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떤 모습이라도 그 너머의 나를 바라봐 줄 수 있는 사람
이 이야기는 앞으로 제가 연재할 제 실제 이야기들입니다.
본 글은 오드아이로 살아온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기 위해 쓰여진 글들 중 다섯 번째 편에 해당합니다.
오드아이로 내 인생에서 살아남기 : 글을 쓸래요, 난. (brunch.co.kr)
오드아이로 내 인생에서 살아남기 : 근데 그게 뭐라고? (brunch.co.kr)
오드아이로 내 인생에서 살아남기 : 안녕, 오드아이. (brunch.co.kr)
오드아이로 내 인생에서 살아남기 : 다른 눈으로 (brunch.co.kr)
"나를 알아주는 사람"
하트시그널 시즌2 : E08 나를 알아주는 사람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꽤 많은 사랑을 받았던 연애 관련 예능 프로그램 <하트시그널 시즌2(채널A, 2018)>에서 한 여성 출연자가 이야기한 말이다.
세상에 잘나고 예쁜 사람들이 참 많고, 내가 노력을 하지 않아도 나를 알아주는 사람, 그 단 한 사람만 있어도 참 행복할 것 같다는 게 주요 메시지였다.
정말 그럴 것 같다.
굳이 이성이나 애인 관계가 아니더라도,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이 가진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이 세상에 단 한 사람만 있어도 행복할 것 같다. 그리고 그 사람이 꼭 타인이 아니라 '나'여도 괜찮을 것 같고.
사람은 사회적 동물으로, 태어난 그 순간부터 수많은 관계를 형성하고 다양한 이들을 마주하며 경험한다.
그 관계 속에서 나는 다들 나의 오드아이를 어떻게 바라보고 평가할지 늘 가슴이 졸였다.
앞선 글에서도 이야기한 바와 같이 차츰 다들 자기 먹고 살기 바쁘지, 내 작은 눈에는 큰 관심이 없다는 걸 알았을 때 반갑기도 했지만 생각보다 별게 아니라는 작은 허망감도 있었다.
별게 아닌 거로 꽤 어렸을 때부터 나름 오랫동안 아파했다는 게 조금 억울해서.
그와 동시에 나는 동족을 찾고 싶었다.
어느 날, 길을 걷다가 맞은 편에서 오는 사람이 내 눈 색의 위치와 반대일 거고, 그 사람이야말로 내가 오랫동안 찾았던 운명이 될 거라 꽤! 확신했었다.
그러니까 지금 내 눈의 오른쪽 색상은 평범하고, 왼쪽은 유니크(해바라기 색깔)하니 나와 반대로 그 사람의 오른쪽 눈은 남들과는 다른 색일 거라고, 나머지 왼쪽은 평범할 거라고.
그러면 우리 서로 마주보았을 때 데칼코마니처럼 눈 색이 같을 거라고. 마치 거울 속 나를 찾은 느낌으로 반갑고 기쁠 거라고. 왜 이제야 내 앞에 나타났냐며,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지만, 그럼에도 진심으로 보고 싶었다고 이야기할 거라고.
(*그럴 땐 거울을 보자)
정말이지, 꽤 즐거운 상상이었다.
친구들 표현에 의하면 처음 만났을 때는 눈을 어디에 둘지 몰라하고 요리조리 피하던 내가 어느 순간부터 정면을 마주하고 다른 사람들의 눈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내 운명을 찾고자!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오드아이는 메스컴에 노출되었던 어린 친구와 나 우리 둘뿐인 걸까.
가끔 렌즈색을 통해 고의적으로 오드아이를 만드는-나에겐 다소 이해가 잘 가지 않았던-사람들 외에는 보이지 않았다.
아, 그렇다면 해외로 나가야 하나, 거기는 오드아이로 태어날 확률이 꽤 높다던데, 하고 진지하게 생각한 적도 있다.
뮤지컬이나 디즈니와 같은 다소 사랑에 대한 환상으로 가득한 콘텐츠에 빠져 있던 나는 누군가와 자연스럽게 만나고 사랑이 싹트고 연인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꽤 어려웠다.
친구에서 연인이 되었던 적은 몇 번 있었지만, 아무래도 이성으로 느껴지기엔 한계가 있었다.
주변에서 종종 해주던 소개팅을 나갈 때마다 "정말 이 사람이다!" 싶은 적도 없었고, 처음 만나자마자
"아, 좀 놀라셨죠? 제가 사실 오드아이이고요.."라고 이야기할 용기도 나지 않았다.
소개팅 나갈 때마다 거의 도망치듯 뛰쳐나오는 내게 한 회사 선배는 소개팅에 나가서 2시간 이상 대화가 가능하다면 일단 만나보라는 충고를 해주었다. 그런 사람 만나는 건 정말 쉽지 않았는데...
친구들이랑 노는 데에 빠져 있던 어느 날, 회사 후배이자 대학 선배가 소개팅 자리를 주선해 주었다.
내가 말하는 이상형인, 1) 안경 쓰고 2) 똑똑하고 3) 착한 사람의 전형이라고 했다.
우선 장거리라는 점에서 조금 귀찮았지만, 어찌저찌 만나게 되었다.
* 여기서 논하기에는 꽤 길지만 재밌는 에피소드들이 많았는데, 우선은 생략하고.
소개팅 당일, 안경을 쓴다더니 안경을 쓰지 않았고, 진하게 생긴 사람이 나타났다.
