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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음 Apr 15. 2023

다시 회복해야 하는 자기애적 상처

(feat. 더글로리)


동은이는 연진이와 함께 말라 죽는 것이 정말 신이 났을까. 그렇다면 복수가 끝났는데 동은이는 왜 자살하려 했을까. 모든 대상에 대한 복수는 이미 끝났는데 말이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화를 내며 살아간다. 그러나 어떤 화는 외부적인 요인이 해결된 뒤에도 절대 사그라들지 않는다. 하인츠 코헛은 이를 '자기애적 격노(narcissitic rage)' 현상이라 부르며, 자기애의 균형이 깨지는 것에 기인하는 공격성의 표출로서 일반적으로 인간이 가지는 다른 형태의 공격성과 구별하고 있다. 코헛은 프로이트와 달리 자기애를 병리적인 것으로 보지 않고 인간이 평생에 걸쳐 '성숙하게' 변형시켜야 하는 욕구로 보았다. 그러나 어린 시절 자기애적 욕구가 중요 대상(대체로 부모)에게 수용 받고 공감 받지 못하는 환경에서 자라면 자기애는 병리적이 되며, 사소한 상황에서도 '수치심'을 자주 느끼는 성격 구조를 형성하게 된다.



동은이는 연진이 무리에게 복수하기 위해 십수년 동안 칼을 갈았다. 그러나 동은이의 첫 가해자는 바로 엄마. 동은이가 건강한 '나'로 살아갈 수 없도록 만든 괴물 같은 엄마는 동은이의 마땅한 자기애를 전혀 충족시켜 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녀는 자기애적 상처를 회복하기 위해 복수를 택했지만, 그 복수의 끝은 결국 자신을 향하고 만다. 엄마로부터 사랑받지 못한, 몇번이나 버림 받았던, 수치스러운 자신을 용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기애적 상처는 어떻게 치유될 수 있을까?

코헛은 자기애적 격노의 밑바닥에 깔려 있는 자기애적 상처의 원인에 주목하는, 돌보는 이의 공감적 자기대상의 기능이 요청된다고 말했다. 쉽게 말하면 그녀의 깊고 깊은 상처에 주목하는 대상의 돌봄과 공감이 자기애적 상처로부터 회복케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정의 사랑과 현남과의 우정, 보이지 않는 신의 이런 저런 개입들은 결국 그녀를 살게 했다.



"제목을 그래서 고민하던 중,

피해자분들의 글들을 많이 읽게 됐어요.

그분들의 공통점이 현실적인 보상보다

가해자의 진심어린 사과를 원하신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세속에 찌든 저로서는 음..,

진심어린 사과로 얻어지는 게 뭘까?를 고민했는데

그러다가 '아! 얻는게 아니라 되찾고자 하는 거구나.'

폭력의 순간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걸 잃게 되잖아요?

인간의 존엄이나 명예나 영광 같은 것들.

그래서 그 사과를 받아내야 비로소 원점이고,

거기서부터 시작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서

제목을 '더 글로리(The Glory)'로 지었고요.

그게 동은이나 현남이나 여정이 같은

이 세상의 피해자분들께 드리는 응원이었습니다.

그분들의 원점을 응원합니다."

-<더글로리> 김은숙 작가 인터뷰 중-


우리가 그토록 찾고 싶었던 원점은 무엇일까?

그 원점을 찾아야 이유를 알 수 없는, 반복되는 분노를 해결할 수 있다. 우리의 자기애적 상처가 난 곳, 그 곳을 가리킬 수 있어야 원점으로 돌아갈 수 있다. 원점으로 돌아간다면 이전보다는 격노가 아닌, 일상의 화로도 충분하다.


https://insidetalk.oopy.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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