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살, 변리사 시험 준비를 하기 위해 신림동 고시촌에 들어갔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유난을 떨 필요가 있었나 싶었지만 결국 유난을 떨었다. 학원을 오가는 길, 갑자기 가슴이 조여오고 숨이 막히며 미칠 것처럼 답답한 순간들이 찾아왔다. 그때마다 심호흡을 하며 정신을 차려봤지만 그런 발작은 에너지를 엄청나게 소모시켰다. 그 후로도 죽음을 생각하는 순간들, 극심한 스트레스 속에서 지방 출장을 가다가 고속도로에서 빠른 속도를 내야 할 때면 어김없이 공황이 찾아왔다. 다행히 '장애'라고 부를 정도로 만성화되진 않았지만 공황발작은 신호였다. 내 숨을 너무 오랫동안 참았다는 경고 신호.
공황장애는 불안장애의 한 유형이다. 극심한 불안으로 생기는 병이라는 것이다. DSM-5는 다음과 같은 정의와 진단 기준으로 공황장애를 설명하고 있다.
이 증상들이 사실은 극심한 "불안"으로 인한 것이라는 점이 가슴 아프다. 연예인 병이라고도 불리는 이 공황장애는 사실 깊은 불안을 지속적으로 통제하다가 결국은 그 통제 시스템이 고장을 일으키는 것과 비슷하다. 신체감각에 대한 파국적인 오해석이 동반되며, 그로 인해 다시 걱정과 염려가 증폭되고, 그로 인해 신체감각이 다시 고양되는 악순환으로 들어간다. 죽을 것 같은 그 불안은 어디로부터 시작된 걸까?
요즘 이 분 강의를 종종 듣는다. 그중 공황장애에 대한 비유가 참 와닿았다. 고향이 제주도인 김창옥 님은 물질을 배우고 있단다. 깊은 바다로 가서 맛난 해산물을 따려면 숨을 오래 참는 연습을 하고 있다고 해야 한다. 남보다 크고 굵은, 실한 놈을 따기 위해서는 더 오래 숨을 참으며 깊은 곳으로 내려가야 한다. 인생에서 특별히 크고 굵은 무언가를 따고 싶은 사람들은 자신의 숨을 오래 참아야 했을 거다. 이런 사람들은 결국 크고 굵고 실한 그 무엇을 인생에서 따내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말도 못 하고, 내가 하기 싫은 말을 해야 했던 시간들을 아주 오래 보낸 후엔 실제로 숨이 쉬어지지 않는 상황을 맞이하게된다.
빛나던 청춘이었던 20대와 30대의 난 내 숨을 많이도 참아야 했나 보다. 하기 싫은 공부를 꾸역꾸역 하고, 하고 싶은 걸 꾹꾹 억누르다가가 결국 내가 뭘 하고 싶은지도 모르는 채로 살아가는 상태가 되었던 그때의 나를 안쓰럽게 떠올려본다.
나에게 공황발작이 자주 찾아온다면, 내 숨을 너무 오랫동안 참고 있었던 건 아닌지 돌아보면 좋겠다. 어떤 상황에서 난 내 숨을 참아야 했을까. 그래서 억눌렀던 내 진짜 목소리는 무엇이었는지 내면에 귀를 기울여보면 좋겠다. 숨넘어가는 내 목소리를 나라도 좀 들어주면 좋겠다. 그래서 이제 자신의 숨을 쉴 수 있길... 그 호흡을 되찾아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