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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원경 Apr 28. 2019

무한궤도로 쓰는 ‘사랑한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믿는다면

 

빠른 속도로 자동차가 휙 지나가면서 플래시를 번쩍인다. 우연히 본 번호판 뒷자리는 누군가를 기억하게 만든다. 안개가 자욱한 바위 위에서 한 사내는 여인의 손을 잡았었다. 여인의 차가운 손의 온도에 남자의 따뜻한 온도가 전해졌다. 사랑은 그때 그렇게 전이되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내 아이의 어린 시절 취미는 번호판을 읽는 거였다. 차가 꽉 들어선 주차장 여기저기를 쏘다니며 번호판을 외우는 게 낙이었던 녀석은 무척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태생적으로 그렇게 숫자를 좋아하는 녀석은 결국 숫자를 다루는 학문을 전공으로 택했다. 운명인가 보다. 혹시 사랑도 카운트 다운 넘버를 세어 보는 것은 아니겠지. 그새 세상이 확 바뀌었고 녀석은 여자 친구와 데이트를 하고 있다. 학업, 취업, 미래 불안 속에서도 위로와 도피처는 결국 사랑이었다. 그 사랑이란 녀석은 시공을 초월하여 사람을 울리고 웃기는 묘한 재주가 있다.     

선글라스를 끼고 젊은 사랑을 얄궂게 바라보고 싶지 않다. 선글라스를 끼고 하늘 위 구름의 미세한 움직임을 천천히 관찰한다. 어린 시절 푸른 초원에 누워 구름을 보며 누군가를 그리워한 적이 있다. 나는 무심코 희야 날 좀 바라바라고 독백을 내뱉는다. 태양이 한가운데를 차지한 가운데 미세먼지가 잔뜩 끼어 미간을 찌푸려 본다. 왜 낮에 별을 볼 수 없나? 태양이 눈부셔서 다른 별을 볼 수 없을 뿐이다. 별이 안 보인다고 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지구도 태양도 밤하늘의 무수한 별도 다 별이다. 해가 지면 안 보이던 별이 나타날 것이다. 사랑이 지는 자리에 추억만이 외로이 남는 것 같은 이 계절에 아들이 사랑에 대해 물어본다. 그 어떤 사랑에 관한 질문에도 보이지 않는다고 사랑이 없다고는 말하고 싶지 않다.      

“아빠 사랑이 보인다면 무슨 색을 닮았을까요?”

“몰라 나는 사랑이 무지개라고 생각하지 않으니 빨주노초파남보는 아닌 것 같아. 왜 물어”

“아빠가 느끼는 사랑과 내가 느끼는 사랑이 다른 건지 한번 생각해 보았어요?”

“글쎄, 사랑이 실재하는 건지 아닌지 이 나이를 먹어도 모르겠어. 사랑이 머물기도 떠나기도 하잖아. 하지만 네 나이에 사랑은 밝은 색이어야지. 우중충하게 비가 내리면 되겠니. 비 갠 오후에 뜨는 그런 사랑의 빛깔처럼 영롱해야지.”

“그래도, 아빠는 사랑을 믿죠.”

“운명이라면..... 빗방울 떨어지는 그 거리에 서면...... 음악이 있는 그 카페... 뭐 그런 사랑,..”    

선뜻 말하기 어려웠다. 심정이 복잡해졌다. 사랑이란 말은 너무 흔한데, 나이들 수록 사랑은 이해하기가 어려운 대상이다. 경제학을 전공한 나에게 사랑은 너무 멀어 보인다. 뒤돌아보지 않는 사랑, 앞으로만 가게 하는 사랑은 있을까? 외사랑도 짝사랑도 서글픈 사랑도 아쉬운 사랑도 다 사랑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데 들으면 공허하고 쓸쓸해진다. 경제학자는 단순화를 좋아하는데 사랑은 단순화의 대상이 아닌 복잡계다.    

“사랑에 관한 책을 쓴다면서요. 혹시 하노 백이 쓴 사랑의 경제학 같은 것은 아니죠. 경제학자의 시선이 담긴 사랑은 좀 그래요. 사랑에 대해서 어떤 말을 하고 싶나요? 세월이 흘러서 느끼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다른 가해서요?”   

