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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음 Mar 11. 2022

부모로서 자신과 잘 지내고 있나요?

(feat. 권경인 <엄마가 늘 여기 있을게> Part 1.)


“부모로서 자신과 잘 지내고 있나요?”


이 책은 이 질문으로 시작해서 이 질문으로 끝나는 책이다. 자녀 양육에 대한 노하우나 꿀팁 같은 건 말해주지 않는다. 다만 그럭저럭 괜찮은 부모가 되기 위해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부모인 내가 자기 자신과 잘 지내는 일이라고 말한다.


이 책에서 말하는 ‘자기이해’는 단순히 의식적인 차원의 자기이해만을 뜻하지 않는다. 내가 모르는 나, 즉 무의식적 차원의 나를 새롭게 발견하는 의미로서의 자기이해를 말한다. 객관적인 시각에서 나라는 사람을 조망하기 위해서는 어린 시절부터 억압 또는 부인해 왔던 무의식을 의식화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저자는 자신의 무의식을 이해하기 위한 강력한 도구로서의 대상관계이론을 소개한다.


“누구를 막론하고 그 누구도 인간 접촉의 욕구를 초월할 수는 없다(Yalom, 2005)”. 대상관계이론에서는 관계 형성 욕구를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욕구로 본다. 자신을 알기 위해서는 내 욕구를 알아야 하는데 그 욕구의 바탕에는 반드시 ‘관계’가 있다. 이 책에서는 대상관계이론의 ‘대상’은 ‘주체’와 관계를 맺는 어떤 것으로, 정서적 색채를 갖고 있는 것이라 정의한다. 인간이 관계를 형성하는 첫 대상은 누구일까. 거울보다 먼저 보게 되는 그 얼굴, 바로 엄마이다. 따라서 관계의 시작인 부모-자녀 관계 패턴을 이해하는 것은 자신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과정일 수 밖에 없다.


자녀는 부모와의 상호작용, 즉 ‘내면화 과정(함입-내사-동일시)’을 통해 자기(self)를 만들어 나간다. 부모가 자녀에게 반복적으로 표현한 메시지 또는 행동은 내면화 과정을 통해 어린 자녀의 마음에 프로그래밍된다. 중요 대상인 부모와 아이의 상호작용을 통해 내면화된 메시지는 아이의 내면에 심리적 잔재를 남기고, 수많은 상호작용이 축적되면서 그 잔재는 아이의 심리적 구조, 즉 ‘성격’을 형성한다. 이 때문에 자녀가 성장한 후에도 성격의 기초가 된 내면화된 메시지들은 그들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어린 시절 받은 예언이 성인이 되어 현실화되고 있는 셈이다.


누구에게나 각자의 예언이 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엄마가 자신의 편이라고 생각하는 아이는 어떤 사람을 만나도 자신의 편이 되어주리라 믿는다. 그러나 집에서 늘 지적당하고 부족하다는 메시지를 많이 받은 아이는 밖에 나가서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자기 자신은 항상 어딘가 부족한 존재, 부적절한 존재라는 느낌을 가지게 된다. 그렇다고 현실보다 지나치게 부풀린 긍정적 메시지는 오히려 아이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예를 들어 “아무도 널 이길 수 없어”, “네가 제일 예뻐” 등의 과장된 메시지는 관계왜곡을 불러올 수 있다는 지적이다. 따라서 부모는 자녀에게 어떤 메시지를 언어적 또는 비언어적으로 보내고 있는지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저자는 부모와 아이의 관계를 이해하는 이론으로 대상관계이론 외에 애착 이론도 함께 소개하고 있다. 내면화 과정을 통한 부모와의 관계 유형은 안정애착, 불안정애착, 회피애착으로 나눌 수 있다. 애착유형이 결정되는 만18개월까지 안정애착이 형성되면 부모를 안전기지로 삼아 세상을 향한 자유로운 탐색을 시작할 수 있지만, 불안정애착은 중요한 대상과의 관계에서 불안을 느껴 그들의 사랑을 끊임없이 확인하거나 매달리는 행동을 한다. 회피애착은 중요한 대상과의 관계에서 불안을 느낀 점은 불안정애착과 동일하지만, 대처하는 방식은 반대이다. 오히려 중요한 대상과 거리를 두는 방식으로 관계 속에서 불안한 자신을 방어한다. 저자는 관계 속에서 우리가 느끼는 불안을 버려짐의 두려움, 삼켜짐의 두려움으로 나누고 있는데 불안정애착은 버려짐의 두려움을, 회피애착은 삼켜짐의 두려움을 더 크게 느끼는 사람들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부모로서 내 애착유형을 이해한다면 나와 자녀의 애착유형과 그 관계 안에서 흐르고 있는 두려움의 실체를 이해하고 더 나은 관계로 발전시킬 수 있다.




