 하나가 자녀를 질투했기 때문이라는 것(무의식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며, 전부가 아닌 중요한 일부의 이유).


"부모들은 왜 이럴까? 자기 자식들의 어린 시절을 질투하기 때문일 때가 많다. 그들이 가진 기회. 부모가 제공하는 경제적, 감정적 안정. 자식에게는 창창한 미래가 펼쳐져 있고, 자신에게는 과거만이 남았다는 사실. 자신이 가져보지 못한 모든 걸 자녀들은 갖게 해주려고 노력하지만, 그러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행운을 누리는 아이들에게 미움을 품게 되기도 한다."

<마음을 치료하는 법> p.414


리타는 자신도 몰랐던 진실에 점점 더 가까워진다. 그녀는 자신이 저지른 죄를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집에서 10년간 간호하는 것으로 참회하려 했다. 자녀들이 자신과 연락을 끊는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으로 참회하려 했다. 그리고 70살 생일에 자살을 결심한다.


"본인의 죄에 합당한 형량이 얼마라고 생각하세요?"

"무기 징역이오."


리타가 자신에게 내린 선고였다... 이윽고 상담자와의 마지막 대화를 통해 리타의 우울증, 자살하고 싶은 이유에 대한 퍼즐이 맞춰진다.


"당신이 인생의 좋은 것들을 누리지 못해서 득을 보는 사람은 

 이 세상에 천지에 단 한 사람뿐이에요."

"그게 누군데요?"

"당신이요."


고통이 방패막이가 될 수 있다고, 우울함을 유지하는 건 회피의 한 형태일 수 있다고. 고통이라는 껍데기 안에서 그녀는 안전하다. 어떤 것도 직면할 필요가 없고, 다시 상처받을지 모를 세상 속으로 들어갈 필요도 없다. 내면의 비평가만으로 족하다. 그리고 비참함이 주는 또 다른 혜택은, 자신의 고통을 보며 마음이 풀린다면 아이들이 자신을 잊지는 않을 거라고 믿을 수 있다. 부정적인 의미로라도 누군가의 마음에 존재한다면, 완전히 잊히지는 않는 거니까. 티슈를 내리고 고개를 든 그녀의 얼굴에 수십 년 동안 마음에 담아온 고통을 새롭게 생각하는 듯한 표정이 어린다. 리타는 아마도 처음으로 자신이 처한 위기를 바라보는 듯하다(p.418~419).


새로운 가족, 다시 찾을 가족


리타는 자신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새롭게 해석한 뒤 행동에 나선다. 마이런에게 자신이 왜 그를 거절할 수밖에 없었는지, 자신의 모순된 삶을 진실하게 담은 편지를 보냈다. 리타는 이때에서야 자신의 삶을 통합해서 이해하기 시작했다. 분열된 자아를 통합하고 자신을 수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리타보다는 상처가 많지 않은 삶을 살았던 마이런은 그녀의 과거를 이해할 시간이 필요했지만, 결국 그녀를 이해했고 둘은 새로운 노년을 함께 하기로 한다. 물론, 헬로 패밀리도 함께.


자살을 결심했던 70 번째 생일에 그녀는 새로운 가족들로 둘러싸여 가장 행복한 생일을 맞았다. 그리고 딸에게도 진심 어린 편지를 보냈으며, 엄마의 진심에 감응한 딸에게도 답장을 받았다(그녀도 심리치료를 받는 중이다). 아직 엄마를 용서할 수는 없지만 용서를 부탁하지 않아서 기쁘다고. 다만 상담을 통해 엄마의 가장 좋은 모습을 기억해 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해피엔딩이다.




시간은 되돌릴 수 있다


리뷰를 하며 4년 전 한 심리학 강의에 참여한 기억이 떠올랐다. 이제 막 심리학의 재미를 알아가던 때였다. 그때 들은 내용은 프로이트의 '심리 성적 발달 단계'와 에릭슨의 '심리 사회적 발달 8단계' 였다. 에릭슨의 8단계는 다음과 같다. 

<에릭슨의 심리사회적 발달의 8단계>


예를 들어, 유아기 때(3세 이전)에는 엄마 뱃속 세계에 있다가 이 세계에 처음 태어났기 때문에 이 세상이 자신이 살 만한 안전한 곳임을 믿을 수 있어야 살아갈 수 있다. 즉 "신뢰"라는 발달 과업이 주어진다. 이 신뢰는 일상에서 사용하는 신뢰의 의미보다 더 깊은 차원의 "기초적 신뢰"를 의미한다. 이 때 형성된 신뢰가 앞으로 아기가 형성할 관계에서의 신뢰의 토대가 된기 때문이다. 아기의 세계인 부모가 "신뢰"를 주지 못하면 그 아이에게는 세계에 대한 "불신"이 형성된다. 하지만 아기에게 세상이 믿을 만한 것으로 경험되면 그 아기는 "희망"을 갖게 된다.


