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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옫아 Jul 07. 2023

영화 <헤어질 결심> 리뷰 : 그를 사랑할 결심

사랑과 슬픔은 이렇게 또 파도처럼 덮쳐온다.

색깔 표기는 영화 <헤어질 결심> 속 대사입니다.



<헤어질 결심> 속 서래(탕웨이)의 사랑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날 사랑한다고 말하는 순간

당신의 사랑이 끝났고

당신의 사랑이 끝나는 순간

내 사랑이 시작됐죠.



틀렸다. 서래는 거짓말을 했다.

서래의 사랑은 이미 오래 전부터 시작되었으나, 그저 뒤늦게 자각했을 뿐.

그리고 서래는 착각했다. 해준의 사랑은 끝나지 않았으니까. 서래를 떠나온 이후의 날들에 대해 정확히 402일이라고 말했으니까. 부재는 그렇게 사랑을 반증하니까.



슬픔이 파도처럼 덮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물에 잉크가 퍼지듯이 서서히 물드는 사람도 있는 거야.



해준(박해일)은 말한다, 파도처럼 덮치는 슬픔을 만나는 사람도 있고, 잉크가 퍼지듯 서서히 슬픔에 물드는 사람도 있다고. 그렇다면 위 대사에서 ‘슬픔’ 대신 ‘사랑’이라는 단어를 넣어볼까.


사랑이 파도처럼 덮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물에 잉크가 퍼지듯이 서서히 물드는 사람도 있는 거야.


슬픔은 사랑을 동반하고, 사랑은 슬픔을 동반한다, 그러니까 사랑과 슬픔은 서로 떼어낼 수 없는 숙명 같은 관계가 아닐까. 이를테면 1+1 같은. 그러나 누가 먼저 온 지는 알 수 없는 그런 관계. 명확한 인(因)과 과(果)를 구분하는 없는 관계.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 처럼. 사랑이 자리한 곳에는 슬픔이 따라오고. 슬픔이 자리한 곳에 사랑이 찾아오듯. 그렇게 해준의 ‘슬픈’붕괴가 서래에겐 사랑이 ‘파도처럼 덮쳐’오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일 수도.  


서래는 자신의 첫 번째 남편을 살해한 유력한 용의자 신분으로 형사 해준을 마주한다. 해준은 수사라는 목적으로 서래를 탐색하고, 그녀를 관찰하고, 빠져들고 ‘마침내’그녀를 사랑하고. 자신은 붕괴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해준이 서래를 사랑했음을 파악하는 것은 너무도 쉽다. 그의 자백이 있었기 때문이다. 밤마다 그녀의 집을 서성이고, 그녀의 숨소리를 들으면서 깊이 잠들고, 그녀를 끌어안고 행복하다고 속삭였던 지난 시간들을 ‘우리 일’이라고 생각하니까. 그러니까 사랑이 아니면 나올 수 없는 그런 언어들이니까. 그렇다면, 서래는? 서래는 해준의 고백을 듣고나서 해준을 사랑하게 된 것이 과연 맞을까.



그 친절한 형사의 심장을 가져다 주세요.



해당 문장은 번역의 오류가 있던 문장이다. ‘심장’이 아니라 그의‘마음’이 갖고 싶었던 서래. 서래의 마음 한 켠에 해준이 있었고. 은연 중에 서래 역시 ‘사랑한다’고 고백한 것은 아닐까. 해준은 그동안 서래가 자신에게 표현했던 모든 것들이 사랑인 줄 알았으나, 서래가 실제로 살해를 저질렀음을 알고 나서는 자신에게 행했던 것들이 그저 자신을 속여 피의자 신분을 탈피하려는 목적임을 (서래의 진짜 의도는 확인하지 않은 채) 본인 스스로 확신하고, 붕괴된다. 그런 그의 표현을 듣고 나서 서래는 도리어 사랑이 시작되었다고 말하는 이 모순.


