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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옫아 Mar 22. 2022

아무도 아기 오리를 보살피지 않아.

나도 그 누구도 신뢰할 수도 없는 그때의 내 모습.


나 왜 이 이야기를 잊고 있었지. 

나의 스무살은 단적으로 정의하자면 딱 그 이야기인데 말이야. 

완전히 잊혀져 버린 이야기.

하지만 내 시간 어딘가에 그 어느 사건보다 강렬히 문신처럼 새겨진 그 이야기. 



스무살 봄. 4월 정도 되었던 것 같아. 

햇빛이 따뜻한 오후, 점심 식사 후 친구랑 함께 교양수업을 들으러 호수를 지나서 가는 중이었어. 

그때 발견했어. 아기 오리. 


아기 오리가 어미를 잃었는지 혼자 차도 위를 아슬아슬 걷고 있었어.

주변에 학생들은 꽤 많았던 것 같은데, 모두가 "어떡해, 저것 좀 봐!"만 남발하고 가까이 다가서지 않았지. 

저러다 차에 치일 것 같은 불안감과 함께 어미를 잃은 아기 오리가 너무 불쌍했어. 

함께 있던 친구도 오리를 안쓰러워했지만 우리는 가던 길이나 마저 가자고 했어, 지금 가도 수업시간 제때도착이 어려운, 다소 촉박한 시간이긴 했거든. 


아니,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아기 오리를 홀로 놓고 가?

아무도 아기 오리를 보살피지 않을 게 분명한데.

저러다 아기 오리는 정말로 버려지게 되고, 그렇게 쓸쓸하게 외롭게 죽게 되지 않을까?

나는 너무 겁이 났어. 아기 오리를 아무도 보살피지 않는 사실에 대해, 그리고 혼자 남겨질 아기 오리가. 


친구에게 나는 저 아기 오리를 우리 학교 수의대에 데려다 주겠다고 말했어.

내 말에 친구는 어이 없어 했고, 우리가 아니더라도 누군가가 아기 오리를 챙겨줄 것이라며 수업이나 얼른 들으러 가자고 가던 길을 서둘렀어. 그 순간 나는 친구에게 화가 났고 속상했어. 

우리마저 아기 오리를 버리자고?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이 많은 학생들 중 그 누구도 아기 오리를 보살피지 않으면, 나라도 보살펴야 하는 거 아니야?

나는 친구에게 대뜸 화를 냈고, 친구는 그런 나를 쳐다보다 이내 나를, 나마저 두고 가려고 하더라. 


비록 짧은 순간이었지만, 

나 꼭 마치 아기 오리가 된 것 같았어. 아기 오리처럼 나도 버려지는 거 아닐까? 

아무도, 그 누구도 나와 이 아기 오리의 안전과 안녕에 대한 관심은 조금도 없는 것 같았어. 

이 많은 학생들 속 우린 혼자였던 거야. 


고민하다가 끝내 나도 친구를 따라 가서 수업 시간에 늦지 않게 도착했어.

문제는 그때부터였어. 교양 수업은 귀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고, 눈물만 주르륵 나더라구. 

그 누구도 먼저 손을 내밀어 아기 오리를 돕지 않았던 상황과 함께, 대전 집에서 떨어져 서울에 홀로 와서 공부하고 있는 지금 내 모습이 오버랩되었던 거지. 수업이 3시간짜리였는데 내리 혼자 울었던 같아. 


수업이 마친 후, 친구는 내게 되려 물어보았어.

너 왜 아무도 아기 오리를 챙기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냐고. 정말 그렇게 생각했냐고. 

당연한 거 아니야? 너조차, 우리조차 아기 오리를 홀로 두었어. 


친구는 내게 이야기했어.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아기 오리는 우리가 아니더라도 누군가가 챙겨줬을 거라고.

우리는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바로 액션을 취하는 게 어려웠지만, 그 근처에 있던 누군가는 반드시 꼭 그 아기 오리를 살펴서 안전한 조치를 취했을 거라고. 

그러면서 또 나에게 묻더라. 너 사람들에 대한 믿음이 그렇게 없어?라고. 


그럼, 없지. 

사람들은 정말 그렇게 따뜻한 존재일리가 없다고 생각했지, 나는 그때. 

나만 좋은 사람. 나만이 아기 오리의 평안에 관심이 있는 사람.

내가 아니라면 그 누구도 아기 오리에게는 마음 써줄 시간도, 용기도, 그리고 의지마저도 없을 거라 확신했던 20살. 


그 날 저녁, 나는 기숙사 침대에서 핸드폰을 하다, 학교 페이스북 페이지 중 하나에서 아기 오리가 무사히 어미 품으로 갔다는 게시글을 보았어. 

지나가던 수의생이 바로 아기 오리를 갖고 갔다는 인증과 함께,

그 아래에는

안도하는 사람들의 많은 댓글들. 



그럴 리 없는데 말이야. 그들은 아무도 아기 오리에게 관심이 없을 텐데.


맞아,

사람들에 대한 믿음이 없던 게 아니라 어쩌면 나는 나에 대한 믿음도 없었을 지도 몰라. 

그 시간 속 나는 나도 믿고 사람들도 믿지 못했던 거지. 

나도 그 누구도 신뢰할 수도 없는 그때의 내 모습. 

아기 오리가 무사히 어미 품에 돌아가지 못하리라고 생각했던 그 날의 호수.




왜 나는 그때 그렇게 생각했을까.

아무도 아기 오리를 보살피지 않는다고.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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