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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음 Jan 16. 2023

부정합을 닮았다

(feat. 첫 원고 투고: 월간에세이)


작년 브런치에서 첫 원고 투고 연락이 왔어요. 브런치에도 글을 꾸준히 올리진 못했지만 그래도 봐주시는 분들이 계신다는 사실이 신기하고 감사하기만 합니다.



지금까지 제 삶의 이미지를 그려볼 때 부정합을 떠올리게 되었어요. 변리사로 살아오다가 1도 상관 없는 심리상담의 길을 걷고 있는 제 삶은 부정합을 무척 닮았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전 그 불연속적인 삶의 흔적을 안아주는 저만의 심리 작업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주님의 뜻 안에서 쌓여가는 제 삶의 독특한 지층이 누군가에게도 용기를 줄 수 있길 바라며...졸필이지만 제 소중한 삶의 일부를 공유합니다.





부정합을 닮았다


그랜드캐년의 깊은 곳으로 내려가면 극명한 대부정합면을 볼 수 있다. 화강암 지층과 타핏 사암 지층 사이에 형성된 평평한 부정합면. 부정합면을 기준으로 위아래 지층의 색깔과 무늬는 한 눈에 보기에도 확연히 달라 보인다.


그랜드캐년의 대부정합면 (출처: https://youtu.be/CwH-PAcWmyE)


이따금 난 불연속적인 퇴적으로 인한 단절감과 독특함을 동시에 느끼게 해주는 부정합을 떠올리며 생각에 잠긴다.


‘내 삶은 부정합을 닮았다.’


나는 18년차 변리사이다. 그리고 5년차 심리상담사이기도 하다. 40대로 접어드는 길목에서 진로의 불연속적 퇴적이 일어났다. 아직은 심리상담이라는 새로운 지층이 덜 쌓였기 때문일까. 관성처럼 남아 있는 관습적이고 보수적인 사고의 잔재 때문일까. 나는 내 두번째 직업을 심리상담사라고 말하는 것보다 ‘심리상담을 하고 있다’고 서술하는 방식을 더 편하게 느낀다. N잡러가 대세인 요즘 세상이지만 촌스럽게도 N잡러인 내 자신이 어색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변리사라는 직업은 나에게 사회적, 경제적 안정감을 가져다 주었다. 의대 진학을 위해 달려왔지만 차선으로 선택한 생물학과 입학에 대한 아쉬움과 부모님에 대한 미안함을 일거에 씻게 해준 고마운 직업이기도 하다. 안정적이고 고마운 직업이다. 그럼에도 변리사로 일한 지 10년이 훌쩍 넘어가는, 40대를 코앞에 두고 있었던 시기에 들이닥친 우울은 내 삶의 지층을 밑바닥까지 흔들어놓았다.


삶의 의미를 일찍부터 추구했던 어린 시절의 나는 삶과 죽음의 최전선에서 일하고 싶었다. 그 소망은 의사가 되거나 종군 기자가 되고 싶다는 꿈으로 연결되었다. 대학에서 선택한 전공 공부에 대한 회의감을 느끼고 있을 무렵 IMF라는 거대한 파도는 어린 시절의 꿈을 단숨에 덮쳤다. 현실 세계로 숨가쁘게 내몰린 나는 생산성과 효용성이 있는 인간이 되어야 했다. 현실적인 요구와 압박으로 선택한 변리사라는 직업을 통해 사회경제적 측면의 내 가치를 입증하는데에는 성공했다. 하지만 무의식에 내밀하게 차단해 놓았던 오래된 꿈은 우울이라는 신호를 통해 내 심리구조에 강력한 지각 변동을 일으켰다.


우울을 해결하기 위해 받은 심리상담과 불혹의 나이에 입학한 대학원에서의 공부는 ‘나’라는 존재와 마주하게 했다. 그 동안 우울감이 왜 그렇게 반복되었는지, 변리사라는 직업에 만족할 수 없었던 이유도, 아이들과의 관계에서 부대낌이 많았던 이유도 조금씩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게 살아온 ‘나’가 이해가 되고 나니 ‘나’에 대한 연민을 처음으로 느꼈다. 끊임없이 나 자신을 가혹하게 평가질 해온 삶을 바깥의 시선으로 안타깝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런 시간이 쌓이면서 자연스럽게 삶과 죽음의 의미를 추구하던 어린 시절의 꿈과 다시 접촉했다. 드디어 단절되었던 어린 시절의 ‘나’와 40대의 ‘나’가 연결되었다. 그 때의 나와 지금의 나, 우린 같은 사람이었다.


정신과의사 정혜신은 <당신이 옳다>에서 “자기 존재에 주목받은 이후부터가 진짜 내 삶”이라고 말했다. 나도 내 존재에 주목한 이후부터 새로운 삶의 지층을 쌓아가고 있다. 타인과 사회의 역할과 기대에 맞춰 쌓아온 페르소나의 지층이 아닌, ‘나’와 ‘너’의 존재에 주목하는 존재의 지층. 페르소나의 지층에서는 이과적 사고와 좌뇌형 일처리 방식이 주효했지만 존재의 지층에서는 그 방식이 오히려 장애물이 될 때가 많다. 시들어가는 사람의 마음 구석구석을 살피고 삶의 의미를 피어나도록 돕는 안내자의 역할은 전격적인 모드 전환을 필요로 한다. 그 전환 속에서 나는 다시 몸부림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부정합의 단절감이 주는 의연함과 독특한 매력을 더 자랑스럽게 바라볼 수 있길 바란다. 변리사와 심리상담사 사이에서 더 이상 멈칫거리지 않고 자신 있게 말하고 싶다.


내 삶엔 불연속적 퇴적이 일어났다. 그리고 나는 그 흔적을 사랑한다.






p.s: 제목의 부정합 이미지 출처 

https://creation.kr/EvidenceofFlood/?idx=8152617&bmod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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