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옫아 Feb 04. 2022

오드아이로 내 인생에서 살아남기 : 근데 그게 뭐라고?

별게 별게 아니게 된 순간 : 무거운 비밀은 가벼운 깃털이 되고.

이 이야기는 앞으로 제가 연재할 제 실제 이야기들입니다.

본 글은 오드아이로 살아온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기 위해 쓰여진 글들 중 세번째 편에 해당합니다.


오드아이로 내 인생에서 살아남기 : 안녕, 오드아이. (brunch.co.kr)

오드아이로 내 인생에서 살아남기 : 다른 눈으로 (brunch.co.kr)




알 수밖에 없는 비밀을 먼저 말한 적이 있나.


그 전에, '알 밖에 없다'와 '비밀'은 상충 가능한 관계인가.

'알 수 밖에 없음'은 필연적으로 알고 있다는 공개성을 의미한다면, '비밀'은 숨기거나 노출이 되면 안 되는 폐쇄성에 가깝기 때문에, 둘의 관계는 마치 '창과 방패'와 같은 모순성을 획득하게 된다.


그러나 모순이야말로 진정한 진리에 부합하듯,

정작 남들은 알고있지만 주체인 '나'는 알리고 싶지 않은 걸 '알 수밖에 없는 비밀'이라 칭해도 될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비밀'에 보다 방점이 찍어져, 더욱 더 알리고 싶지 않은 비밀이라는 뜻이 확고해진다.


나에게 오드아이는 이러한 '알리고 싶지 않은 비밀'에 딱 부합한다.

사람의 눈이야말로 커뮤니케이션의 시작이자, 가장 시선을 이끄는 창이기에 내 오드아이는 쉽게 노출될 수 있는 나의 비밀이었다.

그렇게 오드아이는 나를 본다면 누구라도 알 수 있는 신체적 특징이자, 그걸 잘 알고 있음에도 숨기고 싶은 비밀과 같은 존재다.

* 코로나 19 사태가 심화되며, 만으로 2년 정도 되는 시간 동안 일상생활과 마스크는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가 되었고, 마스크로 인해 '마기꾼'이라는 용어가 등장할 정도로 마스크 윗부분, 그러니까 얼굴의 상위 부분에 대한 노출과 집중은 높아졌다. 이에 대한 피해자는 바로 나라고 생각한다. 오드아이가 더 노출되기 쉬운 환경이 되었고, 내가 종종 방문했던 스타벅스의 파트너를 다른 지점에서 마주했을 때, 그가 나를 알아볼 수 있는 것도 이 오드아이가 한 몫했다고 생각한다. 음, 이건 지나친 과대해석 혹은 옳지 못한 인과관계에 불과할까?


하지만 이는 또 매력적인 도구로 쓰이기도 한다.

비밀을 공유하며 관계가 한층 더 깊어지듯, 나도 이 '오드아이'라는 무기를 그렇게 애용하곤 했다.

이 사람과의 관계를 더 좁히고 싶을 때, 당신과 나 사이의 관계가 소위 말하는 '비빌 수 있는 언덕'이라는 작은 확신이 들 때, 나는 그에게 내 비밀을 말했다.

그리고 이를 처음 이용한 순간, 아마도 초등학교 2학년이었을 때.


당시 정확한 시간은 기억이 안 나지만, 초등학교에서 홀로 화장실에 가기 싫었었다.

* 이를 미루어 보아 흔한 쉬는시간이 아닌 방과 후 오후 정도가 아니었을까 추측해 본다.

학급 친구들 가운데 가장 착하고 순했던(?) 친구가 때마침 함께 있었는데, 같이 화장실에 가자고 부탁했고 친구는 이에 응해주었다.

외롭지 않게 화장실에 도착하고, 내가 볼일을 보는 동안 친구가 화장실 세면대 쪽에서 있어주었다.

