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 속에서 상처로 가득했던 10대 시절
이 이야기는 앞으로 제가 연재할 제 실제 이야기들입니다.
오드아이로 살아온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기 위해 쓰여진 글들의 첫 번째 시작입니다.
**매거진으로 옮깁니다
외국인은 0.06%의 확률로 오드아이가 나타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희귀하게 나타난다.
'안녕하세요' 오드아이 6살 소녀 사연, '오드아이'로 태어날 확률은? '외국에선 0.06%' - 이투데이 (etoday.co.kr)
언제부터였을까.
내가 나를 오드아이로 정확하게 인식했던 시작이.
나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려면, 바로 이 이야기부터 해야하니까.
제일 처음으로 돌아간다면, 유치원에 다녔던 어린 시절이었던 것 같다.
한 아이가 작은 유리구슬 하나를 가르키며, "저거 00이 눈 같아"라고 들었던 순간이 첫 번째 기억이다.
유리구슬 정도면, 감사하지. 그때 가장 싫어했던 비유법은 고양이였다.
무서운 고양이 눈의 색을 닮았다니, 나는 공주님이 되고 싶었는데 백설공주에 나오는 무서운 마녀 정도 된 느낌이랄까.
* 지금 생각해 보면, 고양님 죄송해요. 고양이 사랑해요. 길냥이 최고.
별다른 유전적인 문제나 특별한 이상 없이,
세상에 태어난 순간부터 나는 양쪽 눈 색깔이 다른 오드아이였다.
안경을 쓰기 전, 그리고 라섹한 지금도 양쪽 시력은 크게 다르지 않다.
오른쪽은 남들과 별다를 바 없는 평범한 검은색이지만, 왼쪽은 연두색과 노란색이 섞여 있는 오묘한 색.
* 나중에서야 자세히 들여다 보니, 꽤 들판에 피어 있는 해바라기랑 비슷하다고 느꼈지만. 그걸 깨닫기에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한 20년 정도? 그 전까지는 거울로 내 눈을 자세히 들여다 보는 것조차 싫어했기 때문에 내 눈 색이 정확히 어떤 색깔을 품고 있는지 인지하기는 것도, 마주보는 것도 꽤 어려운 일이었다. 최근에 알게 된 내 눈 색은 안젤리나 졸리 배우 눈 색과 가장 동일하다.
남들과 다르다는 건 곧 틀리다는 말과 동일하다.
작은 다름은 흔한 놀림거리이자, 누군가와 구분짓는 중요한 선이 되어버렸다.
친구들이 큰 악의를 가지고 한 말이 아니었음에도 작은 말 하나하나에 기꺼이 상처를 받았던 지난 시간 속을 꽤 위태롭게 걸어왔었다.
초등학교 입학식 때 처음 꼈던 검은색 렌즈가 생각난다. 남들과 다른 색을 같은 색으로 꾹 눌러 덮어 버리면, 그거 하나면 별 문제가 없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렌즈를 낀 답답함 밑에 숨겨진 갈 길 잃은 속상함들은 쌓여갔다.
왜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면 안 되는지, 만일 드러낸다면 왜 상처를 받아야 하는지.
엄마도 힘든 시간을 나와 함께 걸어왔지만, 결코 '진짜' 함께는 아니었다.
엄마가 더 많은 무게를 짊어져야 했으니까.
새학기 때마다 있는 학부모 면담 시, 매해 같은 말을 반복하며 담임선생님께 특별한 부탁을 해야했고,
상처에 예민한, 그래서 잘 무너지곤 했던 나를 다독여야 했으니까.
나는 내가 받은 조그만 상처를 엄마 앞에선 크게 부풀곤 했고, 그렇게 끝끝내 왜 나를 이렇게 낳았냐고 울며 소리치던 밤들이 있었다.
나는 이제 퍽 괜찮은데, 엄마도 괜찮을까.
괜찮아진 나를 보고 엄마가 당시 받았던 상처의 일부라도 치유가 되었을까.
많은 것들을 원망도 해보고, 평범한 두 눈을 갖고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살아나가는 만인을 부러워했다.
나한테만 왜 이런 시련이 따르는 건지, 그 진실을 알고자 여기저기 많이 헤매고 다녔던 것 같다.
혹시 나 해리포터의 번개 문신 같은 흉터를 갖고 있는 건 아닌지.
그래서 나는 '책벌레'라는 흔한 별명을 업고서, 도서관에서 많은 책들을 빌려 읽으며 수많은 주인공들의 발자취를 따라갔다.
그렇게 나의 궁금증을 풀고자 했다. 왜 우리는 다르게 태어났는지.
초등학생과 중학생 시절은 꽤 혼란스럽고 소란한 시기였다.
오드아이로부터 시작된 마음의 상처로 제일 많이 힘들어했던 시간들이었으니.
상처를 제대로 들여다 보지 않은채, 조금의 차이로 세상으로부터 배척당하는 외로움을 느끼곤 했다.
고등학생 시절은 입시 버프로 많은 친구들은 내 오드아이 색에 관심이 없었고 그때쯤이면 안경테로 얼추 눈 색을 가리는 스킬도 생겨나던 시절이었다.
타인이 나에 대해 어떠한 질문도 물어오지 않으니 꽤 평안한 시기였다.
몇 몇의 질문에 대해선 "어, 그래 나 원래 태어날 때부터 눈 색이 달랐어. 어디 아픈 거 아니고, 백내장도 아니고, 부모님이 외국인도 아니고, 조상님들도 다 한국인이야. 그냥 색소 부족으로 그런 것 같네. 정확한 이유는 아무도 모를걸."이라고 미리 외워둔 대사만 자연스럽게 낭독하면 되었으니.
그러던 고등학교 1학년 때였나.
문학 선생님의 추천으로 한 백일장 대회에 나가게 되었다.
* 앞서 상처로 인한 질문을 해결해 나가고자 책을 많이 읽었다고 언급했는데, 이는 글을 쓰는 걸 좋아하고 잘하는 애로 이끌었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앞으로 더 풀어갈 예정이다. 오드아이로 인한 상처가 준 삶의 선물 같은 거라 생각한다.
마감이 당장 오늘인데, 무슨 산문을 써도 마음에 쏙 들지 않았다.
장르는 소설이었고 나도 진짜 멋들어진 청춘 소설 하나 써보고 싶은데 커서만 깜빡깜빡.
그러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나는 나를 제 3자로 만들고 조금의 픽션을 가미해 17살 동안 겪었던 내 상처를 한 번 시원하게 세상에 알려보고 싶었다.
마, 이게 진짜 소설이다. 라고 외치며 내 현실을 고발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
앉은 자리에서 그렇게 쭉 써내려간 나의 첫 번째 소설이자 자전적 소설은 무사히 제출되었고.
무언가 해소가 된 느낌을 강렬히 받았던 기억이 난다.
쓰면서 꽤 엉엉 울기도 했고.
그 소설은 어떻게 되었나.
나를 어느 길로 이끌었는가.
"오드아이로 내 인생에서 살아남기 : 안녕, 오드아이" 끝.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