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셀 로버츠 <결심이 필요한 순간들> 독서 기록
대단한 삶은 아닐지라도 우리는 종종 선택의 기로에 선다. 점심 메뉴같이 조금 잘못되어도 상관없는 주제면 상관이 없을 것 같은데 '대학', '취업', '결혼', '출산', '이직'같은 문제는 생각만 해도 겁난다. 순간의 선택으로 인생이 망가질까 봐 두려운 것이다. 우리는 현명하게 판단하고 올바른 대처를 하고 싶지만 이런 주제들은 태반이 '답이 없는 문제'라는 게 문제다. 사람마다 다르고 상황마다 다르고, 또 운에 따라 어떻게 풀릴지도 천차만별인데 어떤 선택지가 최선일지 어떻게 가늠하냔 말이다. 그럼에도 여기, 이 답없는 문제 앞에 나타나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는 법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경제 학자이기도 한 러셀 로버츠는 삶에 있어 후회하지 않는 선택을 하는 방법을 제안한다. 비용 대비 효익에 도가 튼 그가 설명하는 거라면, 속는 셈 치고 그 원칙을 들여다봐도 좋을 것 같다. 책은 '결심이 필요한 순간들'의 리뷰다.
이번 책은 러셀의 논리 흐름에 대한 부연 설명이 필요해 요약 내용이 더 많을 수 있다. 오늘의 글은 서평보다는 해설에 가깝다. 요약 내용과 함께 러셀이 제시하는 단 한 가지 원칙을 스스로에게 대입하며, 우리의 자존을 대표하는 삶의 원칙을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다.
저명한 경제학자인만큼 똑 부러지는 공식을 알려줄 것으로 기대했으나, 역설적이게도 그는 '선택의 순간, 우리가 결과를 예상하고 판단하는 것에는 큰 결함이 있다'라고 설명한다. 지능이 떨어져서가 아니라, 미래라는 공간에서 미래의 내가 실제로 효익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가늠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다. 예컨대 '아기를 낳는 게 좋을까?'에 대해 좋은 점과 나쁜 점을 쓴다면, 그 내용들은 미래의 나는 변하지 않으며, 내가 아는 효익이 전부라는 가정 하에 쓰일 것이다. 당연하게도 이 가정은 불완전하기 때문에, 아무리 상세하게 미래를 예상하고 이성적으로 장단점을 판단하더라도 우리는 미래를 맞출 수 없다. 물론 '이렇게라도 해서 안정적인 선택을 하고 싶은 마음'은 인간으로서 당연한 것이기도 하다. 종의 기원을 쓴 찰스 다윈도 '결혼을 하고 학술적 성취가 망가지진 않을지, 억지로 가족을 챙기는 삶이 피곤하진 않을지' 고민했다고 한다. 그 역시 좋은 점과 나쁜 점을 써봤다고. 단지 러셀은 '비용 대비 효익'으로 우리 미래를 예상해보는 것은 한계가 있으며, 현명한 선택을 하는 공식이 아닐 수 있다는 점을 이야기한다.
여기에 한 술 더 떠 그는 비용 대비 효익을 따지는 과정에서 내 마음 속에서 은근히 바랬던 선택지가 어떤 건지 살펴보라고 한다. 이런 제안이 주관적이거나 또는 근거 없는 것으로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우리가 장단점으로 예상한 것들이 오히려 주관적이라고 설명한다. '결혼을 하면 이럴 것이야'라고 적은 것들은 <주워들은 경험에 기대거나 예측하는 느낌이 대부분>이라고 주장했고, 또 이렇게 적힌 것들은 <통상적으로 느끼는 행복, 일상적 쾌락을 주냐 고통을 주냐라는 단편적인 기준으로 쓰인 것> 뿐이라 설명한다. 우리가 미래를 통제할 수 없듯, 미래를 예측하는 것 역시 완전하지 않다는 것을 피력한다.
결혼은 특히 답이 없는 문제가 얼마나 복합적인지를 아주 잘 보여 준다. 누군가와 함께했을 때 하루하루가 어떨지를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심지어 그 하루하루를 예측할 수 있다고 해도 그로 인해 당신의 인간적 성장이 어떤 영향을 받을지까지 예측할 수는 없다. 나중에 누군가의 배우자가 된 나라는 사람이 마음에 들지, 특히나 바로 이 사람의 배우자가 된 내가 스스로 마음에 들지 어떨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러셀이 말한 '내가 마음속에서 은근히 바랬던 선택지'는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설마 느낌대로 살라는 말을 하려고 기껏 우리가 고민한 장단점을 그리 폄하하진 않았겠지. 다행히도 러셀은 이를 '일상적 쾌락을 넘어선 삶의 질감'이라 표현하며, 이를 선택 기준의 중심에 둘 것을 제안한다.
