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의 나날

by Abler

결과적으로 수능 직후 면접 2회와 논술 4회의 기회를 손에 쥔 이과아들은 면접 1회에만 참여하고 나머지 5개를 버렸다.


수십만 원의 원서비와 수능최저가 아까운 마음 vs 아이가 진정으로 원하는 선택.

써놓고 보니 답은 정해져 있지만 미련은 버리기 쉽지 않다. 아이의 선택이 얼마나 진정성이 있는지, 아이의 미래를 위한 최선의 선택인지는 누구도 알 수 없으니.


수능을 보고 난 아이의 표정과 태도는 미묘하게 달라져있었다. 길고 긴 레이스를 무탈히, 예상대로 끝낸 자의 안도와 여유와 함께 동시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에너지를 아주 아주 아주 강하게 발산했다. 한 달은 그냥 쉬다가 정시에 지원하겠다는 생각인 아이를 설득해서 (그리고 설득당해서) 일주일 후 서울대 면접 하나는 보고 정시로 넘어가자고 결론을 내었다. 미리 겨우 예약해 둔 직전대비반 수업만으로 될지 불안했는데 다행히 학교에서도 1차 합격자들을 모아 준비를 도와주셨고 무사히 면접을 마쳤다.


면접을 보고 나온 아이는 큰 기대는 하지 말라고 했다.

준비시간에 다 풀지도 못했을뿐더러 면접 현장에서도 앞부분 질문이 이어져 뒷부분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못했단다. 산꼭대기 외진 학과 건물을 보고는 정시에는 그나마 평지 입구 가까이에 있는 과를 지원해야겠다는,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소리를 하면서 돌아온 후 아이는 신생아의 삶으로 되돌아갔다.


다른 친구들은 면접과 논술이 계속되어 이 반백수와 놀아줄 짬은 없었고, 거의 혼자 자고 먹고 게임하고의 쳇바퀴를 돌기 시작했다. 그러다 답답하면 산책을 나간다며 길을 나섰다. 낮과 밤은 구분 없이 내키는 대로였다. 동네 한 바퀴 정도가 아니라 서울시내 동서남북으로 여기저기를 걸어 다니다 오더라니 한 달 후 멀쩡하던 운동화가 구멍이 나버리기도 했다. 기말고사 일정 때문에 공부하는 것도 아니면서 어디 멀리 여행을 갈 수도 없던 기간이기도 했고, 여행도 다른 일도 의욕 없기는 엄마도 마찬가지였어서 그냥저냥 시간만 보냈다. 수능성적표가 이변 없이 나오길 기다릴 뿐.


12월 초, 수능 본 지 3주 후에 수능성적표가 나왔다. 공식적인 성적표를 받아오자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딱 예상 가채점과 1점도 차이 없는 결과물이었다... 가 아니라 그동안 성적표와는 달리 표준점수와 백분위, 등급만 적힌 성적표였다. 예상과 다르지 않으니 원점수도 가채점과 같으려니 할 뿐.


이제 대략 다음 주부터 수시 결과가 발표 나기 시작할 터였다. 서울대 발표는 열흘 뒤.

동시에 정시파이터들을 위해 이미 정시예상 프로그램 판매가 시작되었고, 궁금하기도 하고 조급해진 엄마는 또 결제하기 시작했다. 대외적인 일도 중단한 상태인 데다 이제 성적표가 나오고 수시발표가 시작되면서 친구와 가족들은 더더욱 조용해져 컴퓨터 앞에만 매달려 있었던 그때, 정말 시간이 더디게 가는 기간이었다. 물론 수시원서 한 장이었기에 가능한 것이었지만.


입시 관련 사이트와 카페만 오가며 지루한 열흘이 지나고 12월 11일. 서울대가 매년 공식적인 발표날보다 하루 일찍 조기발표한다는 정보가 이미 입시 카페에 돌고 있었고, 바로 그날이었다. 시간은 다가오는데 아이는 여전히 시큰둥하니 좀비처럼 집안을 오가고 있었다.


