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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음 May 11. 2021

책을 사랑한다면 이렇게

(feat. 연결하는 & 균형 있는 독서  from<정신과의사의 서재>)


책을 읽는 내내 생각했다. 이토록 책을 사랑하다니. 의사 공부는 언제 했고, 의료 활동은 어떻게 했으며, 가족들과 시간은 어떻게 보내는지 의심이 갈 정도로 이 책은 온통 책에 대한 이야기뿐이다. 온통 책뿐인 이야기인데도 이렇게 유쾌하고 유용하다니.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작가(이쯤이면 의사라기 보다 작가라는 직함이 더 어울린다)는 자신이 책을 사랑하게 된 이유부터 작가로 데뷔하게 된 계기, 자신이 책을 읽는 원칙과 방법, 자신만의 독서 스타일에 대한 이야기들을 상세하지만 지루하지 않게 풀어 놓는다. 오히려 상세한 이야기 덕분에 다독 노하우와 인용 자료 정리에 대한 유용한 꿀팁도 얻을 수 있다. 작가는 진정한 책 덕후이자 정신과 의사로서 다양한 책 읽기를 권한다. 작가가 책을 어떤 마음으로 대하고 있는지 고스란히 느낄 수 있기에 작가가 권하는 책들은 모조리 읽고 싶을 정도로 무한 신뢰가 갔다. 책의 가장 뒤편에 실린 '하지현이 읽은 책들'은 올해 내 블로그와 브런치의 단골 책들이 될 것 같은 예감이다.




나는 왜 읽는가?


정신과 의사는 의학이나 심리학 책만 읽어도 읽을거리가 넘쳐날 것 같다. 그럼에도 분야를 가리지 않고 다독을 하는 작가는 자신의 전문성과 독서를 어떻게 연결하고 있을까? 작가는 <공간이 사람을 움직인다>라는 책을 읽고 정신과 교과서에는 나오지 않는 공간과 심리의 상호작용을 알게 된다. 그리고 '안다'의 영역이 넓어지는 것을 경험하며 이렇게 말한다.


"전문가는 자기 영역의 모든 것을 아는 사람이 아니다. 그런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확실하게 알고 있는 것 외에는 섣불리 아는 척하지 않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할 줄 아는 사람이 전문가의 정의여야 한다. 내 분야에 대해 확실하게 아는 것에 더해, '안다는 것을 아는 것'에 대한 경계가 분명한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조금씩 그 영역이 넓고 확고해지고 깊어지기를 바라면서 책을 읽는다."

하지현 <정신과 의사의 서재> p.26


'안다는 것을 아는 것'에 대한 경계가 분명하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아마도 이런 의미가 아닐까 생각해 봤다. 내가 여태까지 안다고 생각했는데 아는 게 전혀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되는 순간이 있다. 그런 순간을 맞이할 때 앎에 대한 새로운 스위치가 켜지는 것 같다. 그때부터 새로운 앎이 시작된다. 점점 더 앎이 깊어지고 넓어지면 '아... 이 정도면 내가 알고 있는 건, 정말 알고 있는 게 맞구나' 확인하게 되는 그런 '과정'을 말하는 게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공부를 하게 되면서 무언가 알게 되지만 '정말 내가 제대로 아는 걸까?' 의심하면서 성찰적, 능동적 독서를 한다면, '안다는 것을 아는 것'에 대한 경계가 점점 분명해지지 않을까.


한편, 한 분야만 너무 깊게 들어가다 보면 때로는 오히려 길을 잃을 때도 있다. 심리학 책만 봤을 때는 이해가 안 되는 내용들이, 다른 분야의 책을 읽다가 전혀 다른 관점에서 이해가 되는 신기한 경험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아는 것을 아는 것'에 대한 경계가 분명해지기 위해서는 다른 우물 구경이 필요한 것 같다. 한 우물만 깊이 파기보다 다른 우물 구경도 해봐야 내 우물을 잘 파고 있는지 확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대학원을 졸업한 후 대상관계이론 관련 도서와 논문만 읽고 싶었다. 그런데 그 분야와 관련된 책을 정독하며 왠지 모를 답답함과 막히는 느낌이 들었다. (아마 내 성격과 더 관련 있겠지만) 한 분야만 들고 파기에는 나는 다른 분야에서 인간을 어떻게 설명하는지 궁금하고, 심리학과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호기심이 간다. 비심리학 분야의 책들을 심리학적 관점에서 읽어보고, 심리학 책을 다른 관점에서 보려고 하는 시도들을 해보니 연결되는 지점들이 보인다. 이 연결의 짜릿함이 좋아서 서평을 수록하는 브런치 매거진의 이름도 '연결하는 서평'으로 지었다.


