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상처 받은 어린 아이로 보이네요

(feat. 이마고 부부 관계 치료)

by 지음


부부는 서로에게 어떤 존재일까요?


분명 사랑해서 한 결혼인데 언제 사랑했나 싶을 정도로 그 때문에, 그녀 때문에 분노하고 좌절하며 부부의 상처는 깊어져 갑니다. 부부는 왜 서로에게 끌렸을까요? 나쁜 남자라는 걸 알지만 그에게 끌리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삶의 여유를 즐길 줄 아는 모습이 매력적이라 느꼈는데 결혼 후엔 왜 게으르게 느껴지는 걸까요? 이마고 부부관계치료이론은 어린 시절부터 형성된 무의식과 관계 역동에서 그 답을 찾고 있습니다. 세상 모든 부부에게 부부 관계의 질은 삶의 행복에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부부상담에서 강력한 도구로 사용되고 있는 이마고 부부관계치료이론을 몇 번에 걸쳐 소개하고 싶습니다.




이마고= 이미지


이마고(Imago)는 라틴어 어원으로 '이미지(image)'라는 뜻이다. 이마고 부부관계치료는 어린 시절 형성되고 만들어진 '보호자'에 대한 이미지가 성인이 된 후에 배우자를 선택하는 동기가 된다고 가정한다. 따라서 우리는 보호자의 긍정적인 모습과 부정적인 모습을 닮은 사람에게 무의식적으로 끌리는 경향이 있다.


새끼 오리에게 일어난 각인 효과처럼 어린 시절에 우리에게 각인된 보호자의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이미지는 배우자를 선택할 때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부모에게 가장 큰 영향을 받지만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나는 여러 보호자들의 이미지(과거의 연인들도 포함)가 합성되어 어떤 모습을 지니게 되는데, 이 같은 이미지의 합성이 이마고 부부관계치료에서 말하는 "이마고(Imago)"이다.


"이마고는 어린아이의 초기 발달에 영향을 주었던 특정 보호자의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모든 모습으로 구성된다. 그것은 분명한 흑백사진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이해되어야 하는 어떤 인상파 그림과도 흡사하다...의식적으로는 사람들 모두 긍정적 모습을 가진 이상적 배우자를 찾아 나서지만, 사실은 우리 자신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보호자의 긍정적이면서 또한 부정적인 두 가지 모습을 함께 지닌 그런 사람을 찾게 된다는 것이다."

이마고 부부관계 치료 이론과 실제 by 릭 브라운


아래 그림은 인상파 화가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쌍을 이루는 작품 <시골의 무도회>와 <도시의 무도회>이다. 화가는 객관적 사실 그대로가 아닌, 무도회 남녀에게서 받은 주관적 인상을 그림에 표현했다. 즉, 화가에게 느껴지는 주관적 이미지, 어쩌면 복합적 이미지인 이마고가 화폭에 표현된 것이라 생각된다. 이처럼 이마고 이론에서는 부부 역시 자신도 모르는 사이 마음속에 형성된 이마고를 찾아 서로 만나게 된 것이라 설명한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좌) 시골의 무도회 (우) 도시의 무도회 by 오귀스트 르누아르




이마고 부부 관계 치료의 목표


이마고 이론에서는, 우리의 무의식은 어린 시절에 충족되어야 했지만 결핍되었던 것을 찾아 여행을 떠난다고 본다. 그리고 무의식은 그 여행을 마침내 끝내야 할 사명을 가지고 있다. 어린 시절 우리의 보호자(대개는 부모)가 충족시켜 주지 못한 결핍된 그 무엇을, 무의식은 배우자를 통해 충족하고자 끊임없이 시도한다. 처음에 그와 사랑에 빠졌을 때는 '로맨틱한 사랑'으로 인해 상대의 부정적인 모습을 보지 못하거나 너그럽게 바라보게 된다. 사랑을 하면 눈이 멀거나 실눈만 뜨게 된다. 문제는 처음에만 눈이 멀고 살다 보면 시력이 자꾸 좋아진다는 것.


