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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옫아 Oct 02. 2023

영화 엘리멘탈:내 삶에 들어온 물, 내 삶을 밝힌 불

물은 누군가의 삶에 침투했고, 불은 누군가의 삶을 밝게 비춘다.  


나는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나.

나의 정체성은 어디서 오나.


나의 뿌리가 나에게 준 것만이 내 전부는 아닐 것이다. 나의 부모, 나의 조상이 나에게 준 일정 '기질'이 있음을 분명 외면할 수는 없겠지만, 나는 오직 그것만으로만 이뤄진 존재는 아니다. 영화 <엘리멘탈>을 보며, 이 당연한 전제를 생각했다. 엠버는 자신의 아버지, 그리고 자신의 아버지 그 이전부터 내려오던 '파란색 불'과 함께 일정 가게를 운영해야 함을 숙명처럼 받아들이고 있다. 하지만 이와는 별개로 이것이 100% 자신의 의지인지, 정말 본인이 이어 받고 싶은 운명은 이것이 맞는지 갈등한다. 이 길이 아닌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탐구하고 싶은 욕망과 좋은 딸이 되고 싶어하는 욕망 속에서 하루하루 살아가던 엠버.


욕망의 부딪힘과 동시에 가게 누수의 문제가 생기고 좌절하던 찰나, 그녀의 삶 속에서 웨이드가 찾아온다. 웨이드는 물의 속성을 가진 존재라서 그런지 어디든 잘 흡수된다. 어디 곳이든 잘 침투한다. 타인의 마음에 스며들어가 기꺼이 함께 누군가를 진심을 담아 응원하게 만들고, 때로는 '스펀지'에게도 스며들고 만다. 그렇게 웨이드는 소란스러운 그녀의 마음 속으로, 앞으로 시작될 엄청난 변화의 장으로도 스며든다.


웨이드는 엠버의 정체성을 호명한다. 너만이 잘할 수 있는 건 바로 이거라고. 아버지와의 갈등을 예견하고 괴로워 하는 엠버를 독려한다. 본인 같이 후회하지 않고 원하는 걸 마음껏 펼치라고. 한편 엠버는 웨이드가 그저 흔한 사회의 일원이 아닌 특별한 존재임을 일깨워준다. 하고 싶은 일 없이 어딘가에 소속되어 일하고 있는 그에게 누군가(엠버)의 삶을 바꿔주는 큰 영향력을 선물하는 사람임을 알려준다. 나의 쓸모가 무언지 한숨이 깊어질 때, 나라는 존재의 크기가 작게 느껴질 때 서로는 서로에게 너의 쓸모는 무엇인지 호명하고 너는 결코 작은 존재가 아님을 증명하는 특별한 사이가 된다.


물 같은 웨이드는 엠버의 삶에 침투했고, 불 같은 엠버는 웨이드의 삶을 이전보다 조금 더 밝게 비춰준다.


엠버의 특기는 '유리 만들기'로 그려진다. 마치 그녀의 엄마가 '불의 속성' 중 하나인 연기로서 사랑의 냄새를 맡듯, 엠버는 무언가(모래)를 녹이고 새로운 걸 만들어내는, 또는 깨진 무언가를 봉합해서 새로운 걸 창조하는 특성을 가진 캐릭터이다. 이것이 바로 엠버의 정체성이다. 그대로 살아가는 게 아닌, 때로는 부숴진 걸 다시 새롭게 만들고, 무언가를 전혀 다른 성질의 것으로 만드는, 그야말로 '변화'와 '창조'의 캐릭터다. 이것이 바로 삶이 그녀에게 준 정체성이자, 그녀에게 중요한 일침이라 생각한다. 터전을 떠나 새로운 곳에 장착한 그녀의 부모님 덕분에 그녀는 조금 더 잘 흡수되고 융화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니 이제 그녀만의 이야기를 새롭게 그릴 차례인 것이다.


엠버가 잘 참지 못하고 욱하는 성격일 수밖에 없었던 건 위에서도 이야기했듯 욕망의 부딪힘을 겪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녀 자체가 솔직하고 투명한 성격이기에 타인의 마음이 아닌 내 마음을 온전히 소화시키지 못하고 그대로 표출했기 때문일 것이다. 반면 웨이드는 본인이 가장 투명한 속성임에도 불구하고 타인의 마음을 투명하게 들여다 보고자 한다. 누군가의 마음과 이야기에 깊이 공감하여 눈물을 쉽게, 그리고 자주 쏟아내는 이 투명함. 같은 투명함이지만 누구에게 맞추느냐에 따라서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음을 배운 엠버는 자신에게 부족했던 부분을 웨이드에게 간접적으로 배우며 조금씩 변화한다. 다른 누구도 아닌, 웨이드로 인한 변화이다.


맨 처음 질문을 던졌듯 나라는 존재는 무엇으로 구성되는가. 아주 오래 전부터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어딘가에 새겨지고 계승되어 온 뿌리와 함께, 누구하고도 비교할 수 없는 나만의 특수한 개성이 지금 여기의 나를 만들었을 것이다. 거기다 하나 더 해볼까. 그건 바로 내 곁에 있는, 내 삶에 찾아와준 타인의 영향력이 나를 다듬고 만들어 간다. 불과 물은 비록 온전히 섞일 수 없을지 몰라도, 맞닿아 있을 때 물은 조금 더 따뜻해 지고, 불은 부드럽게 일렁거리고 그렇게 다채로운 무지개를 마주할 수 있으니까.


엠버의 가족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죽음의 문턱에서도 차마 포기할 수 없었던 파란색 불이 있다. 때론 불이 파랗듯, 물이 빨갛듯, 우리는 어느 한 속성만 고집할 수 없고, 또 우리 자체도 단일한 존재들은 아니니까. 서로의 다름이 더이상 다름이 아니게 되는, 나에게 있는 걸 그에게 보는, 또는 나에게 없는 부분을 그에게 보는 깊이 있는 진심으로 서로를 수용하게 되는 순간이 우리 삶에 머무는 거니까.


그러니 웨이드의 손을 잡고 새로운 항해를 시작한 엠버의 나날들은 조금 더 깊어질 것이다. 내 정체성을 알아봐준 사람과 함께, 나에 대한 신뢰를 조금 더 가지고 진짜 내 이야기를 시작할 순간이 왔으니까.





* 제가 쓴 영화 엘리멘탈의 리뷰를 재밌게 보셨다면,

오드아이인 제 이야기도 읽어봐 주시면 감사합니다 :)


[브런치북] 안녕?오드아이! (brun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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