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이야기

그러니까 꿈꾸는 소녀였던 시절이 있었다. 응? 이 얘기는 그 꿈은 아니고

by 이랑



어릴 적부터 꿈을 많이 꾸었다.




나는 갖가지 희한한 꿈을 꾸었는데, 그중에서도 어릴 때 참 많이 꾸었던, 높은 건물에서 떨어지는 꿈부터 커다랗고 하얀 막힌 공간에서 공룡(그것도 티라노사우루스!)에 쫓겨 다니는 꿈, 폭압정치에 맞서는 반정부적인 아나키스트 단체에 속해있으면서 정부군(?)에 총기로 대항하며 도망 다니는 뭐 그런 나름 진지한 서사를 가진 꿈까지 장르도 다양했다. 그것들은 깬 지점에서 뒷내용을 이어서 꾼다거나 약간의 디테일만 바뀐 채 반복이 되었다.


꿈 속에서 나를 제외한 다른 인물이 등장하는 경우는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고, 얼굴이 흐릿하거나 잘 알아볼 수 없다거나 깨고 나면 기억이 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아주 가끔은 아는 사람도 등장하기는 했는데 분명 그 사람의 얼굴이 아닌데 그 사람이라고 우기는 설정으로, 깨고 나서는 황당하지만 꿈속에서는 또 그것이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역시 내가 아는 그 사람의 얼굴로 나오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런데 얼마 전 엔 지난달 돌아가신 외할머니께서 너무나 선명한 얼굴로 꿈에 나오셔서


'나는 편안하다. 걱정하지 말아라.'


라고 얘기해 주셨는데 (엄마랑 이모들한테 얘기하니 다른 사람들한테는 안 나타나고 내 꿈에만 나오셨다고 섭섭해하셨다) 99프로의 무신론자이고 유물론자적인 입장에서, 영혼도 사후세계도 믿지 않는 나로서는, 그저 할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셔서 슬픔에 잠겨있었고 할머니 생각을 매일같이 많이 하다 보니 꿈에 나오셨나 보다 생각은 하지만 그 꿈을 꾼 뒤로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고 슬픈 마음을 조금 더 빨리 거둬들이는데 도움이 된 것은 사실이다. 꿈에서 할머니의 편안하고 빛나는 얼굴을 본 것이 어쩐지 마음에 위로가 되었다. 연로하셨으니 수순이 그러했을지라도 얼굴을 마주하고 손을 맞잡으며 마지막 인사를 하지 못한 것이 마음에 남아서 매일 눈물이 났었는데 그렇게라도 할머니 얼굴을 뵌 것이 마음에 큰 위로가 되었다.



대부분의 사람이 그런지 모르겠는데, 내가 꾸는 꿈들 중에는 깨서 생각해 보면 어이없이 황당하고 웃긴 꿈들이 많다.


앞에서 말한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꿈에도 여러 버전이 있는데, 배경은 주로 고층빌딩의 옥상으로, 거기서 부터 꿈이 시작된다. 황당한 것은, 떨어지기 전에 아주 무거운 돌덩어리나 쇠덩어리를 긴 줄에 연결하여 내 손으로 직접 발목에 단단히 묶고는 그걸 낑낑대며 들어서 먼저 던지고는 나도 떨어진다는 거다! ( 덤덤히 그것을 묶는 나를 보면서, 꿈속에서도, 속으로는 '안돼!!!!! 떨어지기 싫은데 내손이 저걸 왜 묶는 거야!!!!?라고 생각을 하는 것이 들린다.)


더 웃긴 버전은 그 돌을 먼저 던지기 전에, 사각의 007 가방을 먼저 던지고 나서 내 발목에 묶인 돌덩어리를 던지고 나도 떨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꿈속의 나는 알고 있다. 그 사각가방은 돈가방이라는 것을.

이것을 나는 10대 중반쯤부터 수 십 번은 반복해서 꾸었다. 헛발질하며 깨고 나서 '또 야?' 하는 그런 가장 많이 꾼 꿈이다. 하도 여러 번 꿨던 꿈이라 이상하다 생각을 안 했었는데 나이 들어 생각해 보니 왜 이 딴 꿈을 꾸는 건지. 돌덩이도 웃기지만 돈가방은 왜 던지는 거야? 싶었다. 남편에게 물어봤더니 본인도 떨어지는 꿈을 많이 꾸었는데 돌덩이를 몸에 묶거나 돈가방과 같이 떨어지지는 않았다고 했다. 뭐 당연한 거겠지. 어이없는 꿈은 이게 끝이 아니다.


이런 꿈도 있었다.

옆으로 작은 강이 흐르는 산책로에서 조깅을 하고 있는데 뒤에서 누가 나를 부르는 것이었다.

뒤를 돌아보니 백로로 보이는 흰색의 새가 긴 다리로 폴짝거리며 나를 부르며 뛰어오는 것이 아닌가!

저건 뭐야? 하고 깜짝 놀라서 빨리 뛰었는데 그 백로도 더 빠르게 뛰어오는 거다. 그러고는 금방 옆에 따라붙어서는,


'아가씨!? 저랑 데이트하실래요?'


라고 멘트를 날리는 게 아닌가. 참 나. 대답 안 하고 더 빨리 뛰었더니 계속 쫓아오면서 데이트신청을 하는 거다. 그러고는 깼는데 꿈속에서 '뭐 이런 변태새가 다 있어?'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비슷한 시기에 말 걸며 다가오는 오렌지 주스를 만나기도 했다. 우유팩처럼 생긴 종이팩에 오렌지가 그려져 있고 마트에서 흔히 보이는 2개가 한 묶음 세트였다. 오렌지 주스의 말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꿈속에서도 어이가 없었던 기억만이 남아 있다.


지금 내가 말하려는 이 꿈은 여러 사람이 꾸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바로 시험 치는 꿈. 이 꿈은 대체로 시험당일 시험공부도 안 한 혹은 못 한 상태에서 치르게 되는데, 공부를 못한 걱정부터 시작해서, 문제를 풀지 못해서 진땀을 흘리며 쩔쩔매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반 백 살의 남편도 왜 인지 아직도 이 꿈을 꾼다고 한다.

그리고 비슷하지만 다른 꿈. 황당한 쪽은 이 쪽이다. 죽을 고생을 하며 절벽을 기어올라 간다. 90도로 가파른 바위절벽을 죽을 둥 살 둥 올라가서는 그 위의 정자에 앉아 시험공부를 하였다. 물론 꿈의 주된 내용은 앞부분의 절벽 타기. 무서운 절벽을 너무너무 힘들게 올라갔는데 올라가서 보니 정자도 있고 나중에 생각해 보니 경치도 좋더라는. 그러고는 시험공부를 했지. 거기 올라간 목적이 시험공부-_-였다. 대체 왜!!!

내 꿈에서 개연성이란?


물론 꿈에서 개연성을 찾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어이없어서 나중에 웃기긴 하지만, 꿈을 꾸고 있을 당시에 끙끙대며 개고생 하며 괴로워하는 것이 가끔은 억울하기도 하다. (그러니까 좀 좋은 꿈을 계획해 보라고. 나의 머리야!)





반복이 많은 걸 감안하더라도,

실제의 삶보다 꿈속에서의 경험이 더 다채롭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생각해 보면 꿈과는 비교도 안 되게 실제의 내 삶은 단조로운 일상의 반복이다.

그래서 나는 무슨 얘기를 할 수 있을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 그래서 찾아보려고 한다.

이야기감이든. 나의 삶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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