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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옫아 Apr 21. 2022

김초엽의 <방금 떠나온 세계>를 읽고,

사랑이 아니면 가능할 수 없는 7편의 이야기들을 만나며

1. 최후의 라이오니


- 후회하면서도 나는 내가 그럴 수밖에 없던 이유를 생각한다. 9


- 어떤 죽음은 다른 삶을 지탱하는 것이다. 20


- 그 평온함을 내가 영구적으로 획득할 수만 있다면 모든 것을 다 걸어도 좋을 것 같았다. 나는 평생 내가 가진 결함의 근원을 찾아 헤맸다. 25


- 그것이 불멸인들의 도시에 '죽음'의 공포를 전파한 감염병이었다. 37


- 그들은 죽음을 운명으로 지닌 채 태어났지만 정작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인류였다. 그들은 이 좁은 거주구에 갇혀 진부한 삶과 죽음을 반복 재현하는 대신 바깥으로 나가 자신들이 획득한 삶의 가능성을 시험해보기를 원했다. 41


- 나는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기계를, 그러나 여전히 나를 기억하는 기계를 마주 본다. 49


- 완전한 믿음도  완전한 연기도 아닌, 내가 라이오니라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단지 그렇게 믿고 싶은 상태. 기계가 죽음을 맞이할 때 어떤 상태가 되는지 나는 상상할 수 없지만, 우리의 대화는 그런 종류의 중첩 상태에 놓여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52


- "나를 이용한 거야? 이미 태어난 나는 어쩌고?"

하지만 돌아오는 길에는 태어나 처음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나에게 주어진 이 태생적 결함이, 사실은 결함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53


* <최후의 라이오니>는 마치 성장 소설 같은 포맷을 갖고 있다. 우수함과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집단 속에서, 여기에 진정으로 합류하지 못하고 겉도는 한 존재가 위기의 상황 속에서 타 존재를 만나게 되고, 그를 통해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온 몸으로 마주하고 확인하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평생을 한 집단의 주변인으로 머물게 했던, 소속감으로 부터 나를 밀어냈던 어떠한 결함이 결국엔 나를 증명해 내고,  누군가가 간절히 원하고 기다렸다는 무언가임을 깨닫게 되는 순간. 나의 인생은 이제 이전과는 달라지는 서사를 깔끔하게 담아내고 있다. 나라는 존재가 내가 속한 그룹에서 굉장히 방치되어 있고 이로 인해 외롭다고 느껴질 때, 이 책을 만난다면 조금의 위로와 위안을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2. 마리의 춤


- 나는 연습실을 나오면서 테두리 밖으로 약간 밀려난 기분을 느꼈다. 내가 단 한 번도 속한 적 없는 그 세계에서. 그것은 아주 이상한 느낌이었다. 91


- 창밖의 해가 천천히 기울며 다른 색의 빛줄기를 탁자 위로 비추었다. 빛은 얼마나 상대적인 것일까?  97 


 * 나와 가깝지 않은 존재, 오히려 정반대의 거리감만큼 멀다고 생각했던 이질적인 개체에게 서서히 물드는 과정을 그려낸 작품 <마리의 춤>. 그리하여 그 개체가 속해 있는 세계를 감히 이해하고 만나보려는 의지가 생겨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정상과 비정상의 이분법적으로 나눠진 경계 속에서 과연 무엇이 옳고 그른지, 어느 시각으로 무엇을 바라보는지에 따라, 그게 얼마나 상대적인지 잘 그려내고 있다. 예상해 보려고 하지 않았던 시각을 나눠 가는 것. 맞지 않은 신발을 신어보는 것. 그 눈과 신발로 내가 본 세계와는 또 다른 세계로 진입하는 것. 




