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권경인 <엄마가 늘 여기 있을게>)
하인츠 코헛의 자기심리학에 따르면 사람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자기대상(self object)’을 필요로 한다. 자기대상은 아이가 필요로 하는 심리적 기능을 충족시켜주는 양육자를 의미한다.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취약한 상태의 아이에게 부모가 자기대상 역할을 대신함으로써 아이는 자기감을 형성하고 자신과 타인을 구별하기 시작한다.
자기애적 욕구에는 과대자기 자기애적 욕구, 쌍둥이 자기애적 욕구, 이상화 부모 이마고가 있다. 자기대상은 유아의 자신을 있는 힘껏 부풀리고 싶어하는 욕구, 좋은 자기대상과의 공통성, 연대감에 대한 욕구, 모든 면이 이상적이라고 여겨지는 대상과 연결되고 싶은 욕구에 적절하게 반응해 주어야 한다. 이러한 자기애적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심리적 산소처럼 필수적인 것이 ‘공감’이다. 그러나 공감은 지나치면 오히려 병리적인 자기애를 발달시킬 수 있기 때문에 자녀의 심정을 읽어주는 공감만으로도 건강한 자기애를 발달시켜 나갈 수 있다.
부모가 대신 해주던 자기대상은 아이가 자라면서 자신의 내부에 장착되어야 한다. 이 과정을 ‘변형적 내면화’라 한다. 변형적 내면화가 일어나기 위한 전제조건은 공감이다. 그러나 공감만으로는 변형적 내면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아이가 부모와의 관계에서 쌓여진 공감의 토대 위에서 적절한 좌절을 경험함으로서 외부에 있던 부모 자기대상을 자신의 내부로 안착시킨다. 지나친 좌절은 트라우마나 고통만을 안길 뿐이다. 좌절이 전혀 없는 완벽한 환경에서도 자기는 건강하게 발달할 수 없다. 아이가 견딜 만한 ‘최적의 좌절’ 경험을 하는 과정에서 자기는 응집성, 항구성, 탄력성을 점차 갖추어나가며 자율성 있는 자기로 발달할 수 있다. 즉 최적의 좌절 경험은 심리적 성숙으로 나아가는 디딤돌 역할을 해준다. 사람을 성숙하게 하는 결정적 요소가 공감이 아닌 좌절이라는 점은 어딘지 아이러니한 진실이다.
그렇다면 심리적으로 성숙한 부모는 어떤 특징을 가지는가? 저자는 좋은 것과 나쁜 것을 통합하는 것이 심리적 성숙의 중요한 지표라 말한다. 통합은 두 개의 정신적 요소를 의미 있게 합치는 것이다. 통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부분대상과 전체대상의 개념을 알 필요가 있는데 아이가 엄마를 처음으로 경험할 때는 부분대상으로 지각하다가 점차 자라면서 엄마를 전체대상으로 지각하게 된다. 젖가슴이라는 부분대상으로 지각된 엄마는 all good인 줄 알았지만 아이 자신이 원하는 때에 젖을 줄 수 없는 엄마는 all bad로 경험된다. 그러다가 점차 good과 bad가 or의 관계가 아니라 and의 관계로 경험되는 것이 통합이다. 즉 대상에게 good과 bad가 동시에 존재함을 인식하지만 결국은 그 대상의 good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이 통합, 심리적 성숙이다. 부모가 자녀의 good과 bad를 인식하면서도 자녀의 good을 어떤 최악의 상황에서도 유지하고 남겨줄 수 있다면 그는 심리적으로 성숙한 부모라 볼 수 있다.
반대로 심리적으로 성숙하지 않은 부모는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가? 심리적으로 미성숙한 부모는 아이를 아프게 한다. 그들은 투사, 투사적 동일시, 분열, 이상화와 평가절하라는 방어기제를 자주 사용한다. 투사는 자신 안의 공격성을 견디지 못해 상대방의 공격성으로 전가시키는 방어기제를 말한다. 투사적 동일시는 상호작용이 없는 투사와 다르게 상호작용을 통해 상대를 조정하거나 정서적으로 통제하려 하는 방어기제이다. 힘에 의한 투사적 동일시가 심한 부모는 자녀의 삶에 과도한 개입을 시도함으로써 자녀를 숨막히게 하고 부모에게 의존하는 무력한 존재로 만든다. 의존의 투사적 동일시가 심한 부모는 자녀가 오히려 부모를 돌보는 역기
능적 가족 관계를 만들어 낸다. good과 bad를 통합시키지 못하는 부모는 자녀의 마음에 드는 부분만 수용하고 거슬리는 부분은 거절함으로써 자녀를 분열시키기도 한다.
