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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옫아 Feb 09. 2022

오드아이로 내 인생에서 살아남기 : 글을 쓸래요, 난.

내가 선택한 나의 상처는 그렇게 조금씩 나와의 공생을 시작했다.

이 이야기는 앞으로 제가 연재할 제 실제 이야기들입니다.

본 글은 오드아이로 살아온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기 위해 쓰여진 글들 중 네 번째 편에 해당합니다.


오드아이로 내 인생에서 살아남기 : 근데 그게 뭐라고? (brunch.co.kr)

오드아이로 내 인생에서 살아남기 : 안녕, 오드아이. (brunch.co.kr)

오드아이로 내 인생에서 살아남기 : 다른 눈으로 (brunch.co.kr)




어렸을 적, 나는 친구들과의 다른 눈 색깔 차이에서 오는 아픔을 독서로 치유했다.

그렇게 저마다의 '오드아이'를 갖고 있는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다.

대표적인 친구들을 이야기하면, 빨강머리 앤 그리고 번개 흉터를 가진 해리포터.

남들과 다른 외형적 차이, 어쩌면 정체성으로까지 연결되는 그러한 오드아이를 안고 살아가는 친구들의 이야기는 내 아픔을 달래 주고, 내가 상처에 매몰되지 않도록 도와주었다.

친구들의 이야기를 찾아 이 책 저 책 읽다 보니, 광주 중앙도서관 1기 홍보대사로 선정된 적도 있었고 흔한 별명 '책벌레'를 내 이름 삼아 책과 더 가까워졌다.


이야기를 읽으며 또 다른 변화가 생겼다.

누군가(비록 작가가 만들어낸 세계 속 인물일지라도, 그러나 그들의 존재는 실존 이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끼친 것으로 미뤄보아 실존으로 봐도 무방할 것)의 진실된 목소리, 그러니까 상처로 아파했지만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닌 각자가 취한 상처로 인한 시작되는 삶을 진솔하게 털어놓는 일련의 과정을 나 역시 걷고 싶어졌다.

그렇다. 어쩌면 어릴 때,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의 기저엔 내가 이야기를 잘 전하고 싶다는, 에세이스트로서의 바람이 존재했을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눈에 쥐고 태어난 해바라기로 누군가의 상처를 예민하게 파악하고 조심스러워하며 가까이 다가서고자 하는 의지, 다독으로 인해 또래 친구들보다 조금 더 나았을 문장력 그리고 내 상처에 이리저리 치이며 풍부해진 표현력. 이 세 존재와 힘은 나를 독서에서 글짓기의 세계로 안내했다.

그러나 보다 그 길을 기꺼이 따라가게 된 것은 초등학교 때부터 나를 눈여겨 봐주시던 문예부 동아리를 맡고 계신 선생님의 친절한 인도로 인해서였다.

선생님의 지도 하에, 꾸준히 글을 쓰고 글에 대한 친구들과 선생님과 감상을 나누는 시간은 즐거웠다.

그러한 경험들이 조금씩 쌓여갔고, 초등학교 4학년 때, 나는 다소 큰 백일장 대회에 참가하게 되었다.


당시 주제가 '분수'였는데, 정말 당황했었다.

그러니까, 분수가 수학시간에 등장하는 그 분수인지, '네 분수나 알라고!'의 그 분수인지 아니면 공원 같은 곳에 있는 분수인지.. 잠시 당황하다 지나가는 관계자에게 물어봤던 기억이 있다.

정답은 '압력으로 좁은 구멍을 통하여 물을 위로 세차게 내뿜거나 뿌리도록 만든 설비. 또는 그 물. 흔히 공원이나 광장 한가운데에 설치한다.'의 분수, 내가 생각한 마지막 분수의 정의가 맞았다. 


분수가 분수지, 무얼 이야기해야 하나.

정해진 시간 내에 산문을 써서 제출하려고 하니 퍽 난감했다.

하지만 소재는 어디까지나 소재일뿐, 이 글짓기의 핵심은 '지금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을 말하는 거란 확신이 들었고. 나는 분수와 계곡의 차이를 서술하며,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쭉쭉 적어내려갔다.


분수는 위에서 아래로, 계곡은 아래에서 위로.

어찌보면 분수는 인공적이고 계곡은 자연적이라는 꽤 대비되는 차이를 갖고 있는데, 나는 오히려 분수가 가진 역동성이야말로 당시 우리가 바라봐야 할 가치가 담겨 있다고 판단했다.

만유인력처럼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자연적인 순환의 이치를 따른 계곡은 충분히 경이롭고 아름답다.

하지만 인공적인 시스템이 반영된다 할지라도, 아래에서 기어코 위로 뿜어내는 그 힘, 좌절로 내려가지 않고 기꺼이 날아오르는 분수가 가진 힘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었다.


솟아오르는 물줄기처럼, 각자의 마음 속에 있는 좌절로부터 하늘로의 도약을 꿈꿔보자..

는 발상이 정말 초등학교 4학년한테 가능하냐는 의문이 분명 있을 수 있다. 나도 지금 생각해도 이해가 잘 되지 않고, 내 상상인가, 싶기도 하니까.

하지만 상처로 오래 아파하는 시간 동안, 이 궁리 저 궁리를 하면서 스스로를 상처에서 빼내려는 노력과 의지로 똘똘 뭉친 11살을 맞이하고 있었기에 충분히 접근 가능한 발상이었다.


속시원하게 쓰는 이야기들은 나 하나만의 만족에서 끝나지 않아서 고마운 마음이다.

태어나 처음으로 타게 된 '장원'.

많이 신났었다. '장원급제'의 장원이겠지? 싶은 두근거리는 마음.

그리고 내가 나를 위로하는 데에서만 그치지 않아서 다행이다, 하는 안도감과 나는 어쩌면 내 상처로 많은 걸 이해하고 보고 나아가게 될 거라는 부풀어 오르는 희망.


그렇게,

내가 선택한 나의 상처는 그렇게 조금씩 나와의 공생을 시작하고 있었다.  




 

"오드아이로 내 인생에서 살아남기 : 글을 쓸래요, 난." 끝.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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