누군가의 마음이 온전히 나에게 와 닿으면 얼마나 좋을까, 사랑을 사랑이라 듣고 부르게 된다면.


‘마음’을 ‘심장’으로 잘못 번역하듯, 우리는 매순간 얼마나 많은 오역을 만나고, 오해하고 끝내 이를 돌이킬 기회를 잡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을까? 서래의 사랑 시점도 해준의 사랑 시점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랬기에 해준의 절절한 고백이 서래에게 죄책감이나 미안한 것이 아닌 사랑 그대로의 것으로 다가왔으니까.


해준이 준 방수 밴드에 향수를 뿌리던 서래. 해당 행위가 단순히 해준을 이성적인 매력으로 홀려 피의자 신분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했던 목적일까. 아니면 아직 뭐라고 읽을 수도, 겉잡을 수 없는 마음을 제대로 발음하지 않는 쪽을 선택한 걸까. 잠에 들지 못하는 해준을 걱정하고, 그의 집으로 찾아오고 그가 편하게 잠들 수 있도록 마음을 내어주는 것, 굳이 사랑이라 부르지 않아도 느껴지는 서래의 마음들이 영화에서는 자연스럽게 나열된다. 단 서래만 이를 사랑이라 인지하지도 인정하지도 않았을 뿐.


그러나 ‘마침내’ 해준의 고백과 동시에 그의 사랑이 끝났을 때, 자신의 사랑이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었던 건 나의 마음이 향했던 곳과 그의 마음이 가던 곳이 다르지 않았고 그가 나를 사랑하는 마음의 깊이는 그녀 스스로가 예측하던 것보다 훨씬 더 컸음을 알았으니까. 자신이 사랑한 그의 품위, 그 품위가 오는 자부심이 무너질 정도로 본인을 사랑했다는 절절한 고백을 받았으니까. 서래는 안도하지 않았을까. 안도하고 ‘마침내’사랑을 시작해볼 결심을 가진 게 아닐까, 사랑할 결심이 있어야 헤어질 결심도 있는 거니까.


서래는 자신이 사랑했던 존재를 이미 자신의 손으로 죽인 적이 있다. 자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엄마가 원하는 바를 이뤄주기 위함,이었지만 이미 사랑하는 상대를 자신의 곁으로 떠나 보내는, 슬픔을 만난 사람이다. 그런 그녀가 또 한 번 자신이 사랑하던 사람을 다른 방식으로 죽였다. 그가 스스로 무너지게끔 했으니까. 그래서 서래는 이번엔 해준을 살리고자 한다. 붕괴 이전의 그로 되돌리기 위해 재수사를 진행하게 하도록 돕고자 한다. 그로 인해 해준이 그 자신으로 되돌아가도록 한다. 하지만 또 한 번 서래는 실수를 한다. 자신이 미결 사건으로 남음으로써 해준을 다시 한 번 붕괴시키니까. 사랑과 슬픔은 이렇게 또 파도처럼 덮쳐온다.


천 년 만 년 가는 사랑이 어디 있고, 천 년 만 년 가는 슬픔이 어디 있냐는 물음에 ‘있다’에 한 표를 던지는 사람이 있다. 둘 중 무엇이냐고 물음엔 ‘슬픈 사랑’이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있다(드라마 <도깨비> 속 도깨비와 지은탁 씬). 영화 <헤어질 결심> 리뷰를 써보았지만, 여전히 안개를 걷는 느낌이다. 안개의 명확한 이유는 없다. 그저 슬픈 사랑이야말로 천 년 만 년 가는 거니까. 그를 살게 해주고 싶지만, 끝끝내, 그래서 ‘마침내’그와 나를 다시 한 번 죽이는 슬픈 사랑이 시작되는 거니까. 사랑의 끝은 없는 거니까. 서래에겐 오히려 ‘헤어질 결심’보다 ‘사랑할 결심’이 더 어려운 일은 아니었을까.



더 깊은 바다에 버려서, 아무도 못 찾게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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