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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음 Apr 28. 2021

평균적 경로가 아닌, 미답(未踏)의 방향으로 나서보자

(feat. 토드로즈 <평균의 종말>)


평균은 허상이다. 그렇다면 평균의 종말 시대에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는 무엇일까? 바로 "개개인성(individuality)"이다. 저자는 개개인성의 원칙 3가지를 들쭉날쭉의 원칙, 맥락의 원칙, 경로의 원칙으로 설명한다. 이하는 책의 내용을 요약한 후 떠오른 단상들을 정리하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책 내용에 대한 이해를 도모하기 위해, 평균의 시대와 개개인성의 시대를 대표하는 사고와 원칙을 표로 정리해 보았다.





들쭉날쭉의 원칙 vs 일차원적 사고

: 인간의 재능은 다차원적


<평균의 종말> p.125

인간은 하나의 차원으로만 설명될 수 없는 매우 복잡한 존재이다. '저 사람은 체격이 크다'라고 말할 때 기준은 무엇일까? 어떤 사람은 키가 크면 체격이 크다고 말하고, 어떤 사람은 체중이 높으면 체격이 크다고 말한다. 체격을 구성하는 요소를 세분화하면 대답은 더 어려워진다. 다음의 그림을 보자. 왼쪽 사람은 키는 작지만 체중, 팔 길이, 허리둘레, 다리 길이 등은 평균보다 길다(솔직히 놀랐음 ㅋ). 오른쪽 사람은 키, 팔 길이, 허리둘레는 길지만 체중, 어깨너비 등은 평균보다 작다. 그야말로 체격을 이루는 각 요소는 들쭉날쭉이다.



<평균의 종말> p.136

지능은 어떨까? 지능을 구성하는 차원도 역시 다차원적이다. 어떤 친구는 언어능력이 뛰어나지만 수학은 못한다. 수학에서도 대수 파트는 잘할 수 있지만 기하 파트는 여전히 약할 수 있다. 같은 이과라도 어떤 친구는 수학은 잘하지만 과학은 못할 수도 있고, 과학을 못한다고 해도 물리는 못하지만 생물은 잘할 수 있다. 다음의 그림은 보편화된 지능검사인 WAIS 검사의 10가지 항목에 대한 IQ가 같은 두 여성의 세부항목별 지능의 차이를 보여준다. 즉, 일차원적 사고를 통해서는 복잡한 데다 '균일하지 않고 들쭉날쭉한' 뭔가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들쭉날쭉의 원칙(jaggedness principle)'이 바로 이러한 차이를 설명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왜 일차원적 사고를 통해 지능이나 재능을 평가하려 할까? 저자는 말한다. "우리 대다수가 평균주의 과학에 길들여져 은연중에 개개인보다 시스템을 우선시하기 때문이다(p137)". 또한 이런 일차원적 사고를 통해 개개인에 대해 틀린 판단을 내리더라도 평균적으로 따지만 무작위 선발보다는 나은 결과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개개인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시스템에서 소외되는 개개개인은 언제나 발생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누구든 언제든지 그 소외의 당사자가 될 수 있다.




맥락의 원칙 vs 본질주의 사고

: 천성은 없다


저자는 더욱 도발한다. 그리고 골턴이 우리에게 물려준 본질주의적 사고를 깨부순다. 본질주의 사고(essentialist thinking)는 성격(지능도 포함)에 대한 본질을 규정하는 특성들을 알면 그 사람의 '진짜' 정체성을 꿰뚫을 수 있다는 믿음을 말한다. 저자는 성격을 유형화하는 MBTI와 애니어그램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듯하다. MBTI를 검사 결과를 통해 나는 내향형인지 외향형인지를 쉽게 단정하여 말할 수 있을까. 대중들의 웃음을 책임지는 유명 개그맨이 집에서는 내향적일 수 있고, 회사에서 내향적인 직장 동료가 홍대 클럽에서 열리는 파티를 즐기는 경우도 종종 있지 않은가. 아이 양육에 있어서는 직관적인 결정을 종종 내리지만, 업무에 있어서는 구체적이고 감각적인 사고를 주로 사용하진 않는지. 여행 계획은 치밀하게 세우는 판단형이만 시험 준비 계획은 유연하게 세우는 인식형일 수도 있다.