3. 로라 


- 로라는 말했다. 사랑과 이해는 같지 않다고. 진은 그 말에 동의할 수 없어 긴 취재를 시작했다. 로라의 어떤 부분이 완전한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다는 것, 그리고 로라가 진에게 그것을 설명할 생각조차 없다는 것은 진을 슬프게 했다. 105


- 여전히 불가해한 L에게. 105


- 진은 도저히 로라의 결정을 이해할 수 없었다. 사고 후유증으로 거짓 감각을 경험하게 되었다면 거짓 감각을 고칠 일이지, 가짜 팔을 다는 것이 어떻게 해결책이 될 수 있단 말인가? 116


- 내가 어떤 틈새에 낀 존재 같다고 느껴. 118


- 네가 떠나면 난 아주 슬플 거야. 너를 사랑하는 일은 나를 기쁘게 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되는 일을 포기할 수는 없어. 나 자신이 되는 일은 인생 전체를 건 모험이야. 네가 날 지지해주었으면 좋겠어. 그럴 수 없다면. 그래도 상관없어. 난 이렇게 할 수밖에 없으니까. 118


- 진이 가장 괴로웠던 것은 로라가 애초부터 이해받을 생각이 없었다는 점이었다. 119


- 진은 로라가 누구에게도 완전히 이해받지 못한다는 사실에 종종 우울감을 느낀다는 것을 알았다. 로라를 이해하는 단 한 사람, 진은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122


- 그렇지만 하나는 확실히 해야 해. 너는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너를 위해서 그 여행을 다녀온 거야. 122


- 로라에게 세 번째 팔은 증강도 향상도 아니었다. 그것은 몸에 대한 훼손이었고, 차라리 결함을 갖기로 선택하는 것이었다. 진이 그렇게 긴 여정을 떠났던 것은, 어떤 사람들이 스스로 결함을 갖는 결정을 내리는 이유를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125


- 로라가 기계팔을 단 이후로 우리는 만나다 헤어졌고, 또 만나다 헤어지기를 반복했습니다. 그 모든 사건이 로라의 팔 때문이라고 말하지는 않을 거예요. 그건 단지, 우리 사이에 결코 좁힐 수 없는 간격이 있다는 걸 확인해주는 하나의 사건이었을 뿐입니다. 126


- 눈이 마주쳤을 때, 로라는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씩 웃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여전히 로라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아요. 동시에 제가 앞으로도, 어쩌면 영원히 로라를 이해할 수 없으리라는 것도요. 하지만 그걸 깨닫는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사랑하지만 끝내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당신에게도 잊지 않나요. 126


* 가장 내 취향이었던 서사 <로라>. 로라를 이해하기 위한 여정은 결국 로라를 사랑하는 나(진)를 확인하는 길이었음을 깨닫는 것이 참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사랑과 이해의 관계성을 이토록 잘 그려낼 수 있을까 싶었던 단편. 사랑하지만 끝끝내 닿을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를 어떠한 소재를 빌려 정말 완벽하게 풀어냈다. 또 그 소재로 인해서 우리 문제의 원인을 찾는 것이 아닌, 그 소재는 어디까지나 정말 하나의 소재일 뿐. 서로와 서로 사이의 간격을 줄이기 위한 진실된 노력 자체로부터 나는 정말 사랑은 이런 거구나. 다시 한번 느꼈다. 특히 해당 단편은 내가 정말 좋아하고 애정하는 연극 <올모스트 메인>의 전체를 관통하는 프롤로그, 에필로그 서사와 그 결이 같아서 더 내 마음에 쏙 들었던 사랑스럽고, 애틋한 이야기였다. 때론 내가 진이었고, 또 때로는 내가 로라였다. 그래서 마음에 밟힐 작품이고, 그 여운이 오래 갈 것 같다.




