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로 저무는 마음과 오늘로 깨어나는 문장들
어느 날 일기장을 뒤적이다 문득 깨달았어요.
우리가 매일 적어 내려가는 이 행위가 단순히 기록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읽기’와 ‘잃기’라는 두 행성 사이를 위태롭게 오가는 항해와 같다는 사실을 말이에요.
발음조차 비슷한 이 세 단어는 마치 삶의 순환을 담은 정교한 언어유희처럼
우리 삶의 궤적을 고스란히 비추고 있어요.
우리는 대개 무언가를 ‘잃었을 때’ 비로소 펜을 들곤 해요.
붙잡을 수 없는 시간, 어제의 설렘, 혹은 누군가에게 끝내 전하지 못한 진심 같은 것들 말이죠.
일기는 흐르는 시간 속에서 소멸해가는 기억의 파편을 필사적으로 잡아채는 작업이에요.
슬픔이나 상처를 글로 옮기는 것은 그것을 내 몸 밖으로 꺼내어 객관화하는 과정이기도 하고요.
우리는 일기를 쓰며 비로소 '잃어버린 것'들을 문장 속에 안전하게 가두고,
비워내야 할 감정들을 기꺼이 잃어버릴 준비를 해요.
하지만 일기는 쓰는 행위인 동시에, 나라는 존재를 가장 정직하게 ‘읽어내는’ 행위이기도 해요.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편집된 삶이 아니라, 가공되지 않은 날것의 감정을 스스로 마주하는 것이죠.
"오늘은 괜찮았다"라고 적었지만 떨리는 글씨체에서 읽히는 불안함,
혹은 1년 전 일기 속에서 발견하는 뜻밖의 용기처럼 말이에요.
일기는 세상을 향한 눈을 잠시 감고, 내면의 행간을 찬찬히 짚어가는 고요한 독서 시간과도 같아요.
결국 일기란 지나간 것을 기꺼이 잃어버리기 위해 나를 다시 읽는 찬란한 접점이에요.
잃지 않으면 새로운 나를 읽을 공간이 없고, 읽지 않으면 무엇을 잃었는지조차 알 수 없기 때문이죠.
기록되지 않은 삶은 그저 흩어져 사라지지만,
기록된 삶은 다시 읽힘으로써 우리 안에서 영원히 살아남아요.
오늘 당신이 휘갈겨 쓴 그 한 줄은,
무언가를 떠나보낸 자리에 피어난 가장 진솔한 당신 자체일지도 몰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