정신과 의사 김건종의 저서 <마음의 여섯 얼굴>에는 프랜시스 베이컨의 그림 <자화상>이 나온다.
어딘지 흉하고 음습하기까지 한 자화상이다. 얼굴이 심하게 뭉그러져 있어 전체적으로 어떤 형태인지 알아보기 어렵다. 눈, 코, 입이 다 따로 떨어져 있는데 확실하게 포착할 수 있는 건 슬프고 텅빈 눈이다. 도널드 위니코트는 베이컨이 “엄마 얼굴에 있는 자신을 보고 있으며, 무심한 엄마에게 보이기 위해 고통스럽게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본서에서 말한 전체대상과 부분대상, 분열, 통합에 대한 개념이 그림 속에 모두 깃들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본서의 전체적인 내용은 “통합”이라는 하나의 주제로 향하고 있다. 책의 구성과 흐름 자체에서 부모에 대한 공감과 최적의 좌절을 교차로 전달함으로써 통합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자 한다. 공감의 중요성을 말하면서도 지나친 공감을 경계하며, 지나친 좌절도, 좌절이 전혀 없는 상태도 아닌 최적의 좌절이라 균형을 잡아 주고, 초기 애착이나 대상관계가 무척 중요함을 반복하여 말하지만 결코 그것이 전부라고 말하지 않는다.
책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마음이 아픈 부모들도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그 아픔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부모가 결정적 시기에 아이에게 주었어야 했지만 주지 못한 소중한 것들이 많이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을 더 읽어 내려가다 보면 상실한 시간과 경험을 애도하고 있을 즈음 저자의 따뜻한 위로를 만날 수 있다. 필자가 가장 인상 깊게 읽었던 부분은 심리적 자본이 서너 푼인 부모라고 하더라도 가진 것으로 최선을 다해 아이를 사랑할 때 신께서도 그를 칭찬하실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심리적 자본이 서너 푼인 부모의 bad와 부모의 역할을 다하려 고군분투하는 good을 동시에 인식하면서도 최선을 다하는 부모의 good을 유지해 주는 저자에게서 진정한 통합이 무엇인지 배울 수 있었다.
저자는 양육의 가장 중요한 원칙은 아이가 태어나 자기 본연의 모습을 가지고 ‘자기’를 존중하는 자연스러운 인간으로 성장하게 돕는 일이라고 말한다. 2년 전 JTBC에서 방영된 <싱어게인>에 출연한 30호 이승윤은 기독교계에서 유명한 이재철 목사님의 아들이다. 이승윤이 우승한 후 한 신문사에서 목사님에게 자녀교육의 원칙에 대해 인터뷰를 했다. 자녀교육의 첫째 각론을 자녀의 ‘자립’으로 꼽은 목사님에게 기자가 “그렇게 자립한 자녀는 무엇을 가지게 됩니까?”라고 질문했다. 목사님의 대답은 이랬다. “자기만의 영혼입니다”.
자기만의 영혼. 부모는 심층적인 자기이해를 통해 우선 자신만의 영혼을 되찾아야 한다. 자신만의 영혼을 소유한 부모라면 적절한 양육을 통해 아이가 자기만의 영혼을 소유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 그 양육은 퍼펙트를 요구하지 않는다. 적절히 좌절도 제공하면서, 반응하기보다는 존재하는 엄마로서의 역할을 하는 엄마면 충분하다. ‘엄마가 늘 여기 있을게’. 아이가 인생의 어떤 길목을 지나든지, 아이의 마음에 내면화된 안전기지에서 언제나 들을 수 있는 목소리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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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7. 집단역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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