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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아나 Aug 26. 2023

최고의 자유는 스스로 세운 기준을 누리는 것

<미합중국독립선언서> 독서 기록

‘개인의 자유와 권리’, 그리고 그 개인이 모여 만드는 ‘연대와 합치의 기준’에 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모두가 동등하다(천부 인권)는 개념이 없었던 시대, 차별이 당연하던 시대에 <자유와 정당함>이라는 개념을 대중들에게 전하고 힘을 얻어 독립을 이루어 낸 점이 인상 깊었다. 시카고 플랜의 첫 고전이 독립선언서인 이유를 생각해 봤다. 예상해보건대 인문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가치는 ‘스스로에 대한 존엄과 삶의 기준을 세우는 것'이기 때문이 아닐까? 글은 <미합중국독립선언서> 전문에 대한 기록이다.



독립선언서가 쓰인 배경에 대해

독립선언서가 쓰일 당시의 상황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당시 미국의 식민지를 두고 전쟁을 치른 영국은, 소진된 재정을 다시 마련하기 위해 아메리카에 각종 세금을 징수하게 된다. 이후 강한 저항의식을 가진 아메리카인들이 정당한 권리와 자치를 요구하게 된다. 버지니아 주의 대표인 토마스 제퍼슨이 초안을 작성한 것이 바로 이 <미합중국독립선언서>.


독립선언서에는 천부 인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존 로크의 '시민 정부론'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해석된다. 주요 내용은 '국민과 정부 사이에 충돌을 빚어 사회적 신뢰가 와해될 때, 그 정부가 해체되어야 하는지를 판단하는 것은 국민'이라는 것이다. 이 글은 민주주의 기반의 정치 철학이 제시되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가진다. 다만 존 로크의 3대 자연권은 '생명권', '자유권', '재산권'이지만- 독립선언서의 3대 자연권은 '생존권', '자유권', '행복권'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 독립선언문은 영국으로부터의 독립과 새로운 정부의 공식 명칭을 공표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재밌는 사실이 있는데 첫 번째는 이때 당시만 해도 미국인들이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았다는 거다. 그저 세금을 완화해 주고 자치적인 권한을 주는 걸 원했다고. 두 번째는 원래 이 독립선언문에는 '노예 제도'에 대한 강한 비판이 들어갔으나, 최종본에는 그 내용이 쏙 빠졌다는 것. 노예 제도로 부를 쌓은 남부 지식인들이 있었는데, 이들의  눈총을 이겨내지 못해 결국은 내용을 삭제했다고 한다. 노예 제도는 서서히 사라질 것이라는 안일한 입장도 있었으나 결국 이 문제는 후에 전쟁으로 치닫게 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이 독립선언서가 공개된 '1776'년을 기념하여, 미국에서는 '76'이 자유를 상징하는 숫자가 되었다는 것. 


이 고전이 시카고 플랜의 첫 번째인 이유,

시카고학파와 재산권을 중시하는 자유 문화

진행했던 북클럽의 첫 발제는 '책이 아닌 이 선언서가 첫 번째 리스트로 뽑힌 이유가 뭘까(어떤 의미가 있는가)'였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래 글을 읽기 전에 각자 나름의 생각을 정리해 보면 좋을 것 같다.


시카고 플랜은 알다시피 '시카고 대학교'에서 학생들의 수준 향상을 위해 만들어진 고전 읽기 프로그램이다. '시카고'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에 집중한다면, 우리는 '시카고학파'의 영향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시카고학파는 시카고 대학교를 중심으로 하는 경제학자들을 가리키는데, 또 다른 말로 신자유주의 학파라 부르기도 한다. 이들에 대해서는 두산 백과의 내용을 가져왔다.


시카고학파는 케인스 경제학의 입장을 계승한 신경제학(new economics)에 대립하여 생산 ·고용 ·가격 등의 수준을 결정하는 요인으로서 통화공급량을 중시하며, 정부의 활동보다는 민간의 자유로운 행동을 중시한다.


이 내용을 토대로 했을 때, 지리학적으로 시카고는 자유경쟁원리를 중시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이고, 자연스럽게 '개인의 자유'가 대변되는 독립선언서가 시카고 플랜의 첫 책이 될 수 있었던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참고로 시카고 대학교는 전 세계 노벨경제학상 최다 수상자 순위 1위(2019년 기준 33명)를 배출해낸 대학교이기도 하다. 여튼 재산권과 개인의 자유에 대한 고유의 권리를 중요시 여기는 시카고 지역 문화가 반영되었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다만 첫 번째 책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인문학적으로도 생각을 해볼 수 있다. 역사와 배경이 아니라, 이 글 자체에 집중을 한다면 <권리를 위해 마땅한 규칙과 기준을 세우고,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하는 논리 사고>를 확인해 볼 수 있다. 그리고 자유와 권리는 남이 만들어 주지 않으며, 진정한 독립은 합리적이고 자주적인 사고의 확장을 통해 비로소 얻어낼 수 있다는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합리적이고 공정한 규칙을 기준으로 사고하는 것은 2022년에도 여전히 유효한 개념이다. 오히려 최근 들어 특히 더 중요시되고 있는 기준이기도 하고. 이러한 사고의 목적은 본질적으로 개인의 인권과 존엄을 바탕으로 둔다. 독립선언서는 삶에 있어 스스로에게 중요하게 여겨지는 절대적 가치가 무엇인지 묻고,  이 절대적 가치를 지키기 위한 규칙은 무엇인지 돌아보게 한다. 앞서 말했지만 인문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가치가 ‘스스로에 대한 존엄과 삶의 기준을 세우는 것'이라 가정한다면, 독립선언문은 내면에 이러한 질문을 가져다주는 가장 좋은 글일지도 모른다.