그래도 한 번 봐야지
보려면 보던가

아닌 척하며 슬그머니 가까이 와서 서성였다


역시 입시 선배들의 말처럼 합격 확인창이 떴고 벌벌 떨리는 손으로 수험번호를 입력했다.


합격 화면을 보는 순간을 말해 뭐 하랴.

어안이 벙벙해서 순간 무슨 생각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도 않는다.

됐네? 이게 되네? 아이도 엄마 포옹 한번 받아주고 포효 한 번 한 후에 가만히 있지 못하고 집안을 돌아다녔다. 아까와는 다른 발걸음. 찐으로 끝났다.


회사에 간 아빠에게, 양가 할머니에게, 이모 삼촌에게 카톡을 날리고 멍하니 앉아있었다. 뭘 해야 하지. 이제 더 확인해야 할 학교도 없고, 이제 정말 끝인가. 이렇게?


사족 : 서울대학교 합격화면은 매우 명료하고 심심하다. 다른 학교는 환영 영상도 있고 하던데.


침묵의 시간

수능 후 시간은 대부분의 수험생 집안은 그동안과는 비교가 안될 만큼 살얼음판이자 신경이 곤두서 있는 기간이다. 주말마다 면접과 논술을 보러 다니는 스케줄을 소화해내야 하고, 내 고등학교 생활의 결과물 같은 수능 성적표라는 것을 실물로 받아 들어 현실을 마주해야 하고, 주변의 합격소식이 들려오는 와중에 6번의 합불확인의 긴장감을 경험하는 것은 안 해본 사람은 모른다. 누군가는 꼴랑 한 번 클릭하면서도 거짓말 좀 보태서 기절할 뻔했다가 운 좋게 합격해서 이런 글 나부랭이를 쓰고 있지만.

그래서인지 언제부터인가 입시결과를 묻는 것은 매우 무매너이며 비상식적인 언행이 되어버렸다. 할머니들도 숨죽여 기다리고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아이가 어디를 지원했는지 합격했는지 불합격했는지 물어봐서도 안되고 궁금해해서도 안된다. 익명의 온라인카페엔 합격자들과 축하인사가 넘쳐나니 아이러니하기도 하고 역시 여기에서도 까칠한 시비가 붙는 웃픈 상황도 벌어진다. 객관적으로 입바른 소리는 아끼련다. 의학적으로나 법적으로 해석이 불가한 감정이 솟구치는 특이 기간이니 사춘기도 갱년기도 이길 수 없다. 엄마들 사이는 물론이고 이제는 친구들 사이도 어느 대학 갔는지 물어보지 않는다니 이 정도까지 여야 하나 싶지만, 점점 민감한 소재가 되어가고 있는 것은 현실인 것 같다.



알고 계셨나요? 수능 후 스케줄

수능일은 보통 11월 둘째 주 목요일.

이후 둘째 주 주말부터 면접과 논술스케줄이 시작되어 매주 주말 대학별 논술일정이 있고 주중에는 고등학교 기말고사가 있다. 아이 학교는 수능 다음 주에 바로 기말고사를 진행하고 그 이후를 단체 체험학습으로 사용하길 권장했다.

3주 후 12월 첫째 주 수능 성적표가 나오고 수시 결과 발표가 대학별로 진행된다. 수시 추합 일정이 돌고 정시 이월 여부와 숫자가 확정되는 12월 말이 되어서야 정시 접수가 시작되니 정시파이터들의 전장은 해를 넘겨 열린다.

1월 중 필요한 실기 및 면접들이 진행되고 2월부터 최초합격자 발표를 시작으로 꼬리를 무는 추합이 이어지니 마지막 합격자 발표는 2월 말 입학식에 겹치는 웃픈 일이 벌어지는 스케줄이다.


수시합격자는 서류 등록 후 정시합격자 등록기간에 같이 등록금을 내고, 정시합격자는 발표 후 등록 및 등록금 납부가 바로 진행되니 다른 스타일이지만 본인이 일정을 꼼꼼히 챙기지 않고 놓치면 대참사가 일어난다는 것은 동일하다. 추가합격은 꼭 확인할 것. 학교마다, 회차마다 일정과 방법이 다 다르니 모두 잘 챙겨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