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음 Jul 23. 2022

그래, 마주봄은 길이 된다.


내 나이 44. 엄마 나이 16.


어느덧 인생의 중반에 서 있다. 어쩌면 중반보다 더 왔는지도. 16년 동안 워킹맘으로 두 아이를 키웠고 변리사라는 전문직 여성으로 살아왔다. 남편과 함께 작은 특허법률사무소를 운영해 온지도 벌써 12년째다.


40살을 코앞에 둔 시기, 심각한 우울이 찾아왔다. 어느 날부터 회사에서 늘상 해오던 크고 작은 의사결정이 어렵게만 느껴졌다. 직원들이나 고객들과의 관계도 힘겹기만 했다. 두 달에 3번씩이나 교통사고를 낼 정도로 내 기능은 망가지고 있었다. 언제부터 그리 되었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그 땐 내 삶엔 어떤 출구도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었고, 한결 같이 내 편이 되어주는 남편도 있었다. 사랑스러운 두 아이를 키우고 있었고, 나를 한없이 조력해주는 친정도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큰 부족함이 없는 삶이었지만 난 알고 있었다. 내 삶은 무언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걸.


그렇게 첫 심리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39살에야 나 자신을 마주볼 용기를 낸 것이다. 나를 마주보는 첫 경험은 어색하고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6번의 상담을 받고서는 이제 그만받겠다고 했다. 아무 것도 안하고 그저 쉬고 싶었다. 일도 내려놓고 혼자 강의를 들으며 심리학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공부를 하면서부터 그제서야 나 자신이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 동안 왜 우울하거나 불안했는지, 뭘 좋아하는지도 몰랐던 내가 왜 이렇게 생겨 먹었는지 '나'라는 실체가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심리학 공부를 할수록 '나' 와 '너'를 더 잘 이해하고 싶다는 욕구는 점점 커져갔다. 이듬해 난 심리상담 대학원에 입학원서를 제출하고야 말았다. 그렇게 나를 마주보기 시작한 지 5년이 지난 지금, 대학원 박사 과정에 들어가 전문 심리상담사의 길을 걷고 있다. 40살이 넘는 나이에 변리사와 1도 상관 없는,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새로운 길로 들어섰다. 무식하고 용감하게. 덜덜 떨면서.


나를 마주보고 나서야 내가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알게 됐다. 무슨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고 나니 내 삶을 새롭게 디자인하기 시작했다. 나라는 엄마는 아이들과 어떤 관계로 지내야 서로 편안한지도 예전보다 잘 알게 되었다. 관계의 파열음을 감지하는 센서도 발달하기 시작했다. 엄마로서 잘못했을 때 예전보다 빨리 감지하고 관계 복구를 위한 노력을 먼저 기울이게 되었다. 물론 이 과정들에 감정의 굴곡은 무척이나 많았다. 지금도, 여전히. 그럼에도 나와의 마주봄은 이렇게 새로운 삶으로 나를 안내하고 있다. 한걸음, 한걸음, 한걸음. 더디지만 분명 나아가고 있다. 그 걸음이 모아져 길이 되고 있음을... 느낀다.


그래, 마주봄은 길이 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자기 영혼을 소유한 엄마와 아이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