4. 숨그림자


- 조안을 살린 것이 조안을 위한 일이라고 할 수 있을까? 연구원들은 숨그림자 사람들이 조안을 죽음에서 구해준 것처럼 말했지만, 조안의 시간은 이미 수백 년 전에 끝나버렸는지도 모른다. 151


- 둘의 대화에는 늘 지연이 있었다. 단희는 기다렸고, 같은 말을 반복했다. 때로는 같은 의미를 다른 말로 풀어서 말했고, 때로는 하고 싶은 말을 아주 압축적으로 전했다. 그건 조안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은 천천히, 가능한 한 오랜 시간 이야기했다. 163


- 지구의 사람들은 서로에게 꽃을 선물했어. 보기에도 예쁘지만, 무엇보다 온갖 좋은 냄새가 나거든. 다 설명할 수 없는 마음을 꽃으로 전하고 시었던 거야. 고마움, 사랑, 미안함. 말로 전하기에는 어색해지는 마음들. 그런 마음들이 같이 전달되기를 바랐지. 166


- 사람들은 나와의 대화에 조금의 시간도 쓰지 않아. 내 말은 들을 필요가 없으니까. 174


- 조안을 사랑하게 만드는 것들은 모두 행성 바깥에서 왔다. 그리고 그것들이 조안을 이곳으로부터 밀어내고 있었다. 174


- 특별할 것도 없는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둘 사이에 쌓였다. 천천히 느린 속도로 밤이 흘러갔다. 178


- 어떤 세계가 너를 받아주는 게 아니야. 그저 그곳에 너를 받아주는 어떤 사람이 있는 거야. 182


- 이곳을 사랑하게 만드는 것들이 이곳을 덜 미워하게 하지는 않아. 그건 그냥 동시에 존재하는 거야. 다른 모든 것처럼. 182


* 이렇게 표현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가장 김초엽 작가님의 세계관을 명시적으로 보여준 작품. 이쪽 세계와 저쪽 세계가 만나, 궁극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바를 적확하게 표현하고 있었다. 세계는 결국 개인들의 집합체일 텐데, 그 세계와 개인의 난해하고 복잡한 관계성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바로 전 작품인 <로라>의 느낌하고 비슷했는데, 다른 지점이 있다면 바로 둘의 '소통'에 보다 더 포커싱을 맞추고 있는 <숨그림자>. 서로의 언어를 이해하기 위해서 조금씩 다가가고 가까워지는 과정은 풋풋함과 진정성이라는 다소 거리감이 있는 두 단어를 함께 보여주고 있다. 너를 알아가는 것. 너를 이해하는 것. 내 세계(중의적인 표현일 수 있겠다)가 포용하지 못하는 너를 받아들이는 건, 정말 사랑이 아니면 가능하기나 하겠어. 





5. 오래된 협약


- 우리가 나눈 마음들은 그 순간만큼은 진실한 것이었다고 믿어요. 197


- 각각의 세계는 얼마나 견고하고 고유한지. 197


- 설명하기 힘든 감정이 저를 휩쓸었습니다. 어쩌면 제게는 이정이 영원히 저의 고통을 몰랐으면 하는 마음과, 고통의 근원에 있는 진실을 알아차려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공존했는지도 모릅니다. 205


-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시간은, 이 행성의 시간을 잠시 빌려 온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이지요. 224


- 제가 평생을 지나도 이해할 수 없을 어떤 결정들이 그곳에 있었습니다. 먼 우주에서온 작은 존재들에게 기꺼이 자신의 시간을 떼어 주기로 결정하는 마음이, 이 잠든 행성 벨라타 전체에 깃들어 있어요. 저는 눈을 감고 그들을 생각했습니다. 225


- 오래전 이곳에 머물렀던 어떤 반짝이는 시간들을 생각하면서요. 227


* 지속적으로 반복되었던 주제의 연장선이었던 <오래된 협약>. 그토록 이해할 수 없는 세계 안을 나름의 생리로서 살아가며 이해하려는 존재와 그 존재를 아끼는 마음에 그 세계와의 단절성을 고해야 한다는 한 존재. 그러니까 나는 내가 속한 나의 세계 안에 머물 것인가. 아니면 그 세계를 벗어나 기꺼이 따르고 싶은 사람을 따라갈 것인가. 김초엽 작가님이 의도하지 않았던 질문거리일 수도 있겠지만 내 해석 안에서는 이런 물음이 두둥실 떠올랐다. 나조차도 이해할 수 없어 감추고 싶었던 어떤 세계를 내가 마음을 나누었던 사람이 그 진실을 파헤쳤을 때 오는 복합적인 감정을 잘 담아내서, 과연 나라면. 나는 무얼 선택하고 포기했을지 함께 몰입할 수 있었다.   




