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을 선택한 사람들의 얼굴 : 환승연애4

판단 대신 서사를 선택하는 시선

by 옫아

요즘은 얼굴 하나만으로도 서사가 만들어진다. 잘생긴 얼굴, 혹은 유독 시선이 오래 머무는 어떤 얼굴을 보면 이렇게 말한다, 얼굴이 서사다!


그렇게 아무것도 모르면서도, 그 사람이 어떤 사랑을 했을지, 어디에서 상처를 받았을지, 왜 그런 표정을 갖게 되었는지를 각자 자기 방식으로 상상한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설명보다 이야기를 먼저 떠올리는 사람들이다.
결론보다 과정을 궁금해하고, 선택보다 그 선택에 이르기까지의 시간을 알고 싶어 한다.


누군가를 이해할 때조차 사실은 판단이 아니라 서사를 먼저 불러내는 건 아닐까?


그래서 오래 남았던 문장이 있다. 신형철 교수의 저서 <정확한 사랑의 실험>에 나오는 이야기다.
어떤 조건에서 80명이 오른쪽을 선택했을 때, 문학은 왼쪽을 선택한 20명의 내면으로 들어가려 한다는 말.
그 20명에게서 하나의 공통된 이유를 찾으려는 게 아니라, 모두 제각각의 이유로 왼쪽을 선택했음을 20개의 서로 다른 이야기로 보여주려는 시도, 그것이 문학이라는 정의.



어떤 조건 하에서 80명이 오른쪽을 선택할 때,

문학은 왼쪽을 선택한 20명의 내면으로 들어가려 할 것이다.

그 20명에게서 어떤 경향성을 찾아내려고? 아니다.

20명이 모두 제각각의 이유로 왼쪽을 선택했음을 20개의 이야기로 보여주기 위해서다.

어떤 사람도 정확히 동일한 상황에 처할 수 없을 그런 상황을 창조하고,

오로지 그 상황 속에서만 가능할 수 있고 이해될 수 있는 선택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려는 시도,

이것이 문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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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장을 떠올리며 나는 요즘 화제의 연애 프로그램 <환승연애4>를 보고 있다. 워킹맘인 내게 일주일을 살아가게 하는 쉼표랄까, 아무튼 이 프로그램을 보며 우리는 끊임없이 선택을 평가한다.

왜 저기서 저런 말을 하는지, 왜 굳이 그 사람을 다시 바라보는지, 왜 이제 와서 흔들리는지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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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만약 이 장면들을 ‘맞고 틀림’의 문제로만 본다면 환승연애는 꽤 답답한 프로그램일지도 모른다.
이별했으면 정리해야 하고, 새로운 만남이 생기면 앞으로 가야 하며,
감정은 명확해야 한다는 기준 앞에서 출연자들의 태도는 늘 미완처럼 보이니까.


그런데 문학의 시선으로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별했지만 아직 끝나지 않은 마음,
새로운 사람 앞에서조차
과거의 기억이 먼저 반응해버리는 순간,
이성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지만
그 사람의 시간 안에서는 충분히 가능한 선택들.


환승연애의 출연자들은
대부분 ‘오른쪽’이 아니라 ‘왼쪽’을 선택하는 사람들처럼 보인다.

합리적이지 않은 쪽, 깔끔하지 않은 쪽, 그리하여 감히 설명하기 어려운 쪽.


그리고 그 선택은 하나의 이유로 요약되지 않는다.
누군가는 미련 때문에, 누군가는 죄책감 때문에,누군가는 아직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확인하지 못해서
같은 방향으로 걸어간다.


문학이 그러하듯, 그들의 선택은 통계로 정리되지 않고

각자의 시간과 기억과 관계의 밀도로 설명될 뿐이다.


그래서 나는 이 프로그램을 보며 “왜 저래?”라고 말하기 전에 잠시 멈추고 싶어진다, 사실 어렵지만..

내가 다 알 수 없는 마음의 역사가 저 행동 뒤에 있겠거니, 하고.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함부로 판단하지는 않겠다는 태도.

설명할 수 없다고 해서 의미가 없는 건 아니라고 믿는 쪽으로 시선을 옮겨보는 일.


어쩌면 우리가 연애 프로그램에 이렇게 열광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는 것인지 모른다.

정답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각자 다른 이유로 같은 선택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지켜보고 싶어서.


그래서 나는 환승연애 속 삶들을 리뷰가 아니라 독서처럼 받아들이고 싶다.
납득되지 않는 장면 앞에서도 이건 아직 읽히지 않은 문장일 뿐이라고,
조금 더 시간을 두고 넘겨보자고 스스로에게 말하면서.


문학처럼.

정확한 판단 대신,
정확하지 않은 이해를 선택하는 방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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