우리는 왜 답 없는 문제에 괴로워하면서도 선택하며 살아가는 걸까. 아마 목표는 조금씩 다르겠지만 인생을 잘 살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잘 산 인생이란 무엇인지, 단순히 쾌락과 고통을 합산했을 때 쾌락이 더 큰 삶이면 괜찮은지 질문한다. (극단적이긴 하지만) 23시간 마티니를 마시며 수영장에서 수영하다 나머지 1시간을 후회와 절망 속에서 시간을 보내고, 다시 23시간을 수영하는 삶을 사는 삶을 선택할 수 있냐고 묻는다. 이 지점에서 러셀은 만족스럽게 산다는 것은 편하고, 쾌락을 느끼며 사는 게 전부가 아님을 이야기한다. 그는 우리 삶에는 일상적 경험 말고 무언가가 더 있으며, 고통이 따르더라도 기꺼이 선택할 수 있는 '원칙을 지키는 삶'에 대한 동경이 있다고 이야기 한다. 이는 나의 정체성을 쾌락에 둘 것인지, 의미에 둘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내가 어떤 삶을 살 것인지 선택을 하면, 이제부터 나의 정체성은 단순히 내가 경험하는 것 이상이 된다. 이런 자아감은 일상적 경험(쾌락 또는 만족감)을 초월하기 때문이다.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는 자신에 대한 존중감을 헤아리는데서 시작될 것이다. 다윈의 이야기를 이어 말하자면, 그는 결혼의 장단점을 쓰다 어느 날 또 다른 글을 썼다. 결혼을 하지 않으면 칙칙한 집에서 혼자서 늙을 수도 있고, 일벌처럼 일만 하고 아무것도 남지 않는 것은 불쾌한 일이 될 것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착하고 다정한 아내가 소파에 앉아있고 장작이 타오르는 장면을 상상했다. 머릿속으로는 결혼이 고통이 더 큰 선택이라 생각했으나, 사실 그가 살고 싶은 삶은 가족과 함께하는 삶이었던 것 같다. 다윈은 끝내 마지막 문장을 쓴다. '결혼한다. 결혼한다. 결혼한다. 증명 끝(Q.E.D)'. 다윈은 친척이었던 부인과 결혼하여 20여 년 후 '종의 기원'을 발표하게 된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스스로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이다. 러셀은 인생에는 감정의 기복, 쾌락, 행복을 넘어서는 그 이상의 것이 있음을 강조한다. 그리고 자신을 충만하게 하고 자신답게 느끼게 해 주는 그 삶의 결을 찾으라고 제안한다.
인간의 관심사는 일상적으로 느끼는 그날그날의 쾌락과 고통을 넘어선다. 우리는 목적을 원한다. 의미를 원한다. 나 자신보다 큰 무언가에 속하기를 원한다. 우리는 열망한다. 중요한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 이런 전반적 느낌(행복 내지는 일상적 쾌락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을 넘어선 삶의 질감)이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규정하고 나 자신을 어떻게 볼지를 결정한다(인간적 성장). '잘 산 인생'의 중심에는 이런 동경이 있다.
만족스러운 삶, 잘 산 인생이란 단순히 쾌락과 고통을 합산했을 때 쾌락이 고통보다 커지도록 노력하는 삶은 아니다. (중략) 비용과 혜택의 합계를 내는 것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하는 올바른 방식이 아니다. 인간적 성장은 비용과 혜택만큼 명백해 보이지는 않을지 몰라도 일상적 쾌락과 고통 전반에 영향을 준다. 내가 '인간적 성장'이라고 부르는 부분은 우리의 일상적 경험을 초월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일상적 경험을 더 가치 있게 만든다. 우리는 스스로 배신하지 않기 위해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인 결정을 내리기도 한다.
