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현 <인생이 내추럴해지는 방법> 독서 기록
좋아보이는 것, 인기 많은 것들이 주류가 되어 살아남은 이 시대. <합성 첨가물 없이 내추럴하게 사는 삶>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오늘 떠오른 <내추럴한 삶>이란 ‘여럿이 어울려 살며, 탐스러운 과실(결과)에 집중하기 보다 땅을 생명력있게 가꾸는 데(자존,에너지) 애정을 쏟는 삶’이다. 주제는 없었으나, 사는 방법에 대해 생각하게 해주는 내추럴한 책을 만났다. 글은 <인생이 내추럴해지는 방법>에 대한 리뷰다.
책을 간단히 소개하자면 ‘와인을 만들며 살고 싶어’라 말한 프랑스 남편을 위해 파리지앵 생활을 청산한 작가 신이현의, 대한민국 충주에서 포도 농사와 내추럴 와인 양조를 시도하며 겪는 개고생을 풀어 쓴 책이다. 낭만과 고집있는 농부의 농사법을 엿볼 수 있고, 동시에 속이 뒤집어지는 와이프의 마음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결국 둘이 좋아서 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들은 농사를 하며 즐거웠다가 원망스러웠다가 감사하다가 경이로움을 느낀다.
‘내추럴한 인생’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프랑스 남편 레돔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이전에 개발자였던 거 같은데 어느날 원하는 일을 하고 싶다고 선언한다. 농부가 되고 싶다고. 농사를 짓고 와인을 만들자고. 와인을 만들 수 있다면 어디든 상관없다는 말에 작가는 한국에서 농사를 짓자고 제안한다. 근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바로 농사 프로젝트의 메인 담당, 레돔이 한국말을 할 수 없다는 것 ^-^! 낭만과 자신만의 철학이 가득한 그는, 정착 후 아내에게 이것저것을 구해달라고 한다. 그 이것저것들이란 죄다 마트에서는 살 수 없는 이상한 것들이다. 소 똥이나, 벌이나, 씨앗이나, 다양한 품종의 포도 나무나, 심지어 농사지을 땅도 구해달라고도 한다. 그는 한국말을 할 수 없으니까 이 모든 것은 아내 신이현의 몫이다. 필요한 건 막무가내로 구해달라 하되 타협은 절대 하지 않는 강단있는 성격의 소유자! 날카로운 말로 싸움을 하기라도 하면 종종 눈물을 흘리는 것 같기도 하다. (정말 프랑스 남자!) 작가도 남편 레돔에게 점점 레며들며 농사를 좋아하게 되긴 했지만, 지금까지 한국어를 제대로 할 줄 모르는 남편의 눈과 입이 되어주는 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작가가 들으면 속터질 수도 있겠지만, 레돔의 이런 성격 덕에 책이 더 재밌어진게 아닐까 생각한다. 하하호호 마냥 좋은 전원 생활이 아니어서 더 자연스러운 것 같다.
농사는 실전이다. ‘자연을 받아들이는 것’은 호락호락하지 않는 인생사를 실감하고 받아들이는 일이기도 하다. 책을 읽기 전 까지는 농사가 이렇게 고된줄 몰랐다. 아무리 내가 밭일을 열심히 하더라도 비가 안오거나 너무 와버리면 그 해 농사는 아작이 나버린다. 농사만 잘 짓는다고 와인이 뚝딱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다. 주조 외에도 술을 팔기 위해서는 여러 서류 작업들과 증명이 필요했다. 시간이 생명인 내추럴 와인에서 유럽에서 들여온 기계들은 자주 고장이 나버린다. 그리고 사업은 손익분기를 못넘어서 대출도 안나온단다. ‘프랑스 남편과 함께 하는 와인 전원 생활’이라는 눈부신 타이틀을 가졌지만 현실은 대환장파티인 셈. 그들이 얼마나 고생했는 지, 고생길을 건너왔더니 또 다른 고생에 맞닥뜨리는 장면을 보게 된다. 그럼에도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가는 부부, 정확히는 신작가의 모습은 억척스러우면서도 그녀가 품은 사랑을 사랑스럽게 만든다.
나는 여기서 '자연스러움'이 가진 진짜 아름다움을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자연스러움>이라는 단어는 '인위적/기계적' 표현보다 덜 어렵고 편안하며 아늑한 감정을 풍기지만, 실제로 자연스러움을 완성하기 위해서 치열한 공방과 개고생이 필요한 것을.
책을 읽고 이 농장의 내추럴 와인을 주문했다. 부부가 고생한 술이라서 산 게 아니라, 고집스러운 낭만가 레돔의 철학과 기준이 술에 잘 베어나기 때문이다. 레돔은 말한다. 땅을 키울 줄 알아야 농부라고. 땅이 좋아서 춤추고 노래해야 와인도 좋아서 춤을 춘다고. 아래는 레돔 농부의 어록이다. 농사에 대한 철학이 얼마나 대단한 지 엿볼 수 있다.
