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 <환승연애2>의 두 번째 정주행을 마치며
"이별한 사람들은 재밌어."
어느 날, 내 친구 진실이가 해준 말이다.
진실이랑 샤브샤브를 먹고 카페로 가던 길이었다. 운전대를 잡고 있던 진실이와 늦은 밤, 그리고 왼쪽 깜빡이를 키면서 읊조리듯 말하던 진실이의 목소리와 억양이 아직도 생생하다. 처음 배우는 낯선 단어처럼 귓가에 딱 박혔기 때문이다. 내게 진실이는 이른바 '연애천재'다. 누군가를 만남에 있어서 굉장히 신중하고, 또 오랜 기간동안 만나며 연애 공백기가 굉장히 짧은 친구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사람들과 깊은 관계를 유지하며 연애의 역사를 이어온 진실이가 내겐 굉장히 대단한 존재다. 그런 진실이야말로 진짜 연애가 뭔지, 진짜 이별이 뭔지 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기에 진실이가 이야기한 그 문장이 오래 기억에 남아 있다.
진실이가 위의 말을 하게 된 건 그 당시 굉장히 핫한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 <환승연애2>가 대화 주제로 나오고 있을 때였다. 아직 그 프로그램을 보진 못했지만, 언젠간 볼 거라며 진실이가 해준 말이다. 당시 나는 <환승연애> 시즌 1을 보진 못했지만 인스타그램, 유튜브에서 해은과 규민의 서사가 담긴 영상을 몇 번이고 보면서 <환승연애2>를 시청하기 시작했다. <환승연애1>이 이슈가 되기 시작했을 때부터 환승연애, 라는 설정이 굉장히 잔혹한 설정이라 생각했다. 이별한 사람들을, 굳이, 왜 한 공간에? 그것도 다른 사람이랑 썸타라고 만드는 걸까? <나는 솔로>나 <하트시그널>처럼 초면인 사람들을 모아두고 썸 타는 게 더 편안(?)하고 말랑하지 않나. 그리고 <환승연애> 신청을 자처한 사람들의 심리는 또 어떤 걸까. <환승연애2>의 첫 번째 에피소드 제목은 '오랜만이야. 처음 뵙겠습니다.'이다. 서로 초면인 사람들도 있겠지만, 이별 후 오랜만에 재회하는 사람들도 있음을 함축한 제목이다.
당시에도 나는 <환승연애2>를 굉장히 재밌게 보았지만, 그때는 누가 누구랑 매칭되는지 확인하는 데에 급급해 몇 몇 장면들을 스킵해서 본 적이 많았다. 하지만 최근 해당 프로그램을 2차 관람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결말을 알아서 그런지, 마음이 한결 느긋해지고 '누가' '무엇을'이라는 관점 대신 '어떻게'에 중점을 두기 시작했다. 모든 결말을 알고 난 뒤에 보는 영화 같은 마음으로 서로가 서로를 어떤 시선으로 보고 있는지, 어떻게 행동하는지 천천히 따라가는 시선으로 약 2주간에 걸쳐 <환승연애2> 정주행을 오늘에서야 완료했다.
사실 내게 이별이라는 단어는 꽤 생소하다. 그리 찐한 연애를 해본 적도 없고, 내가 기억하는 이별의 장면들은 무척 어이 없게 실소 정도로 웃기거나 민망한 흑역사이기 때문이다. 스무 살 여름방학이 끝나갈 무렵, 대학교에 들어와서 처음 만났던 애에게 헤어지자고 했을 때 그는 내게 나와 만나기 시작하면서부터 쓴 일기장을 손에 쥐어주면서 다시 생각해 보라고 이야기했다.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많이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꽤 부담스럽고 그 자리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첫 번째 이별은 도망치고 싶은 감정이었다. 두 번째 이별에서 느낀 감정도 비슷하다. 꽤나 잘생겼던 복학생 오빠랑 잔잔히 만나가고 있다고 확신할 때쯤, 오빠는 학교 호숫가를 걷는 밤산책에서 내게 '너무 말이 많다'고 이야기하며 관계의 끝을 그어주었다. 이런 식의 이별들이 몇 번 더 재생되면서 이별은 곧 내가 맺었던 관계의 깊이를 보여준다는 걸 느꼈다. 남들 다 가슴 앓이하며 그리 오래도 아파하는 이별이 내게는 별거 아닌 일상으로 남겨질 때, 상처 받지 않아 다행이라는 안도감을 느꼈고, 한편으로는 나 정말 보잘 것 없는 연애를 또 했구나 생각했다.
그런 내가 바라본 <환승연애2>에 나온 모든 출연자들은 모두 용감했고 대담했다. 연애 기간 동안 최선을 다해 마음을 표현하고 사랑했고, 헤어짐 이후에도 각자의 선택에 기꺼이 책임지며 움직였다. 첫 번째 볼 땐 몰랐던, 그들의 담대함을 나는 아끼고 애정하게 되었다. 21세기 <트루먼쇼>랄까. 생생하게 움직이는 그들의 역동적인 연애 서사와 순간의 감정과 선택을 따라가면서 나는 그들만큼이나 아팠고 또 웃을 수 있었다. 첫 번째 감상할 땐 '왜 저래' 싶은 몇 몇 출연자들이 있긴 했지만, 정주행하는 동안 이해하고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은 감정이 올라왔다. 정말 멋진 사람들이었지만, 그래도 내가 감히 '공감했다'고는 표현할 수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나는 파워 NF(MBTI)유형이니까 정말 진지하게 감정선을 따라갔던 프로그램이었다.
연애 프로그램을 그리 좋아하진 않지만 그래도 꽤 애정했던 프로그램은 <하트시그널2>였는데 이번 2차 관람으로 <환승연애2>가 제일 최고의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으로 남을 것 같다. 온 마음 다해 정주행을 마치고 나니 이제야 비로소 진실이가 왜, 이별한 사람들이 재밌다고 했는지 비로소 알 것 같다. 이별이라는 종착지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에서 최선을 다해 사랑했던 이들, 그리고 이별 이후의 시간들에 있어서도 마음이 가는대로, 나의 선택을 따라 한 걸음씩 나아가고 움직이는 이들의 진정성 있는 이야기가 <환승연애2>에 담겨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이야기를 단순히 '재밌다'고만 하기에는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텍스트 그대로 의미가 아닌, '다채롭다'로 이해하면 어떨까.
정말 다양한 감정을 간접적으로 느끼게 해주고, 지난 나의 이별 경험들을 상기시키고, 내가 저 상황이었다면 어떻게 움직였을지 상상하게 만들어 주고, 예상하지 못한 선택에 감탄하기도 하고. 그런 모든 과정들을 통틀어 '재밌다'고 한 번에 정리하기엔 축약이 많을지라도, 결국 그 재미가 <환승연애2>의 대박에 기여한 건 아닐까. 진정성 있는 출연자들의 이야기에 모두가 응답했다고 생각한다. 역시 이별한 사람들은, 그들의 날 것의 감정은 재밌을 수밖에 없는 게 아닐까.
* 해당 글을,, 나의 브런치글을 독촉해준 건영이와 소희 언니에게 바칩니다. 앞으로는 더 열심히 써보겠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