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표를 찍지 못하는 마음에게,

뮤지컬 <김종욱 찾기>의 '나라의 결심'

by 옫아

뮤지컬 <김종욱 찾기>는 잃어버린 첫사랑을 찾아가는 유쾌한 로맨틱 코미디의 형식을 띠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사랑의 속성에 대한 꽤 날카로운 통찰이 숨어 있다. 그 통찰이 가장 솔직하고 선명하게 드러나는 지점이 바로 넘버 '나라의 결심'이다. 이 곡은 극의 결정적인 반전을 드러내는 장치인 동시에, 상처받기 싫어 사랑의 문턱에서 발을 빼본 적 있는 우리 모두의 비겁하고도 절박한 고백이다.

[뮤원] 뮤지컬 김종욱 찾기 Making Film #1 - 나라의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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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정점에서 이별을 예습하다

보통의 연인들이 "어떻게 하면 이 사랑이 영원할까"를 꿈꿀 때, 나라의 시간은 기이하게도 거꾸로 흐른다. 그녀는 사랑의 시작점에서 이미 그 사랑이 바래고, 지치고, 결국엔 서로를 할퀴며 끝날 이별의 순간을 시뮬레이션한다.

"현실도 이와 같을까? 열정은 식고 욕심만 깊어지겠지." 나라가 내뱉는 이 가사는 그녀를 지탱하는 거대한 방어기제다. 그녀에게 있어 완성되지 않은 추억은 영원히 훼손되지 않는 성역과 같다. 인도의 낯선 풍경 속에서 만난 김종욱이 여전히 그녀의 가슴 속에 눈부신 신기루로 남아있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특별해서가 아니다. 관계가 익숙해지고 지겨워지기 전에, 즉 사랑이 일상이 되어 상처만 남기기 전에 스스로 마침표를 찍고 도망쳤기 때문이다. 나라는 "닳아빠진 너와 나의 관계만 원망"하게 될 미래가 두려워,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부디 안녕히"를 외치며 추억을 박제해 버린다. 이는 운명을 믿는 순수한 여인의 모습이 아니라, 사실은 상처받는 것이 죽기보다 싫은 한 개인의 몸부림에 가까운 것은 아닐까.






'못' 찾는 것이 아니라 '안' 찾는 것의 반전

극 중반까지 관객은 나라를 '운명적인 첫사랑을 잊지 못해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지 못하는 순정파'로 오해한다. 그러나 '나라의 결심'을 통해 드러나는 진실은 서늘하다. 그녀는 첫사랑을 잊지 못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랑이 평범하고 초라한 현실로 변하는 것을 견딜 수 없어서 스스로를 추억이라는 감옥에 가둔 것이다.

이것은 지독한 겁쟁이의 논리다. 운명을 믿는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운명이 실현되는 순간 겪게 될 필연적인 상실이 무서워 뒷걸음질 치는 모습이다. 이 반전은 관객들에게 묘한 동질감을 선사한다. 우리 역시 가장 행복한 순간, 이 행복이 거품처럼 사라질까 봐 스스로 찬물을 끼얹거나, 상처받기 전에 먼저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경험이 한 번쯤은 있기 때문이다.






미완성의 늪에서 빠져나오는 법

나라는 사랑의 유통기한을 두려워한 나머지, 아예 통조림을 따지 않기로 결심한다. 가사 속에서 그녀는 "열정은 식고 욕심만 깊어질" 미래와 "익숙한 서로가 지겨워질" 찰나를 이미 예견하고 있다. 그녀에게 사랑이란 시간이 흐르면 반드시 부패하고 마는 생물(生物)과 같아서, 차라리 가장 싱싱할 때 캔 속에 가두어 영구히 보관하려 드는 것이다. 하지만 넘버의 마지막에 다다를수록 우리는 서글픈 진실을 깨닫게 된다. 유통기한이 없는 통조림은 안전할지언정, 그 안의 진정한 맛을 결코 알 수 없으며 결코 허기를 채워줄 수도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썩지 않는 추억은 달콤할지 모르나, 그것은 살아있는 온기가 배제된 차가운 금속성 위안일 뿐이다.


결국 이 곡은 우리에게 날카롭고도 역설적인 질문을 던진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평생 박제된 추억의 박물관 관장으로 살 것인가, 아니면 비바람에 깎이고 먼지가 쌓일지라도 살아 숨 쉬는 현재의 광장으로 나갈 것인가?" 나라는 "그동안 즐거웠어요"라는 차가운 말들을 미리 내뱉으며 스스로를 방어하지만, 이 결심은 결국 자신을 가두는 창살이 된다. 극의 흐름 속에서 그녀가 이 견고한 결심을 깨뜨리는 순간, 비로소 '첫사랑'이라는 박제된 과거의 유령으로부터 졸업하게 된다. 그것은 단순히 김종욱이라는 환상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상처받을 가능성'까지 껴안겠다는 진정한 용기다. 마침내 나라는 먼지 쌓인 통조림을 열어젖히고, 맛이 변할지도 모르고 끝내 상할지도 모르는 '진짜 사랑'이라는 현재의 식탁으로 한 걸음을 내딛는 것이다.





끝을 볼 용기, 비로소 시작될 수 있는 우리

'나라의 결심'은 단순히 한 여자의 고집스러운 선택이나 유난스러운 겁을 보여주는 노래가 아니다. 그것은 사랑이라는 커다란 파도 앞에서 잠시 숨을 고르며, 소중한 마음이 다치지 않게 조심스레 뒷걸음질 쳤던 세상 모든 '사랑스러운 겁쟁이'들을 향한 따뜻한 거울이다. 우리는 때로 상처받지 않기 위해 이야기의 결말을 미리 써버리고 책장을 덮으려 하지만, 사실 그 마지막 페이지 뒤에는 우리가 미처 상상하지 못한 새로운 챕터가 기다리고 있다. 마침표는 끝이 아니라, 그다음 문장을 더 힘차게 시작하기 위한 기분 좋은 약속이기 때문이다.

비록 그 끝이 나라가 걱정했던 것처럼 조금은 쓰라린 아픔일지라도, 끝을 마주해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단단하고도 반짝이는 성장이 있음을 이 넘버는 나라의 떨리는 목소리로 응원한다. 예쁘게 박제된 추억 속에 머무는 것보다, 비바람을 맞으며 자라나는 꽃이 훨씬 더 생명력 넘치는 법이니까.

이제 우리도 나라처럼 기분 좋은 결심을 해보면 어떨까? 영원히 변치 않을 미완성의 꿈속에서 깨어나, 기꺼이 '상처받아도 괜찮아!'라는 마음으로 누군가의 손을 꼭 맞잡는 그 무모하고도 눈부신 결심 말이다. 사랑은 결국 파도에 허물어질 것을 알면서도 매일 더 예쁜 모래성을 쌓는 즐거운 놀이며, 그 성이 지나간 자리에 비로소 '진짜 나'라는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진다는 것을, 우리는 나라의 용기 있는 뒷모습을 통해 비로소 배운다.





덧) 결국 이 넘버의 제목인 '나라의 결심'은, 중의적으로 '나'라는 결심이기도 합니다. 타인이 정해준 운명이나 과거의 추억에 머무는 대신, 상처받고 흔들릴지언정 있는 그대로의 '나'로서 사랑하고 살아가겠다는 단단한 선언인 셈이죠. 어쩌면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건 거창한 운명이 아니라, 어떤 순간에도 나 자신을 잃지 않고 현재를 살아가겠다는 이 기분 좋은 '나라는 결심' 아닐까요?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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