하지만 그와의 첫 만남은 정말 즐거웠다. 대화도 잘 통했고, 좋아하는 시를 이야기하던 중 "사람의 눈빛이 제철"이라는 표현을 애정한다고 하니 바로 꽃받침(!)을 하며 나를 보았다.
그 시를 몸으로 인용하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우선은 내 눈을 본다는 점에서 흠칫했던 것 같다.
내 신비한 오드아이에 대해 그는 별다른 표현 없이, 언급 없이 첫 번째 만남이 끝났다.
그리고 선배가 말한 그 2시간 이상의 대화가 즐거우면 된다는 공식이 통했고!
알고 보니, 그는 굉장히 시력이 나빴고, 소개팅이었기 때문에 잘 착용하지 않는 렌즈를 끼고 왔다.
*무려 첫 소개팅이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눈에 뵈는 거 없이' 소개팅을 즐기셨던 게 아닌가, 생각해 본다.. 암흑 속 대화랄까.
하긴 당시에는 눈 색 말고 , 눈에 대한 지점이 하나 더 걸리는 게 있긴 했다. 그건 바로, 쌍수.
쌍꺼풀 수술을 한 지(물론 찝었기에 부기는 심하지 않았다.. 아마도) 1달 조금 넘었던 시점이라 눈에 부기가 좀 있었던 상태였다. 나는 당연히 티가 나지 않을 거라는 오만이 있었고, 그는 보자마자 아 눈 수술을 했구나!하고 바로 알았다고 후에 이실직고했다.
그 뒤에 그가 안경을 쓰고 몇 번 만나도 눈 색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다.
혹시 색 구분을 못하시는 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잠깐 하기도 했다.
그런 그를 만나면서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뭔지 생각을 해보았다.
눈 색이 정말 예쁘다며 감탄해 주길 바라는가? 아니오.
눈 색이 조금 독특하지만 그래도 예쁘다라고 말하길 바라는가? 아니오.
눈 색으로 얼마나 아팠냐며 그 상처를 다독여 주길 바라는가? 오, 전혀 아니오.
내가 그에게 얻고자 하는, 원하는 반응이 뭔지도 모르는 채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가끔 같이 셀카를 찍을 때 빛이 잘 들어와서 내 눈 색이 그 어느 때보다 선명할 때
"내 눈 색 좀 봐? 잘 나왔지?"라고 해도 "응 그러네"라고 말하는 남자친구.
내가 먼저 오드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으면, 먼저 꺼내지 않는 남자친구의 어떠한 배려인지 무슨 의도인지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나는 그와 있을 때 오드아이라는 사실을 매우 망각하곤 한다.
오드아이에 대해서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 것.
가끔 내가 그걸로 오래 아파했다는 이야기를 꺼내서 상처를 주지 않으려는 배려로 생각했는데, 최근에는 생각이 좀 바뀌었다.
애인은 눈 색이 아닌 '나'를 바라봐주고 있었다.
대화를 하거나 마주보며 카페나 식당에 있을 때, 남자친구와 마주 보고 있을 때 분명 그 시선은 내 눈을 향해 있지만 어쩌면 눈 너머의 나를 봐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지 독특한 눈 색으로 나를 규정짓거나 그것을 내 중요한 특징으로 보는 것이 아닌, 그저 나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 그리하여 그 어떠한 수식어도 붙어 있지 않은 '나'를 알아준다는 믿음.
그 이야기를 남자친구 입으로 들은 적은 한 번도 없지만, 만으로 약 4년의 시간을 만나는 동안 이미 그 마음을 잘 전달 받은 것 같다고 생각한다.
예쁘다고 표현해 주는 것도, 이상하다고 표현해 주는 것도 결국 가치 판단의 문제이기 때문에 나하고는 전혀 상관 없는 이야기다. 내 눈 색이 누군가에게는 충분히 이질적일 수 있고, 아름다울 수도 있다.
다만, 나는 내 눈이 어떠한 판단의 '대상'이 되는 게 싫을 뿐이다.
그러니까 나는 내 눈은 내 눈이고, 나는 나이길 오랜 시간 동안 바라온 게 아닐까.
그리고 그 바람을 그가 읽어준 것이다.
'나'를 알아주는 사람.
내가 어떤 모습을 갖고 있더라도 그 너머의 나를 바라봐 줄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옆에 있음에 감사하고, 같은 감정을 공유할 수 있음이 신기한 일이라고 생각되는 수밖에.
어린 시절의 나에게 찾아가, 너와 닮은 동족을 만나고 싶었던 이유를 묻고 싶다.
네가 너 혼자라서 꽤 외로웠냐고. 같은 존재를 한 명 더 만났더라면 그 시간들이 위로가 될 수 있겠냐고.
물론,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지만.
모든 사람은 저마다 다른 지점이 있고,
그 다른 지점이 완벽히 같지 않아도 되니 다름 너머의 있는 너 자신을 그대로 봐줄 수 있는 사람만 있다면.
그러니까 진정 너를 알아주는 사람이면 되지 않을까?라 전하고 싶다.
그래서 나는 오랜 불안감을 이제 조금씩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다.
혹여 아이를 낳게 되었을 때 그 아이 눈 색이 나처럼 타인과 다른 색이면, 그 아이도 내가 엄마를 원망했던 것만큼, 아니면 그 이상으로 날 원망할까, 는 두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말해줄 수 있을 것 같다.
아팠던 시간이 지나고 삶의 어느 지점에서 만나게 될,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 모든 시간을 다 이겨낸, 따뜻한 안도감과 다시 없을 편안한 행복을 만날 수 있으리라고.
그리고 그 전에, 내가 너를 알아주겠다고.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