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멜라니 클라인과 이어령)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이론이 시대의 획을 그은 때에, 본능적 욕동에 관계의 개념을 처음 도입한 이는 멜라니 클라인이라고 할 수 있다. 대상관계이론의 어머니 격이랄까. 놀랍도록 창의적인 심리학 이론을 만들고 놀이치료라는 새로운 지평을 열었음에도 그녀는 원가족의 관계에서 불행했고, 그녀의 배우자(이혼), 자녀들과도 불행한 관계를 이어나갔다. 그녀의 첫째 딸은 어머니를 따라 정신분석학자의 길을 걸었지만 어머니 클라인에 사사건건 반대하기 일쑤였고 클라인의 장례식에도 오지 않았다고 할 정도니 부연 설명은 더 이상 필요 없을 정도다.
프로이트는 우리의 마음을 일종의 기계 장치처럼 생각했다. 그는 산업혁명의 물결 속에서 사람의 심리도 과학적 원리로 설명할 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 마음이라는 기계가 돌아가기 위해서는 당연히 '에너지'가 필요하다고 보았고, 그 '에너지'는 사람의 '성적 본능'이라고 주장했다.
클라인은 그 당시 대세였던 프로이트의 이론을 다 물리치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고유한 관점을 발전시켜 나갔다. 그녀는 성적 본능보다는 '죽음 본능'이라는 원시적인 타고난 파괴성이 유아 삶의 동력이자 심리적 갈등의 중심이라고 보았다(후기 연구에서 프로이트도 '죽음 본능(타나토스)' 개념을 추가했다).
클라인은 죽음 본능뿐만 아니라 유아들의 '환상'을 핵심 개념으로 언급했다. 태아는 엄마 자궁에 있을 때부터 엄마의 존재, 자궁, 페니스, 젖, 음식물, 분비물 등과 같은 신체적 부분들에 대한 생래적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클라인의 원초적 용어들이 처음엔 거북하게 느껴졌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태아의 첫 세계는 엄마의 자궁 속이었고 그 안에서 여러 경험을 했으리라는 당연한 사실에 이제야 눈을 뜨게 되었다. 그러므로 태아의 태내 경험은 지식으로 축적되고 그 안에서 성이나 공격성 등으로 점철된 무의식적 '환상'을 품고 태어났을 가능성은 충분해 보인다. 그렇기에 유아는 그 '환상'을 통해 투사되고 내사된 외적 대상들과 내적 관계를 맺기 시작하는 것이 클라인 이론의 주요 골자다.
'죽음 본능'. 이제 태어난 신생아에게 삶을 경험하기도 전에 죽음 본능이 있다는 게 무슨 말일까.
"죽음 본능에 대해 그녀는 이 본능을, 태어났다는 사실을 원상태로 돌리고, 갈등과 좌절이 없다고 가정되는
출생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가려는 삶의 초기의 필사적인 노력이라는 실존적 용어로 묘사하고 있다... (중략)
... 삶의 본능과 죽음 본능은 인간이 죽을 때까지 갈등상태로 그리고 부분적 융합 상태로 남아 있다."
김창대 등 <대상관계이론 입문>
책에서 이 부분을 읽고 좀 멍해졌다. 삶의 본능과 죽음 본능이 연결되어 있다니. 교수님께서도 수업 시간에 언뜻 설명해 주셨다. 내가 살기 위해 음식을 먹으려면 그 음식은 죽어야 한다. 사랑의 극단적 표현인 성관계는 삽입 행위가 포함됨으로 공격적 측면을 포함한다. 이처럼 삶과 죽음, 사랑과 공격성은 동전의 양면처럼 연결되어 있다.
죽음 본능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가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이 문득 읽고 싶어졌다. 참여하고 있는 1년살이 모임에서 이번 달의 pick으로 내 손에 들려진 책이지만 차분히 읽고 싶어서 아껴 둔 책. 지금이 읽을 타이밍이었다.
"죽을 때 뭐라고 해요? 돌아가신다고 하죠. 그 말이 기가 막혀요. 나온 곳으로 돌아간다면 결국 죽음의 장소는 탄생의 그곳이라는 거죠. 생명의 출발점. "
밀리의 서재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클라인과 이어령 선생님은 만난 적이 있던 걸까. 죽음에 대해 어떻게 이런 통찰을 공유하고 있는 걸까. 죽음 본능과 생의 본능이 절묘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이 두 사람은 간파하고 있었다.
