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C.S.루이스 <천국과 지옥의 이혼>)
"지상은 결국 별개의 장소가 아님을 깨닫게 되리라는 것이내 생각이다. 천국 대신 지상을 선택한 사람은 지상이 처음부터 지옥의 한 구역이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또 지상을 천국 다음 자리에 놓은 사람은 지상이 애초부터 천국의 일부였음을 알게 될 것이다."
C.S.루이스 <천국과 지옥의 이혼>
나는 기독교인이다. 천국과 지옥이 있음을 믿는. 그럼에도 지상에서의 삶에 집중하느라 천국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상상하는 시간은 참 짧다. 이 책은 천국과 지옥에 대한 기존의 고정관념을 뒤흔든다. 그리고 진짜 천국과 지옥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상상하게 만든다. 그 상상만으로도 지상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 자문하게 되는 힘을 가진 책이랄까.
<나니아 연대기>의 작가로도 유명한 C.S. 루이스라는 현시대 최고의 기독교 변증가는 문학을 통해 기독교를 "보여준다". 그가 쓴 <천국과 지옥의 이혼>은 천국과 지옥에 대한 판타지 소설이다. 문제는 판타지 소설임에도 그 속에 펼쳐지는 천국과 지옥의 모습이 실재할 것만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는 점이다. 루이스가 말하고 싶었던 천국과 지옥, 그리고 지상에서의 삶은 무엇일까?
'회색 도시'라 일컫는 지옥에 사는 이들은 어디론가 향하는 버스를 기다린다. 버스를 기다리는 와중에도 그들은 사소한 일로 다툰다. 천국행 버스에 탑승한 지옥 사람들은 천국에 대한 기대가 아예 없는 것처럼 묘사된다. 기회가 있으니 한 번 나들이 가보는 정도랄까? 이 지옥은 유황과 불구덩이의 모습을 한 지옥이 아니다. 흉측스럽게 생긴 괴물과 악마들이 즐비한 곳이 아니라, 말 그대로 '회색' 느낌의 '도시'의 모습이다. 지상의 어느 곳이 바로 그런 느낌일 것 같은 기묘하고 서늘한 느낌을 준다. 그들에게는 그럭저럭 살 만한 지옥인 것이다.
천국에 도착한 후에야 그들은 자신의 실재를 알아차린다. 그들은 실재하지 않는 투명한 '유령'일 뿐. 그렇기에 천국의 '실재'를 경험하는 것이 버겁기만 하다. 천국의 아름다운 풀밭을 밟는 것조차도 아프고 힘이 든다.
"나들 그들의 모습에 숨이 헉 막혔다. 빛 한복판에 완전히 노출되어 있는 그들은 투명했다. 빛을 배후로 서 있을 때는 완전히 투명했고, 나무 그늘 속에 들어가 있을 때는 불투명한 부분이 생겨서 얼룩얼룩하게 보였다. 찬연한 공기 위에 묻어 있는 인간 형상의 얼룩이었다.
C.S.루이스 <천국과 지옥의 이혼>
인간 형상의 얼룩 같은, 존재감 없는 유령들은 지상의 삶에서 자신과 함께 했던 '견고한 영'들을 만난다. 자신이 고용했던 직원을 천국에서 만난 사장 유령. 그 직원은 살인자였다. 살인자였던 그도, 살인을 당한 누군가도 천국에 있다는 사실에 놀란 사장 유령은 좀처럼 이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직원을 가혹하게 부렸던 사장 유령은 평생을 반듯하게 살아온 사람이라 자부한다. 반듯하게 살지 못한 그들은 천국에 있고 반듯했던 자신이 지옥에 떨어졌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한 때 직원이었던 영으로부터 천국에 머무르길 원하는 사람은 얼마든지 천국에서 살 수 있다는 복음을 들은 사장 유령 . 그럼에도 그는 불공평한 복음에 반듯하게 분노를 표현하며 당당히 지옥으로 돌아간다.
"난 평생을 반듯하게 살아왔어. 그렇다고 내가 종교적인 사람이었다는 말도 아니고, 잘못 하나 저지르지 않았다는 말도 아니야. 사실 그런 것과는 좀 거리가 있지. 하지만 난 평생 최선을 다해 살았다고, 알겠어? 난 모든 인간에게 최선을 다했지. 난 그런 사람이었어."
(거절하지 마세요. 혼자서는 절대 못 갑니다. 그리고 전 사장님께 보냄을 받았는걸요)
"오호, 그런 꼼수가 숨어 있었군그래?" 유령이 소리쳤다. 겉으로는 억울해하는 것 같았지만, 그 목소리에는 일종의 승리감이 깔려 있는 것 같았다. 자기가 애원을 받아 주는 입장이 되었다는 승리감 말이다. 유령은 거절할 수 있는 자리에 있었다. 그는 이것을 유리한 상황으로 여기는 것 같았다.
C.S.루이스 <천국과 지옥의 이혼>
성직자 친구들의 만남도 인상적이다. 한 친구는 신앙을 지적으로 추구했던 성직자 유령으로 지옥에 떨어졌고, 진실한 신앙과 삶을 추구했던 친구는 천국에 살고 있다. 천국에서 오랜만에 만난 둘 간에 심오한 대화가 오가지만 성직자 유령은 점잖게 지옥으로 돌아가 자신이 만든 신학 학회에서 하나님에 대해 자유롭게 탐구하기로 선택한다.