<평균의 종말> p.160

워싱턴대학교 교수인 유이치 쇼다는 여름 캠프 참여 관찰을 통해 모든 아동이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 다른 성격을 나타낸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어떤 여자아이는 매점에서는 외향적이지만, 운동장에서는 내향적인 모습을 보인다. 어떤 남자아이는 운동장에서는 외향적이지만 수학 수업에서는 내향적이다(사회 시간에는 또 외향적일 수 있다!). 다음의 그림은 쇼다가 캠프에 참가한 2명의 소년을 표준적인 공격성 척도 질문지를 분석한 결과이다. 공격성 지수가 0.8로 동일한 두 소년은 상황별로 공격성이 달랐다. 왼쪽 친구는 부모에 대한 공격성은 낮고, 남자아이에 대한 공격성은 높지만 오른쪽 친구는 정 반대다. 상황 맥락별로 공격성이 달라지는 것이다.


쇼다는 본질주의 사고의 대안으로서 '상황 맥락별 기질(if-then signature)'를 제시한다. 어떤 사람의 성격 묘사를 할 때 이 방법을 따르면 좀 더 개개인성을 잘 드러낸 성격을 표현할 수 있다(이 방법에 따라 나와 내 가족들을 표현해 보니 MBTI나 애니어그램보다 훨씬 더 나와 가족의 성격에 대한 표현을 불편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만약에(if) 잭이 사무실에 있으면 그럴 땐(then) 아주 외향적이다.

 만약에(if) 잭이 수많은 낯선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 그럴 땐 약간 외향적이다.

 만약에 잭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그럴 땐 아주 내향적이다."

 <평균의 종말> p.159


이런 '맥락의 원칙(cotext principle)'은 놀랍게도 성품에도 적용된다. 대표적인 성품 중 하나인 '성실성'도 상황 맥락별로 달라지며(저자는 마시멜로 연구의 광풍도 본래 연구 의도와 다른 방향이라 지적한다), 회사에서 직원을 채용할 때에도 개개인성의 맥락의 원칙을 고려할 때 그 직원의 수행력도 훨씬 좋아진다고 덧붙이고 있다.




경로의 원칙 vs 규범적 사고

: 이정표 없는 길


우리는 인간의 발달에 정상적인 경로가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내 아이가 기어야 할 때 기지 않고, 엄마, 아빠를 말해야 할 때 말하지 않거나, 글씨를 읽을 수 있을 때 읽지 않으면 초조하고 조바심을 내기 마련이다. 하지만 저자는 인간 발달의 정상적 경로가 있다는 믿음도 평균주의의 산물인 '규범적 사고'에 기인한 것이라 믿는다.


"규범적 사고의 핵심 가정은, 평균적인 사람, 아니면 적어도 성공한 졸업생이나 전문가 같은 본받고 싶은 어떤 특정 그룹의 평균적인 일원이 따르는 길이 올바른 경로라는 것...(중략)... 이 규범은 현재 우리의 개인적·직업적 삶 전반에서 좀처럼 존재를 드러내지 않으면서 은연중에 페이스메이커(속도 조종자)로 역할하고 있다."


여러 연구 결과에 따르면 아기들이 반드시 '배밀이'나 '기기'를 거치지 않고 걷지만 이런 과정들이 생략되면 의사들은 아기의 발달에 문제가 생긴 것처럼 겁을 주곤 한다. 파퓨아뉴기니 원주민들의 아이들은 단 한 명도 기는 단계 없이 걷는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오지에서 아기를 바닥에 너무 오래 닿게 놔두면 기생충에 감염되기 십상이라 아기띠에 많이 업고 다녀서였다. 서구에서는 가정의 바닥에 위험한 세균이 비교적 없는 것이 안전해서 많은 아기들이 기어 다녔을 뿐이란다. 환경과 문화의 맥락이 다르니 경로가 달라진다.


"경로의 원칙은 2가지 확신을 중요하게 여긴다. 첫째, 우리 삶의 모든 측면, 또는 특정 목표를 위한 여정 역시 똑같은 결과에 이르는 길이 여러 갈래이며, 둘째, 당신에게 가장 잘 맞는 경로는 당신 자신의 개개인성에 따라 결정된다."

<평균의 종말> p.190


'경로의 원칙(pathways principle)'에 따르면, 우리 아이를 아무리 과학고나 의대에 보내고 싶어도 그 길이 아이가 개개인성을 잘 발휘하는 경로는 아닐 수 있으며, 내가 아무리 모 대기업에 취직하고 싶다고 하더라도 그 길이 나의 개개인성을 최대한 드러낼 수 있는 경로는 아닐 수 있다. 그리고 그 경로는 나 자신만이 알 수 있다. 그러니 그런 경로를 알아내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야 한다(<평균의 종말> p.208).




평균의 종말 시대를 살기 위해

: 불안을 견디는 힘


책을 덮으며 개개인성의 원칙 3가지에 머물러 보았다. 들쭉날쭉의 원칙, 맥락의 원칙, 경로의 원칙.


