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더 라스트 키스>의 '알 수 없는 그곳으로'
뮤지컬 <더 라스트 키스>의 선율이 흐르고 '알 수 없는 그곳으로'의 첫 소절이 울려 퍼질 때, 우리는 직감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남녀의 만남이 아니라, 벼랑 끝에 선 두 영혼이 서로를 유일한 구명보트로 점찍는 순간이라는 것을요. 사랑은 때때로 가장 고요한 곳에서 가장 격렬한 폭풍을 일으킵니다. 황태자 루돌프에게 세상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개 자욱한 숲이었을 겁니다.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궤도를 돌아야 하는 행성처럼, 그의 삶엔 '나'의 의지가 끼어들 틈이 없었죠. 그런 그가 마리 베체라를 만나 노래합니다. "저 성벽 너머 알 수 없는 그곳으로" 가자고요.
https://youtu.be/lBOBLfMrzeA?si=axFVXnz1AeKk_PlN
여기서 그들이 말하는 '그곳'은 지도 위에 존재하는 물리적 좌표가 아닙니다. 그것은 타인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 오직 서로의 심장 박동 소리만이 유일한 규칙이 되는 '완전한 자유'의 다른 이름입니다. 이 넘버가 유독 애틋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그 '그곳'이 지극히 미지의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현실이라는 중력을 거스르고 날아오른 화살은 결국 땅으로 떨어지기 마련이라는 것을요. 하지만 사랑에 빠진 이들에게 미래가 불확실하다는 점은 공포가 아니라 오히려 찬란한 빛이 됩니다. 가보지 않았기에 무엇이든 될 수 있고, 알 수 없기에 모든 것을 걸 수 있는 것이죠.
"우릴 부르는 저 소리"를 따라가겠다는 그들의 맹세 속에는, 설령 그 끝이 파멸일지라도 당신과 함께라면 그조차도 축복이라는 지독한 순애보가 담겨 있습니다. 사랑은 결국 나라는 좁은 세상을 부수고 나가는 용기입니다. 마리가 루돌프의 손을 잡았을 때, 그녀는 안락한 귀족 영애의 삶을 버리고 거친 파도 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루돌프 역시 황태자라는 무거운 왕관 대신 한 여자의 연인이 되기를 선택했죠. 두 사람이 화음을 맞추며 고조되는 선율은, 두 개의 작은 세상이 부딪혀 하나의 거대한 우주를 만들어내는 폭발적인 에너지와 같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마음속에 자신만의 '알 수 없는 그곳'을 품고 살아갑니다. 지루한 일상, 나를 옥죄는 의무, 숨 막히는 현실에서 나를 구원해 줄 누군가와 함께 떠나는 상상. 이 넘버는 우리 안에 잠자던 그 시리도록 푸른 열망을 건드립니다. 도달할 수 있기에 꿈꾸는 것이 아니라, 꿈꾸기에 비로소 도달할 희망이 생기는 공간. 비극적인 결말을 잠시 잊을 만큼 이 노래가 아름다운 건, 그 순간만큼은 두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 서서 오직 서로만을 눈에 담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 그리고 이들의 열망을 마주하다 보면, 자연스레 현해탄의 푸른 물결 속으로 몸을 던진 김우진과 윤심덕이 떠오릅니다. 허무의 끝에서 서로를 껴안았던 그들처럼, 루돌프와 마리 역시 비극적 종말을 예감하면서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세상이 허락하지 않는 사랑을 완성하기 위해 죽음이라는 '알 수 없는 그곳'을 향해 기꺼이 투신한 것입니다. 비록 육신은 사라질지언정, 그들이 갈망했던 '그곳'은 삶의 구속이 닿지 않는 영원한 안식처였을지도 모릅니다. 죽음마저 찬미의 대상이 되게 했던 그 시리도록 푸른 의지는, 시공간을 넘어 모든 불멸의 연인들이 공유하는 가장 슬프고도 강렬한, 그리고 아린 단어라는 생각이 듭니다.
결국 사랑이란, 지도에도 없는 곳을 향해 기꺼이 길을 잃으러 떠나는 가장 아름다운 방황이 아닐까요? 사람들은 그들이 길을 잃었다 말하고, 끝내 벼랑 끝에 멈춰 섰다 말하지만, 정작 그들에게 '그곳'은 더 이상 알 수 없는 미지의 공간이 아니었을 겁니다.
그들이 그토록 갈구했던 '알 수 없는 그곳'은 어쩌면 어떤 좌표나 장소가 아니라, 서로를 바라보는 그 뜨거운 눈동자 속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세상의 모든 문이 닫히고 단 하나의 출구조차 보이지 않던 순간에도, 서로의 눈동자라는 유일한 통로를 통해 그들은 이미 낙원에 닿아 있었던 것이죠.
그렇기에 그들의 마지막 발걸음은 추락이 아닌 비상이었으며, 세상이 정해놓은 '끝'이라는 단어로는 결코 담아낼 수 없는 눈부신 시작이었습니다. 비록 현실의 시간은 멈추었을지라도, 그들이 함께 부르던 선율은 여전히 우리에게 속삭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안전한 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라는 운명을 믿고 기꺼이 세상 밖으로 걸어 나가는 용기라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