칼 구스타프 융은 자녀가 짊어져야 할 가장 큰 짐은 부모 내면의 '살아보지 못한 삶'이라고 말했다. 필자는 어렸을 때부터 엄마라는 존재가 너무 무거웠다. 내 인생의 반은 엄마였다고 거침없이 표현할 만큼. 내 삶이 아닌, 엄마가 살아보지 못한 삶을 살아내느라 그토록 무거웠음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무서운 사실은 내가 그렇게 무거웠으면서도 나는 아이들에게 내가 살아보지 못한 삶을 또다시 짐지우려 할 때가 많다는 점이다.


저자는 자기이해능력을 심리적 자본이라고 표현한다. 자기이해능력이 높은 부모가 아이가 필요로 하는 것들을 제 때에 제대로 공급해줄 수 있다. 부모는 자녀에게 경제적 자본만 유산으로 물려주는 것이 아니라 심리적 자본도 물려줄 수 있다. 나 역시도 아이들에게 심리적인 짐, 심리적인 부채가 아니라 심리적 자본을 물려줄 수 있는 부모가 되고 싶다. 내 심리적 자본은 현재 어느 정도로 쌓이고 있는 걸까.


우리 엄마는 그 삶의 맥락에서 심리적 자본이 서너 푼인 사람이었다. 외도가 심했던 외할아버지와 평생 그런 남편과 자녀를 위해 일하느라 허리가 굽어진 외할머니 밑에서 자란 딸. 그러니까 엄마는 정서적인 굶주림이 있지만 버려질까 삼겨질까 두려워 중요한 타인과 차단하는, 회피형 애착유형을 가진 사람이었다. 딸인 내가 공부를 열심히 하도록 헌신과 희생을 마다하지 않으셨지만 딸의 정서적인 욕구는 거의 무시했다. 엄마와 대화를 하다보면 벽에 가로막힌 듯했다. 대화가 안 통하니 나도 점점 대화를 멀리 하게 되었다. 이제는 그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나 역시 그 패턴을 자녀들과 반복할 때가 많음을 이제는 인식할 수 있다.


우리 가계에 흐르는 이 무서운 대물림을 끊어 내기 위해 나는 이 길로 들어섰다. 심층적인 자기이해와 자각을 통해 무의식적 반응을 의식적 결정으로 만들어 나가는 여정, 나는 그 길로 오늘도 걷고 있다. 저자는 자기이해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기법이나 방법만 강조한 부모교육은 결정적인 장면에서 써먹을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니 결정적 순간에 쓸 수 있는 자기이해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말이다. 이 말을 본 순간 내가 어떤 부모가 되고 싶은지, 현실적인 목표를 떠올릴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멈출 수 없는 데 멈추는, 힘 있는 엄마가 되고 싶다. 감정 버튼이 눌러지는 때를 잘 이해하고 있어서 감정을 컨트롤 할 수 있는 엄마, 아이들의 말이나 행동에 감정적으로 반응하기 보다 잘 담아두었다가 아이들이 소화할 수 있는 언어로 돌려줄 수 있는 엄마가 되고 싶다. 백무산 시인의 시 ‘정지의 힘’이 떠오른다. 그래, 나는 씨앗처럼 정지할 수 있는 엄마가 되고 싶은 거다. 그 정지의 힘으로 꽃을 피워낼 수 있는 엄마. 그럼 엄마가 되어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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