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자기애에 대하여 #2.
엄마에게도 자기애가 있습니다. 엄마에게도 자기애가 있다는 말이 어떻게 들리시나요? ‘엄마’라는 단어에서 전통적으로 요구되는 이미지는 대체로 희생, 배려, 양보 같은 이타적인 이미지입니다.
엄마의 자기애적 욕구는 프로이트의 관점처럼 엄마가 되면 버려야 할 욕구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코헛의 관점에 따른다면 엄마에게도 자기애적 욕구는 있습니다. 평생을 통해 건강하게 발달시켜야 하는 욕구죠.
예전처럼 전통적 성역할이 사회 전체적으로 요구되고 강압되었던 시대와는 달리 이 시대의 엄마들은 자기애적 욕구가 이전보다 더 선명하게 나타납니다. 특히 엄마의 일부를 계속 떼어주어야 하는 자녀와의 관계에서 엄마들은 자신의 자기애적 욕구를 잘 다룰 수 있어야 합니다.
엄마가 자기애적 욕구를 잘 다루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요? 자녀에게 자신의 자기애적 욕구를 투사하기 쉽죠. 융이 말했듯 자녀에게 부모 내면의 살아보지 못한 삶을 살도록 무거운 짐을 지우게 됩니다. 좋게 말해 부모가 자녀에게 꿈꾸고 기대하는 것이라 말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부모가 자기애적 욕구를 자녀에게 투사하는 것이며, 심한 경우는 가스라이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엄마는 자녀가 아닌, 다른 대상을 통해 건강하게 자기애적 욕구를 채울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서 ‘대상’은 반드시 사람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자연, 취미, 운동…성숙할수록 세상의 그 어떤 것도 나의 자기애적 욕구를 채울 대상으로 활용할 수 있어요. ‘나’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가꾸어 나가는 일이나 취미, 이를 통해 확장되는 관계가 꼭 필요한 이유죠.
<나의 해방일지>에서 구씨가 ‘추앙’이 무슨 뜻이냐고 물어봤을 때 미정은 대답했습니다.
"응원하는 거. 넌 뭐든 할 수 있다. 뭐든 된다. 응원하는 거."
자신을 자녀에게 날마다 떼어주어야 하는 엄마들에게도 그런 응원이 필요합니다. 엄마가 된 이후 ‘나’ 를 잃어버릴 것 같은 불안에 휩싸였을 때 ‘너 자신을 잃지 않아도 된다’, ‘새롭게 삶을 꾸려갈 수 있다’는 무조건적인 응원이 필요합니다.
때론 의심이 될 수 있어요. 엄마 자신의 자기애적 욕구를 이렇게 채워갈 때 결국 이기적인 엄마가 되어가고, 자녀들 역시 그런 엄마의 모습을 닮아가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될 수도 있습니다.
다시 미정과 구씨를 생각해 볼까요? 처음에 미정이는 자신을 추앙해 달라는 요구부터 시작했지만, 구씨의 질문으로 자신의 태도를 바꾸기 시작합니다. 구씨는 ‘넌 누굴 추앙해 본 적 있냐?’ 고 묻죠. 지하철을 기다리며 그 질문을 한참동안 생각한 미정은 그 다음날 구씨에게 ‘내가 추앙해 줄까요?’라고 물어봅니다. 그때부터 구씨를 향한 무조건적인 신뢰와 응원을 보내지요.
자신의 깊은 욕구를 제대로 마주본 사람은 그 욕구가 결핍된 다른 이도 그 욕구가 채워져야 함을 알아봅니다. 그리고 상대방의 욕구를 채워주는 것으로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대상이 되어주는 자신의 욕구도 채워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지요. 미정과 구씨는 그렇게 서로를 채워갑니다. 서로를 추앙하면서.
구씨가 없어도 우리는 스스로를 채울 수 있습니다. 돌볼 수 있어요.
<마주봄 질문>
엄마가 된 이후에도 당신은 채워지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