고마운 마음에 뭐라도 표현하고 싶은데 마땅히 해야 할 표현이 잘 떠오르지 않았다.

그때 갑자기 내 비밀을 공유하며 이 친구에게 고마움을 표현하고 보다 가까워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마침 늘 등교 시에 끼던 렌즈를 끼지 않아서였을까. 오드아이가 노출될 수 있는 상황이라서.


손을 닦으며 옆에 있던 친구에게,

"나 사실 오드아이다? 오드아이는 양쪽 눈 색깔이 다른 걸 의미해. 내 눈 한 번 볼래?"

라고 이야기했고 내가 예상한 친구의 반응은 "헉" 혹은 "대박" 등이었지만..

친구는 눈을 보더니, "어, 그러네. 근데 그게 뭐?"라고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예상하지 못한 반응에 놀란 나는 다시 내 눈을 보라면서, 격한 리액션을 요구했지만 돌아오는 반응 역시 그게 뭐 어때서, 식이었다.


오, 굉장히 놀라웠다.

그러니까 놀람을 느껴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내 친구인데 상황이 역전이 된 것 같았다.

친구는 여전히 큰 감정적 동요 없이 화장실에서 교실로 함께 나와 함께 걸어갔고, 정작 큰 동요를 느끼는 건 나 하나였다.

머리 속에 많은 의문들이 들었다.


왜 나를 보고 놀라지 않지?

쟤 주변에 또 다른 오드아이가 있는 건 아닐까?

대체 왜 이 '엄청난' 비밀을 알고도 깜짝 놀라지 않을까?


친구를 따라 교실로 돌아오는 동안, 처음으로 마주한 감정이 놀라움이었다면 안도감으로, 그리고 나중엔 순수한 실소가 나오는 웃김으로 바뀌었다.

내가 느끼기에 엄청난 비밀이 정작 누군가에게는 별 볼일 없는 작은 거라는 거, 그러니까 별게 별게 아닌 셈이 되는 거지.


그리고 나는 내 인생 9년만에 오드아이에 대해 새롭게 평가했다, 바로 이렇게.

아, 뭐야, 오드아이. 뭐 별 거 아니었네, 나 참!


한동안은 가벼운 마음으로 지낼 수 있었던 것 같다, 그 친구 덕분에.

나에게는 엄청난 무게의 비밀이 다른 이들에게는 나만큼의 막중한 무게를 가지지 않았으며, 누구에게라도 오픈 시 별 큰 이슈가 아님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반대로 누군가가 내게 "헉, 오드아이잖아?"라고 반응했을 때, 친구가 내게 했던 말을 마치 주문처럼 반복하면 될 거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근데 그게 !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그 날의 기억은 이토록 생생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고마운 마음이 크다.

또 한편으로 그 아이는 어떻게 자랐을지, 그때처럼 지금도 누군가의 차이 혹은 다름에 대해 꽤 관대하거나 무심한(그래서 더욱 반가운) 표정과 태도로 일관하고 있을지 꽤 궁금하다.

그 덕분에 나도 지금까지도 누군가의 상처가 될 수 있는 다른 지점을 보았을 때, 꽤 자연스럽게 그게 뭐!하며 편안히 지나칠 수 있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좋은 걸 알려줘서 고맙다고도 전하고 싶고.


괜히 눈 색이 예쁘다는 칭찬 대신 남들과 다를 것 없이 나를 봐주었던 그 시선은 그 친구뿐만이 아니었다.

눈 색 하나로 나를 규정짓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봐준 사람들, 그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도 곧 이 브런치를 통해 하나씩 그려나가고 싶다, 깊은 감사를 담아서 꾹꾹 눌러쓴 내 마음을 전하며.





"오드아이로 내 인생에서 살아남기 : 근데 그게 뭐라고?" 끝. 다음 편에서 계속.



이전 02화 오드아이로 내 인생에서 살아남기 : 다른 눈으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