불현듯 내 깊은 곳에서 불안의 감정이 차오른다. 3가지의 원칙은 너무나 확실한 인생의 "불확실성"에 대해 일관되게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4차 산업혁명을 바라보면서도 구 시대의 평균주의 사고에 아직도 사로잡혀 있는 이유는, 자신의 미래를 예측하고 통제하고 싶어하는 인간의 불안도 큰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두려움, 무서움, 걱정, 초조, 공포, 공황 상태 등은 모두 일정한 형태인 '~할까 봐'라는 메시지를 갖는다. 모두 미래 감정이다. 인간은 미래를 예측하려는 경향이 있다. 미래를 미리 알고 예측하여

통제하고 싶은 마음도 이런 감정들과 관련 있다. 인류 문명이 발전하는 방향은 이러한 예측하려는 경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김용태 <기독교상담의 이해와 원리> p.147


불안은 미래 감정이다. 어쩌면 인간은 예측하거나 통제할 수 없는 미래를 통제하기 위해 "평균"이라는 허상을 만들어 낸 것은 아닐까. 그 개념에 기대어 인간의 예측 불가능한 행동을 예측하려 하고, 예측한 데이터로 사람들을 평가해 왔던 것은 아닌지.


불안은 정신분석에서도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사람은 불안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다양한 방어기제를 사용하는데, 무의식적으로 일어나는 방어기제를 사용하는 과정에서 현실을 부정하거나 왜곡시킨다. 이 책에서 평균의 역사를 보면 확인할 수 있듯이, 평균에 기대어 내놓은 수많은 결과들은 언뜻 보기에도 이해할 수 없는 많은 논리적 비약과 왜곡이 가득했다. 이 점도 인간의 방어기제 측면에서 이해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아들이 27개월 때 아기 발달연구소에 데려가 발달 검사를 받아본 적이 있다. TV에도 자주 나왔던 유명한 선생님은 "나는 아기 때의 발달 데이터만 보더라도 그 사람의 20대부터 60대까지 예측할 수 있다"로 단언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섬뜩하고 분노할 만한 말임에도, 그때의 나는 권위자 앞에 너무나 취약했다. 27개월 아이를 보고 60대를 예측할 수 있다는 그 논리적 비약은 어디에서 유래한 것일까.


미래는 예측할 수 없다. 평균이 종말하는 시대는 인생은 불확실하다는 확실한 사실을 받아들여야 도래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째야 할까. 미래의 불확실함으로 인한 불안을 견딜 수 있어야 이 시대를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사람들이 불안을 견디기 위해 자주 사용하는 방법은 통제 또는 회피이다. 공부를 잘하기 위해 쏟아지는 졸음을 통제하며 밤새 공부하거나 잠을 자는 방법 말이다. 하지만 통제와 회피는 단기적으로는 효과가 있지만 그 방법에 고착되는 것은 장기적으로는 바람직하지 않다.


불안은 회피와 통제가 아닌, 있는 그대로 수용할 때 그 불안을 견딜 수 있다. 아이러니한 말이지만 수많은 책들과 경험을 통해 이제는 그렇다고 수긍할 수 있다. 불안을 있는 그대로 껴안는 것...그것이 불안을 다루는 가장 근원적인 힘이 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이토록 강렬한 불안을 혼자, 오래 견딜 수 있을까? 우리는 그렇게 강한 존재가 아니다. 그러니 불안한 나, 불안한 너를 바라보며 연민하고 공감할 수 있다. 서로의 불안을 껴안는 유대감으로 사회 전체를 드리우고 있는 불안의 그늘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불안한 존재이다. 그래서 자꾸 나의 인생을, 가족의 인생을 예측하고 통제하고 싶어 한다. 평균이라는 개념에 기대어 비교하고 기준에 도달하지 못하면 나를 채찍질한다. 하지만 평균은 허상이다. 불안한 인간이 만들어낸. 저자의 도움으로 이제 평균의 개념에는 도끼질이 가해졌다. 나도 평균이 종말한, 개개인의 시대에 살고 싶다. 그러기 위해 나의 불안을 껴안고, 너의 불안을 껴안고, 불안을 견뎌주고 싶다. 그렇게 견뎌주며 미답의 방향으로 나서보자.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어떤 경우든 당신에게 유용한 경로가 한 가지 이상은 있게 마련이라는 점과 당신에게 가장 잘 맞는 최상의 경로가 미답(未踏)에 가까운 경로일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니 새로운 길에 도전해 미답의 방향으로 나서보라. 그 방향을 따르면 평균적인 경로를 따르는 것보다 성공에 이를 가능성이 더 높아질 것이다."

<평균의 종말> p.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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