우리의 정체성이나 열망을 배신하면서까지 맞바꿀 수 있는 것은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 나 자신에 대한 존중감은 세상 그 무엇으로도 맞바꿀 수 없는 유일한 것이기 때문이다. (중략) 규칙은 간단하다. 당신의 원칙을 첫 번째로 놓으라. 당신의 결정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규정한다. 당신의 본질과 관련된 문제라면 트레이드오프는 하지 말라. 진실하게 살라. 옳은 일을 하라. 당신 자신을 존중하라. 적어도 출발점은 이래야 한다. 원칙을 첫 번째로 놓는다는 것은 당신이 지금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시간이 지나면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을 것 같은가에 관한 문제다. (중략) 원하는 것, 좋아하는 것, 추구하는 것. 당신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규정한다. 우리는 만들어지는 과정에 있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생각하고 열망하라
나를 나답게 해주는 원칙을 1순위로 둔다면, 여러 선택의 상황에도 우리는 단단해질 수 있다. 책에서는 쾌락과 목적 사이에서 삶의 균형을 잡는 법과, 복수의 선택지가 있을 때 더 나은 선택을 하는 방법에 대한 유용한 기준들을 소개해준다. 이 부분도 정말 좋으니 직접 책에서 읽어보길 권한다.
이 책에서 삶의 질감만큼 중요하게 얘기하는 것은 '답이 없는 삶에 대한 아름다움'이다. 어떤 인생 문제들은 정답이 없어 보이기도 한다. 러셀은 그래도 괜찮다고 말한다. 인생이란 지도 없이 지구를 행군하는 여행과 같다고, 실은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눈부시게 아름다운 일이라고도 얘기한다. 쾌락을 좇는 선택이 아닌 인간적 성장과 목적, 사랑을 기준으로 한 선택은 그 과정에서 우리들을 더 나은 존재로 만들어낸다고 그는 믿었다. 아마 세상에는 우리가 꿈꾸고 기대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이 있을 것이다.
혹여 어떤 문제에서 우리가 선택한 결과가 좋지 않을 수도 있다. 러셀은 이를 선택에 대한 예상과 다른 결과일 뿐이지 결코 실패나 실수이지 않다는 점도 강조한다. 어떻게 해도 잘할 방법이 없다면 그건 실수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옳은 결정'이 무엇이었을지 알아내는 시간을 줄이고, 오히려 선택 결과가 좋지 않았을 때 실망감에 대처할 방법을 고민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쓰는 게 이득일 것이라 조언한다. 우리가 골칫덩이라고 생각했던 답이 없는 문제들을 조금 더 음미하고 과정을 즐기길 바라는 러셀의 마음이 느껴졌다.
수영장에서 시간을 보내고, 수영장이 아닌 곳에서도 시간을 보내며 우리에게 의미 있는 일을 하길 바란다고 얘기하며 책을 마무리한다.
의미, 목적, 사랑, 인간적 성장, 재능을 최대치로 활용하는 것, 바로 이런 것들이 우리의 가슴을 노래하게 한다. 이런 것들은 우리를 우리 자신보다 더 위대한 무언가로 키워낸다.
우리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은 아예 통제를 벗어났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가 통제할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한다고 해서 전혀 통제가 안 되거나 계획조차 세울 수 없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이는 경험을 해 나가면서 새롭게 알게 되는 정보에 맞춰 계획이나 여행을 수정할 기회가 생길 거라고 믿는다는 뜻이다
고백하자면 내 인생의 열망은 '사랑과 자람을 극한으로 이루는 삶'이다. 늙어서도 내가 품을 수 있는 울타리 안에서 사랑을 나누고, 매 순간 모자람을 깨닫고 스스로 더 나아지는 삶이다. 남들이 왜 좋은 곳 두고 그곳으로 이직하냐고 물었을 때도, 아기를 가질 건지 끝장을 보지 않고 결혼했냐고 다그쳤을 때도, 주말마다 피곤한 일을 벌이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내가 이루고 싶은 삶의 모습을 직접 그리고 싶었기 때문에 행동했다. 결과물이 아쉽더라도 시도했음에 스스로를 대견해했다.
다만 겁나긴 했다. 좋은 선택지를 걷어찬 게 아닐까? 내 가치관이라고 하는 것들이 현실성을 고려하지 못한 허상이 아닐까? 내가 멍청한 선택지를 고르는 동안 누군가는 똑똑한 선택지로 더 큰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의문들이 이따금씩 들었고, 그때마다 나의 신념과 가치관은 자꾸만 희미한 척을 했기 때문이다. 러셀의 책은 이런 나를 불안에서 꺼내준 유일한 책이었다. 작가의 메시지는 남들의 말에 자주 휘둘렸던 나를 다시 한번 잡아주었고, 스스로 생각하던 가치를 한번 더 다잡아 볼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아 기쁘게 읽었다. 보험을 든다는 마음으로, 훗날 답이 없는 문제에 잘 대처할 수 있도록 읽어두면 유익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