"(중략) 나는 그보다 한 뼘 더 깊은 정보를 원한다. 정보와 정보가 서로 맥락을 갖고 연결되기를 바란다. 더 나아가서는 정보들이 모여서 하나의 서사를 만들어가기를 바란다. 연결점이 없어 보이는 사실들이 알고 보면 서로 다른 맥락에서 하나의 서사로 겹쳐지는 것을 찾아냈을 때, 엄청나게 즐겁고 짜릿하다."

<정신과 의사의 서재> p.20~21


독서를 통해 맥락을 갖고 연결되는 지점들을 찾아가고 있지만 아직 '서사'로 연결되지는 못했다. 언젠가는 '서사'로 그려질 날을 꿈꾸고 있다. 그렇기에 작가의 말을 통해 내가 다양한 분야의 독서를 하려는 이유를 다시 한번 선명하게 인식하게 된다. 그리고 내가 왜 읽는가에 대한 나만의 대답에 괜찮다는 확인 도장을 받은 것 같아 흐뭇해진다.




균형 잡힌 독서를 위해


안다는 것을 아는 것에 대한 경계가 분명한 사람이 되기 위해 작가는 '균형 잡힌 독서'를 하려고 애쓴다. 좋아하는 분야의 책만 읽으면 편하고 재미있지만 뇌가 한쪽으로만 비대해져 결국 탈이 날 수 있다는 말. 작가는 편식이 몸에 안 좋은 것처럼 편독 역시 뇌 건강에 좋지 않다고 말한다. 그는 마음에 드는 책을 여러 경로를 통해 만날 때마다 인터넷 책 구매 사이트 장바구니에 담았다가 한 달에 한두 벌 대량 구매를 한다. 부모가 식구들의 건강을 위해 5대 영양소가 골고루 들어간 식재료를 고르듯, 장바구니에 담긴 책 리스트 중 넣을 건 넣고 뺄 건 빼는 분류 작업을 다시 한다. 그가 수차례의 시행착오 끝에 정착한 분류법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① 좌뇌 우선 책

인문사회, 과학 책등 알찬 지식을 전달하는 책들.

정신의학, 심리서, 뇌과학 등 자신의 업과 관련된 공부를 하기 위한 책, 책을 쓰기 위한 정보를 담고 있는 책들로서, 밑줄 그으면서 읽어야 하는 책들이다.


② 우뇌 우선 책

에세이, 소설, 비소설, 르포, 인터뷰집과 같이 공감하거나 감성을 건드리는 것이 먼저인 책. 

이런 책은 휴식이고, 딱딱하게 굳어서 먼지가 폴폴 나는 머리를 말랑말랑하게 풀어주는 분무기여야 한다.


③ 쾌락중추 우선 책

만화, 일러스트집과 같이 쾌락을 우선으로 하는 책. 

도파민과 세로토닌이 뿜어져 나오는 쾌락중추를 자극하는 책으로, 나에게는 재미만을 주는 책이다. 감정적 울림보다 표면의 쾌락을 추구하는.


작가의 이런 분류법이 꽤 맘에 들었다. 올해 3월까지 읽은 책들을 생각해 보니 80프로 이상이 좌뇌 우선 책이다. 한쪽으로만 비대해지는 책 구성임에 틀림없다. 우뇌 우선 책과 쾌락중추 우선 책에 대한 비중을 좀 늘려보고 싶다. 특히 만화책을 다시 읽을 생각을 하니 왠지 설렌다. ㅎㅎㅎㅎㅎㅎㅎ


내 앞의 책장도 바라본다. 좌뇌 우선 책들이 즐비하다... 심리학, 신학, 자기계발, 경제/경영 도서(남편 책들), 나머지는 아이들 책인데 아이들 책마저도 3칸(고전 문학)을 제외하고는 좌뇌 우선 책들이 많은 편이다. 영화를 보면서 우뇌를 자극하는 편이었는데 책으로도 우뇌와 쾌락중추를 자극하는 균형을 추구하고 싶어진다. 무슨 책으로 우뇌와 쾌락중추를 자극할지 생각하는 순간부터 내 입꼬리가 올라가기 시작한다. 특히, 작가가 좋아한다는 만화<슬램덩크>와 <유리가면>은 진심 다시 읽고 싶다(현재 당근마켓에서 열심히 구하는 중).


5월의 한 가운데로 들어선 지금, 올해 12월까지 내가 만나게 될 책들을 기대한다. 1년 동안 편독하지 않고 골고루 책을 읽으며 마음이 더 건강해지길, 다른 분야의 책들을 읽으며 그 내용들이 서로 연결되는 경험을 더 많이 할 수 있길. 그래서 독서의 행복이 내 삶 구석구석 스며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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