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일주일 후 - 예전엔 몰랐던 것들

by Abler

이번 글은 작년 연말 입시 카페에 올린 글을 조금 보완했습니다.


수능을 치른 지 1주일이 지났다.

그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간단히 정리가 될지 모르겠지만 그냥 끄적거려 본다. 이제 조금 아주 조금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아서 잊어버리기 전에...

지난주 이 시간, 아이를 학교에 보내놓고 고사장 가까운데 걸리기를 기도하던 시간이었다.

고사장이 적힌 수험표를 받아 들고 귀가한 아이와 고사장에 한번 다녀왔다. 아이는 갈 필요 없다 했지만 못 이기는 척 같이 나서주었다.

교정이 큰 학교였는데 교문 지나 건물 앞까지 가볼 수 있었으니 결과적으로는 잘 다녀온 듯하다. 당일 아이 혼자 오롯이 걸어가야 할 길인데 조금이라도 눈에 익혀놓으면 그 조금이라도 긴장이 덜하지 않았을까.


수능 당일 새벽.

도시락 준비를 하는데 정말 매일 하던 밥물 맞추는 것까지 손이 떨렸다. 하지만 오버하지 말라는 말을 여기저기서 들었던지라 아무렇지도 않은 척, 쿨한 척 짐을 챙겼다. 긴장했던 학교 앞 교통상황은 피해 무사히 예상 시간 내로 도착한 교문 앞에서 아이만 내려주고 차를 돌려 귀가하니 어디 나가기도 싫고 입맛도 없고...

그냥 뉴스 업데이트만 클릭하며 이제 국어 끝났겠구나... 수학이네... 점심은 제대로 먹나... 멍하니 있다 보니 오후가 되어 국어가 어려웠네 어쩌네 하는 커뮤니티 글도 올라오고, 하나마나한 말뿐인 평가위원장 발표도 올라왔다.

덤덤하자고 잘할 거라고 주문을 외우던 중 올해의 필적확인문구를 보고 갑자기 감정이 확 터졌다.

"초록 물결이 톡톡 튀는 젊음처럼"


해가 지고 시험완료시간.

아이가 길도 복잡&자기 심경도 어떨지 모르니 절대 오지 말라 해서 가지도 못하고 집에서 기다리는데 연락이 없어 별의별 생각이 다 든다. 뭐지 왜지 원래 연락 잘 안 하는 아이긴 한데... 시험을 못 봤나 데리러 갈 걸 그랬나 등등.


평온해 보이는 표정으로 무사히 귀가한 애를 한 번 안아주고 어땠냐 묻지도 않고 우선 밥을 먹였다.

이제 정말 그 긴 하루 무탈하게 완주한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그냥 쉬라 하고 싶은데.......!! 정말 온 가족이 아무것도 안 해도 더 아무것도 안 하고 싶은데!! 지금부터가 다시 지옥;;이 시작되었다.


바로 채점을 시작하는 것.

이게 평소 가채점표를 정확히 써오던 애들도 뭐가 씌었는지 불확실한 경우도 있고, 못써오고 기억에 의존하는 경우엔 더더욱 정확하지 않은데 우선 예상 점수를 뽑아서 바로 학원들과 커뮤니티에 난무하기 시작한 가채점 기준 등급컷이니 모의지원이니 하는 툴들에 대입해 보기 시작했다.

아니 왜 예. 상. 숫자들로 시험 당일에 이 난리를?????? 굳이???? 역시 유난? ㅠㅠ


수능 날은 목요일. 토요일부터 논술이랑 면접들 일정이 빡빡하게 잡혀있다. 매년 비슷한 패턴이다.

그리고 수능 당일날조차도 수시 1차 발표가 났다. 합격은 감사하고 기쁘지만 최종이 아니니 기뻐하고만 있을 수가 없다.

그래서, 당일 아무것도 안 하고 싶고 아이에게도 너무 잔인하다 생각하면서도 바로 가채점을 해서 결과를 예측(확인이 아니에요!)을 해야 한다. 수능을 잘 봤다고 기뻐하거나 못 봤다고 슬퍼할 겨를 없이 최저가 가능한지 확인하고, 수시전형들(논술 혹은 면접) 응시 여부를 결정해한다. 미리 결제해 둔 내일 아침 논술 파이널을 갈지 말지, 주말 어느 논술고사는 가고 어느 곳은 안 갈지 못 갈지 등등.