6. 인지 공간 


- 내 의견은 공동체에 충동과 분열을 가져왔다. 233


- 날세운 외견 뒤에 숨겨진 이브를 알아가는 일은 꽤 재미있었다. 235


- 가까이서 본 이브는 그렇게 단순하게 표현할 수 없는 아이였다. 235


- 이브가 그렇게 웃어주는 사람은 나뿐이었으므로, 나는 어떤 게임에서 혼자만 이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236


- 그래도 이걸 모두 없던 일로 할 수는 없어. 내가 당했던 일들은 다 어디로 가는데? 그런 건 사라지지 않아. 237


- 하지만 그 가정된 위험 때문에 지금까지 이브는 너무 많은 기회를 빼앗겨왔다. 239


- 어른들의 공동체는 놀라울 정도로 다툼과 분열이 적은 반면, 충분히 동일시되지 않은 아이들 사이에서는 끊임없이 갈등이 일어났다. 239


- 이브와 나 사이에는 진공과 같은 거리감이 생기고 있었다. 256


- 한때 이브는 나의 가장 가까운 친구였다. 오랜 시간 나는 이브가 곁에 없는 나를 상상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 우리의 세계는 달라지고 있었다. 어머니는 나에게 어른이 된다는 것은 결국 혼자임을 알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존재로 분화되기 시작한 두 사람은 서로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이브와 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 결론을 내린 이후로는 점점 이브와 만나는 일도 줄었다. 오랜 친구를 포기하는 일도 성장의 일부일지도 모른다고, 모든 관계는 변화할 수밖에 없다고. 나는 그렇게 스스로를 설득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나는 이브가 진짜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제대로 듣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가끔은 내가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었으리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브의 말을 진지하게 생각해볼 수도 있었다. 그 애가 나와 함께하고 싶어했던 일들을 함께할 수도 있었다. 이브의 인지 공간을 옮기겠다는 아이디어에 대해 몇 시간이고 더 귀 기울여 들을 수 도 있었다. 그랬다면, 이브는 그렇게 빨리 나를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256


- 한때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었다. 그리고 방금 내가 떠나온 세계이기도 했다. 270


- 저 밤하늘에는 별이 너무 많아서 우리의 인지 공간은 저 별들을 모두 담을 수 없다. 하지만 우리 각자가 저 별들을 나누어 담는다면 총체적인 우주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마침내 이 행성 바깥의 우주를 온전히 상상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언젠가 그곳을 향해 갈 수도 있을 것이다. 270


* 필사를 한 두 문장만 하거나 어느 구절 정도했던 내가 거의 한 페이지를 다 옮겨 담을 만큼 내게 주는 감정의 폭이 꽤 컸던 작품이다. <방금 떠나온 세계>의 제목이 담긴 구절을 발견했을 때 신기하기도 했고, 해당 단편집 안에서 흐르고 있는 서사나 일정한 결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작품이었다. 일정 세계가 주입해 온 신념으로 인해 내가 꽤 아끼고 사랑했던 존재를 애써 외면하게 되고, 그 개체성과 개별성이 가진 고유함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고 이로 인해 그 존재를 상실했을 때 오는 먹먹한 슬픔과 후회를 그려내고 있다. 뭐랄까. SF소설인데 가장 현실적인, 그러니까 누구나 통과의례처럼 겪어왔던 한 시절을 토막내어 담고 있다는 느낌. 물론 나도 이 작품에서 나의 한 시절을 찾을 수 있었고. 세계와 개인. 단순한 설명으로 결코 압축되지 않을 복잡한 이야기. 또 이와는 별개로 일관성과 통일성 그리고 개별성과 차별성이 갖고 있는 가치의 다각적인 면도 같이 생각해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우리의 생각이, 그러니까 우리의 세계가 단 하나의 색으로만 칠해지는 게 결코 진짜 세계일까. 