부부에겐 반복되는 "핵심 장면"이 있다. 오랜 갈등의 핵심적인 축은 사소한 일상에서의 부딪힘으로 형성되지 않는다. 배우자를 통해 충족 받을 거라 기대했던 내 어린 시절의 욕구가 결혼 생활을 통해 다시 좌절되기 때문이다. 배우자와의 관계에서 어린 시절의 상처가 건드려지면 자신이 어렸을 때 경험한 상처가 재현되는 아픔을 겪어야 하기에 그토록 아프다.


"이마고 이론은 그들이 자신들의 부부관계 속에서 그것을 극복하는 시간을 갖지 못한다면, 얼마 가지 않아 곧 그것을 또다시 반복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릭 브라운 <이마고 부부관계치료>


이마고 이론은 결혼이 어린 시절 결핍된 욕구를 채우기 위한 과정임을 전제하며 부부관계치료의 목표 중 하나를 "부부로 하여금 상대방 배우자에 대하여 새로운 이미지를 갖도록 하는 것"으로 정한다.


책에는 <성공하는 사람의 7가지 습관>의 저자 스티븐 코비의 버스 일화가 나온다. 버스 정류장에서 한 남자가 두 아이를 데리고 버스를 탔는데 아이들이 버스 안에서 심하게 장난을 쳤다. 그럼에도 남자는 구부정하게 앉아 아이들을 제지하지 않았다. 남자와 아이들의 행동이 승객들을 화나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챈 코비 박사는 아이들이 승객들에게 민폐를 끼치고 있고 아이들의 안전이 걱정된다고 말했다. 그러자 남자는 고개를 들며 "오, 저런! 정말 죄송합니다. 우린 방금 아내가 죽은 병원 앞 정류장에서 이 버스를 탔습니다. 지금 저는 무척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아마 아이들도 저만큼이나 힘들 겁니다.".


그 말을 들은 코비 박사는 그 남자에 대한 새로운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남자에게 들은 새로운 정보의 결과로 코비 박사는 그를 나쁜 부모로 보기보다는 "상처받은 남자"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이마고 부부관계치료의 지향점은 바로 이것이다. 부부가 서로를 "상처받은 한 어린아이"로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것 말이다.


출처: unsplash


이마고 이론에서는 부부 개인의 성격 문제를 진단하고 다루는 것을 개인상담에서처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남편과 아내 각각의 개인적인 문제를 다루긴 하지만, 그보다는 어린 시절 상처로 인해 끊어진 공감대를 다시 새롭게 연결하고 형성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개인차는 있겠지만 어떤 프로그램을 통해서도 회복하지 못했던 부부들이 이마고 부부관계치료를 통해 회복되는 사례들이 있다. 부부의 문제가 있다면 부부 "관계" 안에서 다루는 것이 효과적이다.


"모든 상처는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것이며, 결과적으로 모든 치유 또한 '관계' 속에서 일어나야 한다."

릭브라운 <이마고 부부관계치료>


이마고 부부관계치료는 불안하고 역동이 강하게 일어나는 부부 관계에 "안전감"을 형성하여 점차 어린 시절 끊어졌던 공감적 유대를 회복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이마고 부부대화법」 으로 부부의 방어를 깨뜨리고 "안전감"을 경험케 함으로써 "공감"으로 나아가도록 돕는다.




석사 과정 2학년 때 우리 부부도 부부상담을 받은 적이 있다. 상담자로 부부상담을 경험하고 싶어서이기도 했고, 평소 사이가 괜찮은 남편과 나이지만 그 시기에 자주 부딪히는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남편과 나는 11년 전에 특허사무소를 함께 개업했다. 개업하자마자 둘째를 임신하기도 했고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해 주고 싶었던 나보다, 남편은 사업에 더 열심과 열정을 낼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10년 이상을 업력을 쌓으면서 남편에게는 원래부터 있던 사업가 DNA가 더 잘 발현되기 시작했다. 평일에는 거의 11시에 들어오기 일쑤였고, 정기적으로 운영되는 단톡방만 30개가 넘었다. 남편과 수다 떠는 걸 좋아했던 나로서는, 점점 바빠지는 남편이 못마땅해지기 시작했다.