"내가 느끼는 죽음은 마른 대지를 적시는 소낙비나 조용히 떨어지는 단풍잎이에요. 때가 되었구나. 겨울이 오고 있구나… 죽음이 계절처럼 오고 있구나. 그러니 내가 받았던 빛나는 선물을 나는 돌려주려고 해요. 침대에서 깨어 눈 맞추던 식구, 정원에 울던 새, 어김없이 피던 꽃들…… 원래 내 것이 아니었으니 돌려보내요. 한국말이 얼마나 아름다워요. 죽는다고 하지 않고 돌아간다고 합니다. 애초에 있던 그 자리로, 나는 돌아갑니다."
밀리의 서재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그것도 죽음에 대한 이야기였네. 내가 그랬지. 죽음은 신나게 놀고 있는데 엄마가 ‘얘야, 밥 먹어라’ 하는 것과 같은 거라고. 웃겨주려고 한 이야기였는데, 농담 속에 진실을 말해버렸어. 죽음이라는 게 거창한 것 같지? 아니야. 내가 신나게 글 쓰고 있는데, 신나게 애들이랑 놀고 있는데 불쑥 부르는 소리를 듣는 거야 '그만 놀고 들어와 밥 먹어!’.. 이쪽으로, 엄마의 세계로 건너오라는 명령이지. 어릴 때 엄마는 밥이고 품이고 생명이잖아. 이제 그만 놀고 생명으로 오라는 부름이야…… 그렇게 보면 죽음이 또 하나의 생명이지. 어머니 곁, 원래 있던 모태로의 귀환이니까."
밀리의 서재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죽음은 애초에 있던 그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것도 모태로 귀환하는 것. 클라인과 이어령 선생님은 언어만 다를 뿐 같은 얘기를 하고 있는 듯 들렸다. 여전히 생의 본능이 죽음 본능보다 앞선다고, 앞서야 한다고 믿는 나이지만, 내가 죽음에 가까울수록 그 선후 관계는 아마 의미를 잃지 않을까.
프로이트도 초기에는 성적 본능만 언급하다가 후기에 죽음 본능을 말하게 된 데는 큰 깨달음의 계기가 있었을 것 같다. 죽음이 가까워지면서 실존적 깨달음에 도달했던 건 아닌지. 살면서 죽음을 가깝게 느낄 수 있다면 생의 의미를 더 잘 살릴 수 있을 텐데 요즘은 죽음을 가까이 느끼기 쉽지 않다. 이어령 선생님도 옛날에는 이웃 어디에서나 죽음을 접하기가 쉬웠지만 현대에는 죽음을 덮어두기만 한다고 아쉬워하셨다.
"우리가 감쪽같이 덮어둔 것. 그건 죽음이라네. 모두가 죽네. 나도 자네도."
밀리의 서재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생의 의미를 되찾기 위해서라도 덮어 놓았던 죽음 본능을 직면해야겠다는 마음이 먹어진다. 어렸을 때는 오히려 죽음의 순간을 자주 상상했다. 그때마다 존재가 사라지는 그 생생한 느낌에 공황 발작이 오기도 했다. 그 공포스러운 장면이 내가 덮어두었던 나의 본질적인 두려움이 아니었을까. 역설적이지만 잘 살기 위해 죽음 본능을 되살려봐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럼에도 클라인과 이어령 선생님 모두 결국 생을 말한다. 클라인은 죽기 2-3년 전쯤 죽음 본능의 한 유형으로 '시기심'에 대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신생아는 자신이 가지지 못한 젖가슴을 가진 엄마에 대한 시기심을 가지게 되는데 이는 유아가 누군가를 공격하고 파괴하는 동력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엄마의 좋은 양육을 통해 시기심은 완화될 수 있으며 완화되는 과정에서 유아는 '깊이 감사하는 능력'을 갖추게 된다. 사랑은 죽음을 이기며 생명을 갖게 한다.
멜라니 클라인을 공부하다 이어령 선생님의 책을 읽은 건 우연이 아닌 것 같다. 이제 죽음 본능과 생의 본능, 그 경계에서 죽음을 바라본다. 그리고 생을 바라본다. '어떻게 살 것인가'와 ' 어떻게 죽을 것인가', 이 두 질문은 사실 하나의 질문인지도 모르겠다.
"촛불은 끝없이 위로 불타오르고, 파도는 솟았다가도 끝없이 하락하지. 하나는 올라가려고 하고 하나는 침잠하려고 한다네. 인간은 우주선을 만들어서 높이 오르려고도 하고, 심해의 바닥으로 내려가려고도 하지. 그러나 살아서는 그곳에 닿을 수 없네. 촛불과 파도 앞에 서면 항상 삶과 죽음을 기억하게나. 수직의 중심점이 생이고 수평의 중심점이 죽음이라는 것을.”
밀리의 서재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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