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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아나 Dec 02. 2023

그래서 기술이 뭐냐고요

사업PM에 대한 갑론을박

블라인드에는 종종 [사업 PM의 쓸모]를 주제로 갑론을박이 펼쳐진다. 여론을 보면 '없어도 상관없다' 쪽이 조금 더 우세한 것 같다. 실제 사업 PM인 내 경우에는 필요하다는 사람의 말에도 공감하고, 필요 없다는 말에도 공감하는 편이다. PM(project manager)은 회사의 방침, 조직의 규모, 게임 장르에 따라서 얼마든지 역할이 바뀔 수 있는 직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저마다 놓인 상황이 다르기에 의견이 분분할 수 있다는 뜻인데, 이 말은 곧 기획/아트/개발처럼 독창적인 역할을 한다고 말하기 어려운 직무라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결국 '그래서 사업 PM이 가진 기술이 뭔데?'라는 말에 쉽게 대답하기 어려워진다. PM인 내가 PM이 뭐하는지 똑부러지게 말 못한다는 것에 시작부터 불신을 줄 수 있을 것 같지만, PM은 그런 직무다(네?).


다만 개인적으로 내가 생각하는 PM의 역할 및 태도에 대해서는 말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사견이기에 이 글이 특정 그룹을 대표하지도 않고, 스스로도 답이라 생각하지 않는 점도 사전에 밝히고자 한다. 공감해 준다면 감사하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괜찮다. 



기술은 없다


많은 PM분들의 반발을 살 수 있는 말일수 있겠으나, 내가 느끼기에 PM은 게임을 창작하는데 유일한 역할을 하는 존재는 아니다. BM? 콘텐츠 리스크 검토? 시장 판단? 일정 관리? 부서 협업? 전략 설정? 사업PM이 없다고 손도 댈 수 없는 일이냐고 하면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기준은 '유일한 직무냐'다. 앞서 말했듯 여러 제작 상황에 따라 기획자가, 개발자가, 개발/기술PM이 이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매번 논쟁의 도마에 오르는 게 아닐까 싶다. 다만 기술이 없다는 것이 무쓸모하다는 것을 얘기하는 것은 절대로 아니라는 점도 강조해두고 싶다. PM 역할을 겸하는 경우도 있으니 독창적 기술이 없다고 말했을 뿐이지, 동등하게 중요한 가치를 가진 직무라는 점은 변함이 없으니까. 애초에 기술 측면을 논하기 전에, 너보다 내가 낫다 식으로 직무를 갈라 치는 게 글러먹은 거다. 여하튼 기술만 보고 얘기하자면 특별할 게 없다는 게 나의 의견이다. 



역량 차이는 있다


'사업PM의 OOO이 얼마나 중요한데'라고 생각할 수 있다. 커뮤니케이션, 이슈 대처, 시장 민감도, 분석력 같은 것들을 예시로 들면서 말이다. 이런 것들은 엄밀히 말하면 기술보다는 직무 역량에 가깝다. 그래서 나는 사업PM에 대해 기술은 없지만 역량 차이는 분명히 있는 직무라고 정의하고 싶다. PM의 역량에 따라 기술자들에게 힘이 되기도 짐이 되기도 한다. 


사업 PM는 어떤 일을 하길래 저런 걸 역량으로 가진다고 말하는 걸까? 사업 PM의 업무에 대해서도 사람마다 대답이 천차만별이겠지만, 나는 '기술자들이 기술에 집중할 수 있도록 그레이 존을 최소화해 나가는 일을 한다'라고 여기고 있다. 기획자, 개발자, 디자이너가 본인의 일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도록 구성원들의 창작 행위 사이사이에 경첩을 달아두는 일을 하는 셈이다. 합쳤을 때 딱 예쁘게 연결될 수 있도록 말이다. 즉 PM은 창작이 아닌 주변을 정돈하는 직무다. 그렇기 때문에 앞서 언급된 커뮤니케이션 같은 역량들이 중요한게 아닐까 싶다. 아마 PM에 따라 프로젝트가 쉬워지기도 하고 피로해지기도 하는 것을 우리 모두가 겪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사업은 돈 버는 부서'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내 정의가 하찮게 느껴질 수 있고, '사업이 모든걸 총괄하는데?'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내 정의가 한없이 수동적이라고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과유불급이라고, 7년 간 시행착오를 거치며 느낀 점은 사업 역할이 지나치게 과하면 게임이 길을 잃는다는 것이다. 현재 내가 정의하는 PM의 역할은 '정돈자整頓者'다. 흩어진 것을 모으거나 흐리거나 애매한 것을 바로잡는다. 


(첫 글이다 보니 PM이 수행하는 일감에 대해서도 상황마다 다양한 편인데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이 부분은 추후 다른 글에서 얘기할 기회가 있을 것 같다) 




예민해야 살아남아


내가 믿고 거르는 PM 선배들이 있다. (미리 죄송합니다.) 첫번째는 앞서 말했듯 사업이 최고라며 PM이라는 직무에 스스로 취해있는 사람들이고, 두 번째는 과거 성공 경험을 아직까지도 판단 근거로 우려먹는 사람들이다. 게임을 둘러싼 시장 환경과 유저 인식이 빠르게 바뀌고 있고, 사실 게임 외 모든 것들이 그렇긴 하지만. 시대와 함께 변하지 않으면 그저 과거에 빠져있는 노쇠한 직장인이 될 뿐이다. 나는 그들과 다른 모습이고 싶다. 이전에 아무리 많은 시장 노하우를 가졌다 하더라도, 빠른 변화 앞에서 우리 모두는 신입이다.


앞서 사업PM은 기술은 없지만 정돈자로서 역할이 있다고 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이런 역량도 결국 시간이 지나면 손에 익는 비슷비슷한 일이 되지 않을까 싶다. 사업 PM으로서 갈고닦아야 할 진짜 역량은 그런 일정 관리나 커뮤니케이션이 아니라, 변화하는 시장에 대한 날 선 감각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과거의 성공 경험에 안주하지 않고,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내가 틀릴 수 있다는 마음을 가지고 늘 대안을 찾는 자세를 갖는 것이 더 의미있지 않을까. 기술을 가진 전문가들이 잘 하는 것에 온전히 집중하도록, 나머지 불확실한 요소를 정돈하는 것이 사업 PM의 역할이니까 말이다. 


이렇게 생각한 이유는 최근 게임을 런칭하며 스스로 과거 성공 경험에 대한 자만이 얼마나 독이었는지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PM의 언변, 기술 이해, 업무 관리 같은 게 PM 전문성을 평가할 수 있다 믿은 것이 얼마나 편협했는지도 깨달았기 때문이다. 기술이 없어도, 센스있는 역량이 조금 부족하더라도 시장을 잘 아는 사업 PM이 되는 게 최근 나의 마음가짐이다. 시장의 변화에 귀 기울이는 PM이 살아남을거라 생각한다. 


오늘의 이 글은 블라인드 논쟁에서 누가 맞는지 설득하기 위한 글이 아니다. 사업 PM은 이런 사람이다라고 강조하기 위한 글도 아니다. 그저 시장 변화에 유연하고 예민한 PM이 되어야겠다는 마음이 들어 글을 쓰게 되었다. 이를 위해 나는 좀 더 많은 것들을 보고 체험하고 또 기록하려고 한다. 일부는 게임일 수도 있고, 대부분은 다른 인풋일 수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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