잼처럼 기다리는 재미

어딘가에 이미 놓여 있었던 것들, 그리하여 하루의 결을 아주 조금 바꾸는

by 옫아

'재밌다'와 '잼 있다'는 같은 쪽에서 태어난 말 같지만
생활 속에서는 서로 다른 자리에 놓여 있다.

재밌다는 대개 말해진 뒤에 남고,
잼있다는 조용히 어딘가에 있는 편.


왜일까, 잼은 늘 찾으려고 할 때보다 잊고 있을 때 더 잘 발견된다.


냉장고 문을 오래 열어 둔 날, 다 먹은 줄 알았던 병 하나가 뒤쪽에서 슬며시 모습을 드러낸다.

유통기한이 임박해 있거나, 아주 조금 지나 있더라도 괜찮을 것 같은 얼굴로.


딸기잼, 블루베리잼, 살구잼, 오렌지 마멀레이드 등등

병마다 색이 다르고 뚜껑을 여는 소리도 조금씩 다르다.


어떤 건 단번에 달고, 어떤 건 한 박자 늦게 단다.

처음엔 잘 모르겠는데 먹고 나서야 더 먹고 싶어지는, 여운이 남도록 혀끝에서 생각나는 맛도 있다.


재미도 꼭 그렇다.

한 번에 웃게 만드는 게 있는가 하면,

나중에야

아, 그때가 좋았지 하고 떠오르는 것도 있다.


그래서 나는

모든 재미를 그때그때 붙잡으려 하지 않는다.

어딘가에 조용히 놓여 있을 거라고,

잼처럼 병 속에 들어가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믿는 편이다.


다양한 맛의 잼이 있듯 다양한 재미도 생활의 어딘가에 이미 놓여 있을 지도,

냉장고 안쪽처럼,

조금 뒤로 밀려난 자리에서.


사실 잼은 주식(主食)이 아니다. 없어도 하루는 잘만 살아진다.

밥처럼 꼭 필요하지 않고, 물처럼 급하지도 않다.


그래서 늘 뒤로 밀린다.

눈에 잘 띄지 않는 자리에 가만히 놓인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잼이 있는 아침과 없는 아침은 다르다.


조금 더 천천히 먹게 되고,

괜히 한 입을 더 남기게 되고,

식탁에 앉아 있는 시간이

아주 약간 길어진다.


재미도 그런 것 같다.

없어도 살 수 있지만,

있으면 하루의 결이 달라지는 것.


그래서 우리는 재미를 목표로 삼기보다는 일단 살아가고,

살다 보면 어느 날 문득 잼처럼 발견한다.


열심히 찾지 않았는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는데,

이미 거기 있었던 것처럼.


어쩌면 재미란 삶의 중심이 아니라 삶의 가장자리에서 작고 크게 움직이는 것.


당장 나를 끌어당기진 않지만,

나중에 돌아보게 만드는 힘.


잼이 그렇듯,

재미도

항상 달콤하지는 않고

항상 신선하지도 않다.


그럼에도 버리지 못하고 다시 열어 보게 되는 이유는

그 안에 한 번쯤은 분명 나를 기다렸던 순간이 들어 있기 때문일 것.


그래서 나는 요즘

재미를 애써 만들기보다 아, 어딘가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믿는 쪽을 택한다.


냉장고 안쪽,

조금 밀린 자리,

뚜껑이 단단히 닫힌 병 속에서

재미는 오늘도

아무 말 없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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