“땅에게 가장 치명적인 건 뜨거운 태양이야. 땅도 인간처럼 시원하고 쾌적한 걸 좋아하는 살아 숨 쉬는 존재라고. 저렇게 깨끗하게 갈아엎어서 잡풀이 하나도 없으면 지렁인 뭘 먹고, 미생물들은 어디서 살지? 버섯은 꿈도 꿀 수 없어. 잡초가 있어야 그 그늘에서 버섯도 자라고 지렁이도 먹고살면서 퇴비를 만들잖아. 좋은 열매를 키우고 싶으면 땅도 돌봐야 하는 게 농부의 일이잖아”
“길쭉한 무는 땅에 정말 좋아. 깊숙하게 파고들어 가기 때문에 땅에 구멍을 내어 땅이 숨을 쉬게 하지. 그것이 땅 속에서 썩으면 지렁이들이 오고, 온갖 벌레와 박테리아가 살게 돼. 그 자체가 미네랄이 돼. 그러면 땅이 좋아서 춤을 출거야. 땅이 춤을 추면 거기서 자란 포도나무도 춤을 추고, 거기에 열린 포도도 춤을 추겠지. 그 포도로 담근 와인을 마시면 사람도 춤을 추지 않을까?”
“이 땅을 살리려면 땅 속에서 6개월 삭힌 유기농 소똥이 필요해. 신선한 풀을 먹고 자란 소가 눈 유기농 똥이 필요해. 생명역동농법이지. 우주를 바탕으로 농사짓는 이 농법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순 없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농부는 나무만 키우는 것이 아니라 땅도 함께 키운다는 거야."
‘미생물과 여러 생명들과 다양한 작물이 자라나는, 살아있는 땅 속에서 자라나는 숲 같은 와인’을 만드는 것. 이 기준을 위해 레돔은 땅에 집착한다. 주변 농부들이 왈가왈부하는, 잡초 투성이 맡에서 자란 와인의 맛은 얼마나 내추럴할까. 레돔의 농사법은 알맹이가 크고 인기있는 포도 품종 하나 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신 맛이 있어 인기 없는 포도까지도 함께 어울려 사는 게 그가 말하는 내추럴함이다. 과실에 집중하지 않고, 자신만의 신념으로 만드는 와인의 맛을 꼭 한번 느껴보고 싶다.
책의 뒷면에는 이런 말이 적혀 있다. 그들의 선택이 엄청 좋을수도, 엄청 나쁠수도 있지만 현재 그들은 후회 없이 춤을 출 수 있다고. 미래가 예상되지 않는 불안함 속에서도 그들은 춤을 춘다. 오로지 '농부가 되어 와인을 만들고 싶다'라는 신념 하나로 시작된 농사였으나, 그후 시행착오라고 하기에는 다소 뼈아픈 경험을 한다. 인생은 실전이니까. 그럼에도 그들은 계속 내추럴 와인을 만든다. 사업 대박이 날지, 빚에 쫓겨 밀항선에 탈지 모르는 삶 속에서 자신들의 기준에 맞게 삶을 써내려 간다. 후회 없이 땅을 일구며.
우리의 꿈이 어디로 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완결되지 않은 채 불안하게 진행 중인 지금이 나쁘지 않다. 끝을 알 수 없는 한편의 스릴러처럼 흥미롭다. 어느 것이 되어도 상관없다. 중요한 건 지금 우리는 <후회 없이 꿈을 꾸었다>, 노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본디 내추럴와인은 우리가 생각하는, 예상되는 맛을 가진 와인은 아니다. 첨가물없이 만들기 때문에 보편적인 맛을 가지지 않고, 빨리 산화된다. 반면에 그 해 자란 포도의 맛을 온전히 느낀다는 매력이 있다. 책에서 느껴지는 <내추럴한 인생을 사는 법>도 비슷한 것 같다. 보편적인 기대, 보증된 달콤함을 가진 인생도 좋지만, 자신만의 기준을 가지고 떳떳하게 사는 삶(비록 농사가 힘들고, 결과물이 빨리 산화될지라도)도 매력이 있다고. 분명 그 삶은 후회없이 춤을 추는 삶이라고 생각이 든다.
책을 읽으며 레돔Lesdom 내추럴 와인을 주문했다. 주말에 동글이와 마시면서 인생의 내추럴함에 대해 떠들어봐야 겠다. 책 내용은 가볍지만, 가벼워서 스스로 고민하며 무거워질 수 있던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