이때 수능을 망친 집은 아이는 제 방문을 닫고 심연의 동굴로 들어가며 대화가 단절되지만 엄마라도 얼른 추스르고 다음날 아침부터 대치동 논술학원에 갈 준비를 하도록 격려해야 한다. 마지막 기회라도 잡아야 하니까.

그럭저럭 예상범위 점수를 받은 집이라 해도 예상 등급컷에 걸린 한 과목때문에 최저가 어찌 될지 경우의 수를 돌려보면서 안(못) 가는 논술을 추려내며 희망과 절망을 오가고, 평소보다 운 좋게 한두 문제라도 더 풀어낸 집은 머리는 멍해진 채 야수의 심장만 탑재하여 '논술 안가' 목소리가 커지고 이성과 욕망을 컨트롤하기가 어렵다.


솔직히... 도박판, 코인판과 다를 바가 없다. ㅠㅠ

어느 하나 확실성이 없는데 순전히 감과 과거 데이터를 기반으로 선택을 해야 하니까.

특히 아이들은 수능 끝=입시 끝 느낌이라 못 보면 못 본 대로, 잘 보면 잘 본 대로 논술 면접 파이널 준비에 대한 거부감이 200프로인 시간이고 심지어 현역들은 기말고사가 바로라 부모 마음은 인생 길게는 알 수 없으니 마무리까지 좀 신경 쓰면 좋겠는데 대부분의 아이들에게 기말고사 따위.... ㅜㅜ


문과 엄마와 이과 아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망했다고 보긴 그렇지만 믿었던 과목에서 더 틀리고 걱정하던 과목에서 더 맞으면서 예상하지 못했던 조합을 받아왔다. 당황스럽긴 했지만 정신을 차려야 했다.


우선, 토탈 예상점수는 아이가 수시 지원한 학교들을 정시 지원해도 안정적인 점수였다. 서울대와 연대는 1차 합격을 한 상태였고 메디컬 논술의 최저등급은 다 맞췄다. 다행인 건 사실이지만 이제 선택의 조합이 문제다.


이과아들은 여전히 엄마가 쓴 논술은 안 간다, 굳이 면접 준비할 필요 없고 쉬다가 그냥 이점수로 정시 쓰자 했다.

문과엄마는

1. 가채점표를 믿을 수 있을지 겁이 났다. 심지어 아들 녀석은 탐구 한 문제 표기를 잘못했다며 그건 제출은 맞게 했다 주장하던 중이었다. 정말? 그럼 다른 문제들에 그 반대의 경우는 없을까? 밀려 쓰진 않았겠지?

2. 정시 점수는 인서울 의대는 어려울 점수였다. 그렇다면 논술 시도는 해보는 것이 낫지 않을까? 그런데 내 아들이 메디컬은 맞는 걸까?

3. 어차피 같은 과를 지망할 거면 면접 가서 붙으면 일찍 끝나 좋고 떨어져도 한 번 더 볼 수 있으니 기회가 좋은 것 아닌가?

모든 경우의 수를 상상해 보았다. 뭔가 놓치는 건 없는지 두려울 정도였다. 수능 당일 밤에 몰아치는 두뇌싸움이었다.


우선 당장 내일 오전 예약해 놓은 연대 면접대비 수업을 취소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선택이겠지만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정말 나중에 후회할지도 모르는.


서울대 면접과 메디컬 논술을 두고 살 떨리는 일주일을 보내고 이제 어느 정도 마음의 결정을 하니 일상에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다음 단계를 진행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제 12월 초 성적표를 받아 가채점과의 차이/정확한 등급컷을 알게 되는데 가채점 예상을 확인하고 멘붕이 올지 그나마 안심해도 될지 또 널을 뛰어야 하고, 중순에 수시(논술) 발표 나면 희비가 엇갈리고 다시 한번 정시지원을 위한 파파파이널 설명회와 상담으로 피를 말리는 정시레이스를 2월까지 각오해야 한다.


어느 하나 확신은 없고 어디에서 지뢰를 밟을지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