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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옫아 Mar 06. 2022

오드아이로 내 인생에서 살아남기 : 같음과 다름의 사이

같고 싶어하지만 다른,  다르고 싶어하지만 같은 나와 당신.

이 이야기는 앞으로 제가 연재할 제 실제 이야기들입니다.

본 글은 오드아이로 살아온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기 위해 쓰여진 글들 중 여섯 번째 편에 해당합니다.


오드아이로 내 인생에서 살아남기 : 나를 알아주는 사람 (brunch.co.kr)

오드아이로 내 인생에서 살아남기 : 글을 쓸래요, 난. (brunch.co.kr)

오드아이로 내 인생에서 살아남기 : 근데 그게 뭐라고? (brunch.co.kr)

오드아이로 내 인생에서 살아남기 : 안녕, 오드아이. (brunch.co.kr)

오드아이로 내 인생에서 살아남기 : 다른 눈으로 (brunch.co.kr)





흑과 백처럼 명확한 이항대립의 가치들 속에서 우리는 살아간다.

그리고 그 중 몇 가지는 자신의 삶 속에서 굉장히 중요한 화두가 되고,

'나'라는 존재를 그 둘 중 어디에 넣어야 할지, 어디에 속해 있는지 고찰의 대상이 된다.

대개 성공과 실패, 자유와 구속 등이 해당 키워드일 것 같다.

나에 그 키워드는 '같음과 다름'이다.

나는 평생을 같음과 다름의 사이를 배회하고 있다.


어렸을 때의 이야기를 통해 친구들의 눈처럼 나도 두 눈 색이 '같았으면' 하는 소망을 고백한 바 있다.

같음을 통해 평범으로 향하는 것.

누군가는 다른 이들과의 '다름'을 통해 '특별함'을 갈구했다면, 나는 딱 그 반대의 케이스였다.

제발 다르지 말 것. 제발 같아줄 것.

그래서 더도 말고 '같음'으로 평범으로 포장되는 '정상 그룹'에 속하고 싶었다.

지금의 내 모습은 '비정상 개인'에 불과하다고 생각했고, 그 어린 시절부터 개인과 집단이 각각 각 갖는 의미인 소외와 결속을 느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안데르센의 <미운 오리 새끼>를 보며 감정 이입을 많이 했는데, 미운 오리 새끼가 결국 '백조'가 되었을 땐 두 개의 감정이 교차했다.

첫째, 결국 오리가 되지 못했다는 절망감. 그러니 그렇게 미움이 받는 게 당연하다는 좌절감.

두번째, 백조 무리에 합류했을 때 안정감. 나에게도 언젠간 나와 '같이 다른' 축에 속하는 이들의 집단 속에서 안도감을 느낄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런 어렸을 때의 시절을 지나 살아가면서 느낀 건,

다들 저마다 어떠한 이유로든 조금씩 남들과 달랐다는 거.

그런 개별적인 다름이 상처나 괴롭힘 혹은 혐오의 대상이 될 순 있지만 때론 연대의 씨앗으로 작용해 조금씩 세상을 변화시키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그 다름으로 특별한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다름은 더 이상 장애물이 아니라는 거를 -다름으로 핍박 받은 이들이 목소리를 내고 더 나은 내일을 만들어 가게 했기에- 고맙게도, 알아 가고 있었다.

어쩌면 정말 2cm도 안 되는 눈 속 작은 다름은 다름의 축에도 못 끼는 게 아닌가 생각하기도.


그렇게,

어느 날은 남들과 같은 눈이 되었으면 싶기도.

어느 날은 남들과 다른 내가 퍽 괜찮게 느껴지기도.

그런 양가적인 감정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 왔다.

이정도면 꽤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어느 감정에 침몰하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양면성을 느끼게 것만으로도 발전한 거니까.


그럼에도 종종 무너지는 순간들은 분명 있어 왔다.

친구들의 사소한 말에 상처를 받은 날은 5살 어린 남동생의 어깨를 잡고 내 눈 색이 뭐냐고, 과연 둘이 정말 다르냐고, 협박식으로 물어봤고. 결국 '어 누나 눈 색 안 다르다. 두 눈 색 굉장히 같다.'는 정해진 답을 받아 내기도 했다.

강아지는 색을 구분할 수 없다는 속설로, 우리집 강아지에게 내 눈을 맞추며, '세상 사람들도 너와 같이 나를 바라봐 주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내가 다른지 아무도 모를 테니까.'라고 하염없이 신세 한탄을 하기도 했다.


그래도,

이렇게 상처에 솔직한 시간들이 분명 있었기에 나는 더이상 눈을 큰 상처로 인식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생각이 든다.


우리 모두는 타인들과 굉장히 같고 싶어 하지만 결국은 조금씩의 이유로 다른,

다르다고 생각했고 다르다 믿고 싶어 하지만 어쩌면 같음을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거.


개개인은 개개인마다의 사연과 이유로 각기의 개별성을 확보하는 다름을 갖고 있다.

다름으로 아파하고 고찰하는 시간마저 어쩌면 결국 같음으로 묶어질 수 있는 게 아닐까.

그러니까, 우리는 저마다 조금씩 다른 지점들을 품고 있고, 이를 통해 결국 삶의 통과의례와 같은, 모두 다 으레 겪는 '같은' 과정을 통과하는 중이라고, 삶은 저마다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당연한 거라고.

그리고 나는 그게 나의 눈이었을 뿐이었다고, 그런 위안을 나에게 보낸다.


저머다의 미운 오리 새끼들에게.

어느 지점에서 나를 닮은 이들의 무리 속에 합류할 거라고 믿는 이들에게.

우리는 저마다 외로운 자기만의 다름이 있고 그걸 꼭 닮아 있는 무리를 만날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무리 정도는 안 만나도 괜찮다. 모두가 저마다의 미운 오리 새끼'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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