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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옫아 Mar 13. 2022

악몽에 관하여

그래도 그 균열을 바로 공포영화이라고 공표하진 않을게

2019. 1. 21.에 작성한 글(일부 수정) 






다들 싫어하는 꿈이 하나씩 있을 거야.

그토록 반복 재생하고 싶지 않았던 꿈이 또 나타나는 건 정말 힘든 일이지.

당시에는 꿈이라는 것도 모르고 최선을 다해 힘들어할 수밖에 없어, 고통스러워.

너의 그런 끔찍한 악몽은 어떤 서사를 지니고 있니? 


내 경우는 음, 하나를 꼽긴 어려워, 굉장히 다양하거든.

여행 준비를 미처 끝내지 못한 채로 공항이나 터미널로 향하는 꿈. 

시험 범위까지 아직 보지 못했는데 바로 시험이 시작되는 꿈.

학원 숙제를 하지도 않고 학원으로 억지로 향하는, 또는 학원 등록만 하고 다니지 않아서 죄책감을 느끼는 꿈.

내가 자꾸 죽는 꿈, 또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죽는 꿈.

사랑하는 사람들이랑 소리 높여서 싸우는 꿈.

엘레베이터의 알림 숫자가 읽을 수 없을 만큼 무한대로 바뀌는 꿈 등.


내게 존재하는 모든 두려움에 관련된 무의식들이 꿈을 향해 신나게 폭죽을 쏘아올리는 것 같아. 

펑펑, 터질 때마다 괴롭고 아프고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밖에 안 들어.

누가 나를 여기서 조용히 빼내어주었으면. 


그 중 가장 빈도수가 높은, 내 악몽들에게 제일 사랑받는 콘텐츠는 바로 첫 번째로 이야기한 꿈이야.

적어도 한 달에 2번 이상은 꾸는 것 같아.

주요 서사라고나 할까, 준비하지 못하고 무언갈 맞는 서사는 같은데 계열체만 바뀌는 양상이지.

해외 여행을 가는데 환전을 하지 않았거나 오후 비행기인데 연차를 내지 않은 경우가 대표적이야. 

또는 시간대가 코앞인데 아직 출발을 하지 못하고 쩔쩔매고 있거나!


고작 그런 걸 악몽이라고 부를 수 있냐구?

나는 정말 그런 꿈을 꾸면 너무 힘들어, 스스로를 자책하기도 하고 초조하고 불안해져. 

겪고 싶지 않은 상황이 펼쳐지는 거니까 그 꿈을 버텨내는 건 무척 힘겨운 일이지. 

실제로 내가 준비에 소홀한 편은 아니냐구?

글쎄, 난 예매한 버스나 기차 시간대보다 적어도 20분은 일찍 가서 기다리고,

여행을 떠날 때도 중복 확인을 하면서 놓치는 것 없이 짐을 챙길 정도인데, 꼭 그런 꿈을 꾸더라구.


물론 조금, 아주 조금 덤벙거리는 면이 있어서 몇 가지 물건은 종종 놓고 오긴 해도 

내 악몽에서 나오는 양상처럼 어마어마하진 않다고 자부할 수 있었어, 한동안은.


직업 특성상 출장이 잦은 편이고, 외박하는 경우도 많아.

출장 짐 체크리스트도 만들어서 책상 옆에 붙여놓고 짐을 챙길 정도야. 

그렇게 하나하나씩 놓치는 거 없이 잘 챙겨서 출장을 다니고 있었지. 


어느 날, 강원도 쪽으로 출장을 갔는데 10시 넘어 숙소 들어와서 보니까 글쎄 화장품 파우치를 통째로 놓고 온 거야.

화장도 지워야 하고, 그 다음날 행사 때도 화장을 해야하는데 립, 아이라이너, 컨실러 빼고는 아무 것도 없는 거지.

엄마한테 급하게 카톡을 해보니 화장대 위에 있다고 답이 왔어.

잃어버린 게 아니라 그래도 집에 무사히 있다니 다행인 건가.

그토록 피하고 싶은 꿈이 이렇게 생동감을 안고 나타나다니, 아니 이건 꿈인 건가.


그래도 금방 정신을 차리고 바로 앞에 위치한 편의점에 갔더니 필요한 몇 가지는 팔고 있더라.

하긴, 저번에 여의도 쪽 교육 갔을 때 보니까 여의도 빌딩에 있는 편의점에선 화장품도 보유하고 있었는걸.

계산을 하고 비닐봉지에 담아서 나왔는데, 헛웃음이 나더라.

에이, 별거 아니었네, 이런 웃음이었어. 

주사를 맞기 전에 벌벌 떨고 안 맞겠다고 울다가, 맞고 나면 조심스럽게 나타나는 이름을 알 수 있는 웃음 같은 거. 

대체 어떤 이유로 그토록 그 꿈을 무서워하고 두려워했나, 싶을 정도로 괜찮았어.

눈썹에 아이라이너를 활용해서 그리고, 컨실러로 피부화장을 한다는 건 괜찮은 건 아니지만 크게 나쁘지 않네. 

조금은 가벼운 마음도 들어서, 같이 출장 간 동기들에게 전화했어, 나오라구 노래방 가자구.

내일의 온전한 컨디션을 위한다면 이 시간에 노래방은 가당치도 않은 거지만, 그냥 그러고 싶었어.


평화로움을 가정하고 그것의 반대 양상을 상상하고 두려워했는데

다른 지평은 생각보다 그리 끔찍하지도, 벌벌 떨만큼 피하고 싶지도 않더라구.

하긴 모든 나날들, 모든 꿈들이 내가 원하는 만큼 안정되지 않을지 몰라. 

그래도 그 균열을 바로 공포영화이라고 공표하진 않을게. 

또 모르지, 재밌는 공포영화 B급 호러무비일수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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