7. 캐빈 방정식 


- 우리 우주는 수많은 주머니 우주를 가지고 있다. 생소하면서도 익숙한 단어의 조합으로 되어 있는 그 말이 마음에 들었다. 이 세계 밖에 다른 우주도 있다는 명료한 확신을 담은 말 같았다. 내가 평생을 달려도 절대로 따라잡을 수 없는 언니의 세계가 있는 것처럼, 우리의 우주가 있고 그들의 우주가 있다는 고독한 선언. 283


- 놀랍게도, 언니는 평범하게 불행해지지 않았다는 것. 언니는 아주 특별한 이유로 불행해졌다는 것. 287


- 우리는 서로의 고통을 공유할 수도 없었다. 나는 그 차이를 좁히고 싶었다. 그러면 언니와 내가 다시 같은 시간을 살아갈 수는 없더라도, 함께 살아갈 수는 잇을 것 같았다. 모든 게 느리게 천천히, 고통스럽지만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었다. 294


-별들의 시치를 생각해봐. 풍경은 물어질수록 고정된 것처럼 보이고 심지어 시간도 느리게 흐르고 있지. 관람차야말로 시간의 상대성을 보여주는 구조물이야. 밖에서 보는 움직임과 안에서 보는 움직임이 다르잖아. 밖에서 보면 분명히 캐빈들이 등속으로 움직이는데 안에서는 정상으로 갈수록 풍경도 시간도 멈춘 것처럼 느껴지는 거야. 297


- 난 괜찮아. 가끔은 즐겁고 또 가끔은 행복해. 이 삶에서 내 방식대로 의미를 찾아보려고 해. 306


- 이제 비극을 생각하는 일에 지쳤다. 306


- 언니가 없어지니까 갑자기 내 인생이 너무 특별해 보이는 거야. 언니는 평생 특별했잖아. 아플 때도 특별하게 아팠잖아. 내 특별함까지 가져가버린 것 같았어. 311


- 언니는 이런 기분을 알까? 아니, 언니가 이 기분을 알 필요는 없다. 하지만 언니는 어떤 기분일까? 319


- 나는 문득 언니와 나의 시간이 다시는 겹쳐지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지금 우리가 아주 다른 풍경을 보고 있으리라는 것도. 319


- 우리의 세계가 어느 순간 분리되어버렸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319


- 우리가 다시 같은 시간을 점유하며 살아갈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320


* 특별한 존재, 이를 가까이서 지켜보는 시선은 기존 단편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부터 <행성어 서점>에서도 종종 등장하곤 했던 소재. 그 존재에 대한 동경과 신뢰로 동행하는 것. 때론 같은 길을 조금의 속도 차이로 걷기도 하고, 어느 지점에서 다른 길을 택하기도 하고. 하지만 어떠한 선택지를 만나고 어디를 향해 걷건, 그건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정말 중요한 건, 우리가 어느 시점에서 서로를 잠시 바라볼 수 있었다는 것. 작가의 말을 빌려 설명하자면 '그 짧은 접촉의 순간'을 온전히 함께하고, 이를 인지했다는 것. 너의 세계와 나의 세계가 합쳐질 수 없음이 큰 비극이 아니라, 애초부터 당연한 사실이었고. 다만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의 세계를 향한 진정한 안녕을 힘껏 빌어주는 일.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서로를 향한 마음을 충분히 전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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