각 연령대별로 발달 과업이 다르며, 그 과업을 성취하지 못했을 때 고착되는 감정과 성취했을 때 얻게 되는 성품 또는 가치가 다르다. 내 나이대별로 발달 과업과 수행 정도를 생각해 보니 대략 다 맞아떨어져서 신기했다. 에릭슨이 프로이드보다 환경적 영향을 훨씬 강조하지만 정신분석은 기본적으로 결정론적 입장을 취한다. 특히 프로이트의 경우엔 청소년기 이후에는 새로운 발달 과업을 제시하고 있지도 않다. 청소년기 이전에 인간의 모든 성격이 결정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강의가 끝나고 Q&A 시간, 60대의 중년 남성분이 질문의 옷을 입은 삶의 속살을 드러냈다. 


"이런 심리학 강의를 들으니 정말 새롭네요. 젊었을 때 진작 알았더라면 제 딸과의 관계가 달랐을 것 같아요. 하지만 이제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는 게 참 한이 됩니다... 강의를 들으며 참 슬펐어요.. 이제는 시간이 너무 지나갔기 때문에 되돌릴 수가 없는데 그럼 저와 딸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눈가가 촉촉해진 채로 마이크를 들고 떨며 질문했던 그분의 모습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의 질문은 나의 질문이기도 했다. 나이에 따라 성취해야 할 발달 과업이 있는데 그 과업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시간이 지나갔다면, 회복의 기회는 영원히 없는 것인가? 특히 프로이트의 이론은 결정론적 입장을 취하기 때문에 그의 이론이 놀랍게 맞아떨어질 때마다 속으로는 마음이 쓰라렸다. 지나간 시간은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약간의 침묵이 지나고 강사님은 그분의 이야기에 먼저 공감해 주셨다. 


"그렇죠. 시간이 너무 지나간 것 같아서, 이제는 시간이 되돌릴 수 없으니 이 관계를 더 이상 풀 기회가 없을까 봐 이런 강의를 듣고 더 속상해지셨을 것 같아요. 하지만, 시간은 되돌릴 수 있습니다."


응? 무슨 말이지? 강의를 듣는 사람들 모두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몇 초간의 침묵이 이어지다 강사님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때 못한 것들을 지금 하면 시간을 되돌릴 수 있어요. 인간이 태어나 가장 먼저 획득해야 할 과제가 "신뢰"였지요? 8단계에 나오는 대로 아무것도 제대로 해주지 못했다면 1단계부터 시작하시면 됩니다. "신뢰"부터 시작하는 거예요. 딸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고 해서 이미 아기 때 부모에게 받아야 할 신뢰를 줄 수 없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 그때 주지 못한 것들을 줄 수 있어요. 그럴 수 있다면, 시간은 되돌릴 수 있지요. 자녀와의 관계도, 애착도 회복할 수 있습니다."


질문했던 분은 조용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강의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그 말이 귓전에 오래도록 쟁쟁했다.


"시간은 되돌릴 수 있다"


2년 전 나는 그 강사님(교수님)이 계시는 대학원에 입학하고 작년에 그 대학원을 졸업했다. 그 이후로 나는 시간을 되돌리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바쁜 워킹맘이라는 핑계로 요리 한번 해주지 못했지만, 이제는 아이들을 위해 백종원 유튜브를 보며 요리를 한다. 어린 시절 결핍되었던, 나에게 너무 필요했던 엄마의 칭찬을 유치찬란하게 요구하기도 한다. 딸아이와는 생뚱맞게 고무줄을 뛰기도 하고, 중학생이 된 아들과 이제서야 책을 통해 대화를 나눈다. 입시 공부하느라 몰랐던 독서와 글쓰기의 기쁨을 알아가고 있다.


리타 역시 시간을 되돌린 것 아닐까? 그녀는 상담을 통해 자신의 영혼과 대면했다. 삶을 재해석한 후 자신을 처벌하기 위해 또는 우울로 회피하고자 했던 삶의 과업들을 그녀는 70세에 해나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결과는 예상치 못한 서프라이즈 선물로 가득한 삶이었다.


시간은 되돌릴 수 있다. 과거의 상실을 제대로 애도하고, 현재에 그 상실을 회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게 결핍된 것, 내가 상실한 것이 무엇인지 깊이 이해하면 현재에서 그것을 줄 수 있다. 때로는 상담을 통해, 때로는 한 권의 책이나 한 편의 영화를 통해, 때로는 현재의 관계에서 과거가 줄 수 없었던 것을 받을 수 있다. 그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영혼을 대면할 '용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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