어느 날 남편이 친구들과 전화하는 모습을 보니 나와 대화할 때보다 더 즐거워하고 있음을 느꼈다. 나보다 더 살가운 말투로 친구들과 전화하는 모습을 보니 속에서 열불(?)이 올라왔다. 이런 일들이 자주 있기 시작하면서 다툼도 잦아지고 마침 가족상담이라는 수업을 배울 때라 부부상담을 남편에게 제안했다. 상담자로 훈련받기 위함이니 나를 도와달라는 뉘앙스로 부탁하니 그동안 나에게 소홀했던 남편도 미안한지 갑작스러운 내 제안을 받아들였다.


6회기에 걸친 부부상담을 받으며 내게 있었던 가장 큰 변화는 강인해 보이는 남편 안에도 울고 있는 어린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점이다. 그가 그렇게 사람을 많이 만나고 내가 보기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형-동생 하며 관계를 확장해 나가는 모습을 보며 나는 질투를 느꼈다. 나와 함께 있는 시간보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는 걸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며 내 자리를 빼앗긴 느낌까지 받았다. 한 번은 남편에게 이렇게 토로한 적이 있다. "나한테 베프는 자긴데 그 사람들한테 내 베프를 뺏긴 느낌이야. 그래서 난 정말 슬퍼." 남편은 그 얘기를 듣고 좀 멍해진 표정을 지었다. 그 말이 효과가 있어서 부부상담에 응했는지도 모르겠다.


남편은 상담 시간에 진지하게 임했다. 그가 상담자 선생님에게 자신의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나는 그의 깊은 욕구를 깨달았다. 남편이 관계를 확장해 나가는 이유가 단순히 즐거움만을 추구하기 위함만은 아니라는걸. 그에게는 성공하고 싶은 욕구가 내 생각보다 훨씬 크다는 걸 새롭게 알게 되었다.


남편은 청소년 시기에 아버지 사업이 부도가 나서 집까지 압류 당해 자신이 그토록 아끼던 컴퓨터에도 빨간 딱지가 붙어 있는 걸 봐야 했다. 가족은 뿔뿔이 흩어져 살 수밖에 없었고 온수도 나오지 않는, 바퀴벌레가 가득한 집에서 살아야 하는 아픔을 겪었다.


남편은 늘 웃는 인상이다. 결혼 전에 선한 그 인상이 신기해서 물어본 적이 있다. 어떻게 이렇게 웃는 인상을 가지게 된 거냐고. "언제부터 그런 거야?". 남편은 웃으며 자신의 아픈 과거를 이야기했다. 아버지 사업이 부도난 후 어머니는 매일을 우셨단다. 어머니를 따라 중학생 아들은 새벽기도를 함께 나가 울며 기도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봐야 했다. 그때 남편은 생각했다고. "나라도 엄마를 웃게 해드려야겠다. 이제부터는 나부터 웃자". 그 말을 듣고 그가 얼마나 멋있어 보였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의 웃음에 드리운 그림자는 보지 못했다.


부부상담을 하며 그의 웃음에 드리운 그림자를 만났다. 웃고 있지만 속으로 얼마나 울었을까. 평생을 실패감에 젖어 괴로워했던 아버지를 보며 그는 얼마나 성공하고 싶었을까. 나는 그가 내게 웃어 주기만을 바랐지만 그의 울음은 모르고 있었다. 상담자 선생님께 담담히 털어놓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내 마음이 아팠다. 그가 사람들을 그렇게 만나고 다니는 이유가 성공하고 싶은 열망이 크기 때문이라는걸. 이제서야 깨닫게 된 것이다. 나보다 다른 이들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 질투 나고 속상했는데, 그가 다른 이들을 만나는 이유가 그의 아픔과 성공하고자 하는 욕구 때문이라는 걸 이해한 순간 그가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부부상담의 묘미는 이런 게 아닌가 싶다. 이제 나도 상담자로서 부부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그때 내가 받았던 부부상담의 경험이 무척 도움이 된다. 부부가 서로를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그 순간을 포착하는 것이 상담자의 기쁨이다. 부부는 서로의 결핍으로 인해 맺어졌다. 그리고 결혼 과정은 서로의 상처를 복구하는 치유와 성장이 될 수 있다. 그렇게 부부는 서로의 치료사가 되어간다.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aver?bid=6056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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