재산권=돈은 우리에게 어떤 가치를 주는가?

시카고학파의 자유 경쟁에 대해 이야기가 나오다 보니, 자연스럽게 돈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가볍게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게 있는가' 와 '돈을 터부시하는 우리나라의 문화'에 대한 내용이었다. 개인적으로는 '돈은 많은 것을 살 수는 있지만, 사고하고 판단하는 폭을 직접적으로 사지는 못한다'는 입장이다. 간접적으로는 가능할 수 있겠지만, 스스로 사고하는 부분만큼은 스스로가 사고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절대적 정신적 안정감'도 살 수 없다고 얘기했다. 돈이 많아도 자살하고, 건강을 챙기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나. 그들도 머릿속으로는 다르게 마음먹어야 함을 알지만, 각자가 처한 상황 속에서 절대적인 안정감을 얻지 못해 그럴 여유가 생기지 않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흔한 말로 누군가는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다'라고 얘기하겠지만, 행복이라는 단어는 내가 말하고 싶은 내용을 오해하게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나라는 특히 '돈'을 특정 가치와 대척점에 있는 대상으로 만들곤 한다. '행복'이나 '성취/노력'이나 '사랑'같은 것들 말이다. 사실 <개인 사고의 확장>과 <절대적 정신 건강>을 제외하고는 웬만하면 돈은 수단으로써 상당히 많은 것을 취할 수 있게 해준다고 생각한다. 고귀한 가치를 위해 '자유'를  얘기하는 것보다, 재산권과 시장 경제를 위해 개인의 자유가 필요하다는 쪽이 난 좀 더 솔직하고 좋은 것 같다. 돈에 대한 각자의 시선을 이야기했다. 정답은 없다.


개인주의와 공리주의에 대해

독립선언서가 국민의 자유에 대해 강조하는 글이다 보니, 개인주의와 공리주의에 대한 내용이 세 번째 발제로 나왔다. 실제로 '국민의 천부 인권'이라는 개인권을 주장했음에도 노예의 권리가 쏙 빠지는 것을 보면, 어쩌면 개인주의는 공리주의 완성 후에 비로소  완성되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도 든다. 이 부분은 개인의 생각과 가치에 따라 달라진다. 어느 것이 도덕적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 같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사회라는 게 집단과 계층이 나누어져 있다 보니, 이론과 상상과는 달리 역사적으로는 '공리주의'가 우선시 되는 것 같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코로나 때 특정 나라 시민들은 마스크 착용을 '개인의 자유 침해'로 주장했고, 우리나라 시민들은 '(내가 걸리지 않기 위해) 공동체 모두가 조심하기 위한 행동'으로 인식했던 게 예시로 나왔다. 둘 다 개인의 권리가 우선되었음에도 실제로 행동은 달랐다. '최재천의 공부'에도 나왔었지만 어쩌면 우리나라의 '개인의 권리'는 필연적으로 공리주의와 연결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한다. 찐 자유주의와는 조금 다른 결인?


개인주의가 강해졌을 때 다수의 이익을 침해하는 것이 정당한가에 대한 내용도 나왔다. 예를 든다면 트랜스 젠더나, 특정 집단들이 화장실을 공동으로 사용하자고 이야기할 경우 소수는 안전에 위협을 느낄 수 있다. 국가의 정치에는 도덕성이 기준이 되는가?에 대한 내용도 나왔다. 예를 들어 망하기 직전인 우리나라를 구하기 위해, 주변의 약한 나라를 식민지로 삼고 핍박하는 것은 올바른 것인가. 젤리(진)과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하는 동안 '개인의 자유'와 '최대 다수의 행복'은 상대적인 것이라 느꼈다. 개인의 자유란 언제든지 도덕적일 수 있으며, 또 언제든지 비인류적일 수도 있다. 생각이 뻗고 뻗으니, 나 중심의 행복과 자유에 대해서는,  조금 더 경계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창조되었고, 창조주는 몇 개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했으며, 그 권리 중에는 생명과 자유와 행복의 추구가 있다. 이 권리를 확보하기 위하여 인류는 정부를 조직했으며, 이 정부의 정당한 권력은 인민의 동의로부터 유래하고 있는 것이다. 또 어떤 형태의 정부이든 이러한 목적을 파괴할 때에는 언제든지 정부를 개혁하거나 폐지하여 인민의 안전과 행복을 가장 효과적으로 가져올 수 있는, 그러한 원칙에 기초를 두고 그러한 형태로 기구를 갖춘 새로운 정부를 조직하는 것은 인민의 권리인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느낀 포인트는 3가지>는 이렇다

1. 계급사회라는 울타리를 깨고 인류가 존엄성, 권리에 대해 인지하게 된 것 

2. 이 개념을 대중들에게 이해시키고 또 지지 받은 것 (내로남불이었지만) 

3. 거대 조직(정부)에 굴하지 않고, 규칙과 기준에 따라 합리적인 의견을 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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