“네 나이에 그런 무거운 주제를 왜 말해. 지금 사랑을 시작하는 사람들도 있고, 헤어짐을 준비하는 사람들도 있겠지. 사랑이 실재하는지 모르겠지만 네 마음에 있다면 그건 이 은하계를 품고도 남을 만한 위력을 가질 거야. 무한궤도... 갑자기 사랑이 그렇다는 생각이 드네. 그런 불가사의한 존재로 다가와. 젊어서는 그렇게 생각해야지. 마음이 작아서야 되겠니. 사내대장부가....”

“부모님의 사랑은 위대한가요?”

“아니, 꼭 그런 건 아니야. 부모의 욕심으로 잘못된 사랑도 있어. 그런데 아들, 난 널 사랑해. 이 하트의 백배만큼.....”    

닭살 멘트다... 수많은 은하계 속에서 나란 존재는 무엇인가. 그리고 너란 존재란 무엇인가. 그렇게 우리가 만났다. 지구가 탄생하고 호모 사피엔스의 후예들이 숱하게 존재하며 살아갔는데 은하계의 점 위에 있는 밥톨 보다도 작은 너와 내가 만났다. 정말 소중한 인연이잖아. 사랑의 결실로 자녀가 태어난다. 그 자녀는 역사를 쓴 거다.     

“나는 사랑의 증표인가요? 그렇다면 무한궤도 표였으면 해요?”

“왜?”

“사실 우리는 숨 가쁘게 살아가는 순간 속에도 소중한 것을 많이 잊고 사는 것 같아요? 그런데 아빠 말처럼 수억만 년의 인연의 겁을 넘어 내가 태어났다면 그것만으로 무한궤도를 지나온 거잖아요.”

“요새 아이들도 그런 철학적인 말을 하니?”
 “아니 무슨 꼰대 같은 말을 하세요?”

“사랑에 무슨 꼰대 이야기를 해? 하긴 서로 아쉬워해주고, 많이 사랑해 주고 그런 게 좋은 거야. 사랑에 울고 웃고 하는데 그게 절대 사치라고 생각하지 마.”

“사랑은 공평해요, 누구나 줄 수 있는 거니까요.”

“너 진짜 누구를 사랑하는구나? 나는 공평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똑같이 받는 것도 아닌데 뭘 그래.”

“아니, 경제학 전공자 아니랄까... 뭐, 그런 말을 하세요. 사랑을 주고받기로 생각하시는 건 아니겠죠.”      

아들에게 한방을 맞았다.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다른 모든 것을 다 잃는다 해도 사랑만은 포기할 수 없다고 한다. 그래. 까짓것 나도 그런 사랑을 꿈꾸고 싶다. 그래서 무한궤도(無限軌道)로 표현한 사랑이 뭘까 생각해 보게 된다. 이 세상 어느 곳에서도 느낄 수 있는 ‘너에 대한 나의 무한한 일편단심’, ‘가을비 우산 속에 같이 들어가는 깜찍함’.     

나는 무한궤도를 생각하며 사랑의 본질은 무엇일까?, 마지막 죽는 순간에도 버리지 못할 사랑의 도리는 있을까? 내게 남아있는 사랑의 흔적은 무엇일까? 더 나은 사랑의 기술이 있다면, 그 방법은 무엇일까? 그런 사랑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되었다. 철 지난 옷에 먼지를 털 듯 내 사랑을 훌훌 털고 싶을 때, 사랑은 미움으로 남는다. 그렇다가도 사랑은 무서운 중력의 힘으로 삼라만상을 다 끌어안는 위대함으로 우리를 삼켜 버린다. 지금 사랑을 지우고 싶은 사람에게, 지금 사랑에 빨대를 꽂은 사람에게, 지금 사랑하는 이의 품속에서 안겨 있는 사람에게, 사랑의 느낌은 다르리라. 그래서 나는 아들과 여러 사랑의 이야기를 하며 사랑이 무엇인지 느껴보기로 하였다. 저녁이 오면 의무감으로 전화를 하는 그렇게 마음 한 구석을 차지할 이 죽일 놈의 사랑을 찾아서.


by 조원경 (식탁 위의 경제학자들, 한 권으로 읽는 디지털 혁명 4.0, 나를 사랑하는 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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