(천국의 거룩한 산맥으로 따라오라는 친구의 말에) "그러기 위해 확신할 만한 증거들이 좀 따라 주어야 하네. 자네가 데려가겠다는 그곳에 가면 내가 지금보다 더 넓은 영역에서 쓸모 있게 사용되고, 하나님이 주신 재능도 더 폭넓게 사용하며, 자유로운 탐구 분위기를 누릴 수 있다는 보장이 필요해. 한마디로 말해서, 문명과, 음..... 영적인 삶이 의미하는 모든 것이 있어야 한단 말이지."
"아니, 그런 건 약속할 수 없네. 자네가 쓸모 있게 사용될 영역이란 없어. 자넨 그곳에서 전혀 필요 없는 존재라네. 자네의 재능이 폭넓게 사용되는 일도 없을 걸세. 재능을 왜곡하고 오용한 데 대한 용서가 있을 뿐이지. 자유로운 탐구 분위기라는 것도 없네. 내가 자넬 데려가는 곳은 질문의 땅이 아니라 해답의 땅이니까. 그리고 그곳에서 자넨 하나님의 얼굴을 보게 될 테니까."
C.S.루이스 <천국과 지옥의 이혼>
신학을 공부하면서 알량한 지적 희열감에 도취되기도 했던 나를 찌르는 말이었다. 지적으로 하나님을 추구하는 것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 지성도 결국 하나님을 아는 '도구'에 불과한데 인간은 자신이 하나님을 알아간다는 그 느낌에 도취된다. 루이스는 그 느낌을 경계하라고 말하는 듯하다. 질문의 땅인 이 세상에서 붙잡는 지식은 퍼즐의 조각일 뿐이다. 그 분의 얼굴을 마주할 해답의 땅에 가야 퍼즐의 전체 그림을 볼 수 있다.
이 밖에도 천국 문턱에서도 물감과 종이를 찾는 화가, 천국을 쟁취하라고 연설하는 혁명가, 도서관 유령, 자신 외에는 가족을 구원할 수 없다고 믿는 엄마 유령 등이 등장한다. 내게 가장 인상 깊었던 유령은 작은 도마뱀을 어깨 위에 얹은 유령이었다. 아마 도마뱀은 유령의 정욕을 상징하는 듯했다. 유령은 겉으로는 도마뱀의 달콤한 속삭임을 물리치려는 듯 그에게 닥치라고 소리치지만, 천사가 도마뱀을 죽이고 싶은지 묻자 이내 머뭇거린다.
(제가 조용히 만들어 드릴까요?) 천사가 말했다.
"그럼 고맙지요."
(그러려면 죽여야 합니다)
"오, 오, 잠깐만! 내가 먼저 타 버리겠어요."
(도마뱀을 죽이고 싶지 않은가요?)
"죽인다는 얘기는 처음에 안 했잖습니까? 그런 과격한 일로 번거롭게 해드리고 싶지 않아요."
(방법은 그것뿐입니다)
"글쎄요. 그건 좀 더 생각해 봐야 할 문제네요."
(죽일까요?)
"글쎄, 시간을 두고 토론해 봐도 될 것 같은데."
(그럴 시간이 없습니다)
"솔직히, 그럴 필요는 전혀 없다고 생각해요. 이젠 제가 통제할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죽이는 것보다는 점차 길들이는 게 훨씬 나은 방법인 것 같아요. 정말 날 돕고 싶다면 내 허락 없이 도마뱀을 죽여 버렸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당신이 원하지 않는데 내 맘대로 도마뱀을 죽일 수는 없습니다. 그건 불가능해요.)
C.S.루이스 <천국과 지옥의 이혼>
내 어깨 위의 도마뱀이 뭘까? 하나님께 쓰임 받고 싶다는 소망으로 포장된 나의 인정욕구? 자녀를 사회에 보탬이 되는 훌륭한 인재로 키워보고 싶다는 소망으로 포장된 나의 욕심? 나는 내 어깨 위의 도마뱀을 죽이고 싶긴 한가? 내가 진정으로 원한다면 주님은 내 어깨 위 도마뱀을 죽일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은 아닌지... 마음이 돌덩이처럼 무거워진다. 돌덩이 같은 마음을 가볍게 하실 수 있는 분도 그 분이기에 이 마음을 들고 그분 앞에 다시 엎드릴 수밖에.
<천국과 지옥의 이혼>이라는 제목은 동시대에 활동했던 윌리엄 블레이크의 <천국과 지옥의 결혼>이라는 소설 제목에서 착안하여, 천국과 지옥은 결혼할 수 없음을 역설하고 있다. 선과 악을 결혼하게 하려는 시도에 대해 루이스는 '그럴 수 없다'라고 단언하고 있다. 점점 선과 악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시대. 루이스는 시대의 예언자로서 선과 악은 타협할 수 없으며, 천국과 지옥 역시 결혼할 수 없다고 경고한 것은 아닐까?
지옥에서 천국으로 잠시 소풍을 간 유령들 중 천국에 머물기를 기꺼이 선택한 유령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인간의 자기중심성이 얼마나 지독한지 잘 보여주는 슬픈 결말이다.
그럼에도 천국을 향한 기회는 열려 있다. 중력처럼 작용하는 자기중심성을 거슬러 하나님의 자비와 그분의 얼굴을 구하는 "선택"을 할 때, 우리에게 천국에 머무를 기회는 또다시 은혜로 주어진다. 내 마음에도 티끌만 한 불씨가 꺼지지 않고 영원히 살아 있길!
"저 회색 잿더미 속에서 티끌만 한 불씨라도 남아 있다면 우린 그 잿더미가 붉고 선명한 불꽃으로 되살아날 때까지 열심히 입김을 불어넣을 걸세. 그러나 온통 잿더미뿐이라면 입김을 불어넣을 생각을 영원히 할 수가 없지."
C.S.루이스 <천국과 지옥의 이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